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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790. 11. 17, 독일 작센 슐포르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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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68. 9. 26, 라이프치히 |
국적 | 독일 |
요약
해석기하학과 위상수학의 업적으로 유명하다. 위상수학에서는 특히 뫼비우스 띠 발견자의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1815년 라이프치히대학교의 천문학교수가 되었고 그뒤 1818~21년에는 그의 감독하에 설립된 대학천문대 대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천문학 논문 외에 많은 기하학 논문을 발표했고, 뫼비우스 그물로 알려진 형태를 논했는데, 이는 뒤에 사영기하학의 체계적 발전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뫼비우스는 위상수학의 선구자였다.
해석기하학과 위상수학(位相數學)의 업적으로 유명하다.
위상수학에서는 특히 뫼비우스 띠발견자의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1815년 라이프치히대학교의 천문학교수가 되었고 그뒤 1818~21년에는 그의 감독하에 설립된 대학천문대 대장으로 선출되었다. 1815년 〈행성들의 엄폐 계산에 대하여 De Computandis Occultationibus Fixarum per Planetas〉를 출판해 이론천문학자로 명성을 얻었다. 그밖의 순수천문학에 관한 출판물로 〈천문학 원리 Die Hauptsätze der Astronomie〉(1836)·〈천체역학 원리 Die Elemente der Mechanik des Himmels〉(1843) 등이 있다.
그의 수학논문은 대부분 〈크렐레 저널 Crelle's Journal〉(1828~58)에 실렸는데 주로 기하학에 관한 것이고, 이중 많은 논문에서 〈중력중심의 계산 Der barycen-trische Calkul〉(1827)에서 주장되었던 방법을 응용·발전시켰다. 그는 이 연구에서 동차좌표를 해석기하학에 도입했고 또한 도형변환, 특히 사영변환(射影變換)을 연구했다. 그는 뫼비우스 그물로 알려진 형태를 논했는데, 이는 뒤에 사영기하학의 체계적 발전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1837년 〈정역학(靜力學) 편람 Lehrbuch der Statik〉에서 그는 정역학(역학의 한 부문)을 기하학으로 다루어 점과 면의 영계(零系 null system)와 공간의 선체계(線體系 systems of lines)를 이끌어냈다. 뫼비우스는 위상수학의 선구자였다. 그가 죽은 뒤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서 발견된 논문은 그의 이름을 딴 뫼비우스 띠를 포함한 단측곡면(單側曲面 one-sided surface)의 성질을 논하고 있었다. 1885~87년에 그의 〈전집 Gesammelten Werke〉(4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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