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위치 | 전라남도 서부 |
---|---|
인구 | 213,983 (2024) |
면적 | 50.60㎢ |
행정구역 | 23개동 |
사이트 | http://www.mokpo.go.kr/ |
요약 전라남도 무안반도 남단에 있는 시. 개항 이후 항구도시로 발전해 왔으며 서해안고속도로의 종점으로 수륙교통의 요지이다. 지방 도시 중 면적이 가장 작지만, 전라남도 지자체 중 인구수로는 3위를 차지한다. 2005년부터 목포시와 무안군 경계 일대에 남악신도시건설이 조성되고 있으며, 전라남도의 주요 공공기관이 이전해왔다. 면적 50.60㎢, 인구 213,983(2024).
대한민국 전라남도 남서부 무안반도 남단에 있는 시. 수륙교통의 요지이며, 1980년대말부터 대불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광주·광양·목포를 잇는 서해안개발의 항만·거점 도시로 자리잡았다. 행정구역은 용당1동·용당2동·연동·산정동·대성동·목원동·동명동·삼학동·만호동·유달동·죽교동·이로동·북항동·용해동·연산동·원산동·상동·하당동·신흥동·삼향동·옥암동·부흥동·부주동 등 23개동이 있다(행정동 기준, 법정동 기중 64개동). 시청소재지는 목포시 양을로이다. 면적 50.60㎢, 인구 213,983(2024).
연혁
백제 때에 물아혜군이었으며, 757년(경덕왕 16)에 무안군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시대에는 944년(혜종 1)에 물량군으로, 991년(성종 10)에 다시 무안군으로 고쳤다. 1018년(현종 9)에 나주의 속군이 되었다가 1172년(명종 2)에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했다.
고려말에 왜구의 침입이 심하자 1391년(공양왕 3)에 성산극포권농방어사를 설치했다. 조선시대에는 1397년(태조 6) 전라도 4진 중의 하나인 목포진이 설치되었으며 첨절제사가 파견되어 방어임무를 맡았다. 1413년(태종 13) 군현제 개편 때 무안현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6년에 전라남도 무안군이 되었다. 1897년 목포진을 개항함으로써 목포는 전라남도 최대의 항구도시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1906년 월경지 정리도 이루어져 함평군의 비입지 2개면, 나주군의 비입지 삼향면, 영광군의 비입지 3개면이 편입되어 영역이 크게 확대되었다. 1910년 무안부를 목포부로 개칭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목포부의 부내면과 거류지 등 시가지를 목포부로, 주변지역을 무안군으로 분리하고, 식지면 등 6개면을 3개면으로 통합해 함평군에 이관했다. 1949년 시제 실시에 따라 목포시로 개칭했다.
2005년 전라남도청이 남악신도시로 이전하면서 본격적으로 신도시 개발이 시작되었다. 2006년 용당1동·산정2동을 용당1동으로, 북교동·무안동·남양동을 목원동으로 유달동·충무동을 유달동으로 통합하여 기존의 행정동 26개를 22개로 통분합하였다. 2012년 1월 남악신도시의 옥암지구 옥암동에서 분리된 부주동이 신설되었다.
인구
1949년 시로 개편될 당시만 해도 호남지방 제일의 상업 중심지로 그 세력권에 신안군·무안군·해남군·진도군과 제주도까지 포함되어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지역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광주광역시로 많이 빼앗기고 항구로서의 기능도 크게 약해졌다. 그러나 더딘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지리적으로 다도해를 끼고 있고 수륙교통이 편리하여 인구가 계속 증가해왔다. 인구추세를 보면 1970년 17만 7,801명, 1980년 22만 1,856명, 1990년 25만 3,423명으로 계속 증가했으나 2000년 이후 감소추세로 돌아섰다.
2000년 24만 5,831명, 2005년 24만 2,988명, 2010년 24만 7,442명, 2015년 23만 8,382명을 기록했다. 2024년 기준 인구는 21만 3,983명이며 가구수는 10만 4,409가구, 가구당 인구는 2.05명이다. 행정동별로는 본래 행정·상업 중심지인 용당동·산정동·동명동·이로동 등의 상주인구율이 높았으나, 2012년 남악신도시에 신설된 부주동에 인구유입이 활발하여 2만 2,615명으로 시내 행정동 중 인구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반면 만호동에는 시 전체 인구의 1%인 2,445명 만이 거주하고 있다(2024).
목포의 연혁
백제 때에 물아혜군이었으며, 757년(경덕왕 16)에 무안군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시대에는 944년(혜종 1)에 물량군으로, 991년(성종 10)에 다시 무안군으로 고쳤다. 1018년(현종 9)에 나주의 속군이 되었다가 1172년(명종 2)에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했다.
고려말에 왜구의 침입이 심하자 1391년(공양왕 3)에 성산극포권농방어사를 설치했다. 조선시대에는 1397년(태조 6) 전라도 4진 중의 하나인 목포진이 설치되었으며 첨절제사가 파견되어 방어임무를 맡았다. 1413년(태종 13) 군현제 개편 때 무안현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나주부 무안군, 1896년에 전라남도 무안군이 되었고 도서지역은 신설된 지도군에 이관되었다. 1897년 목포진을 개항함으로써 목포는 전라남도 최대의 항구도시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때 감리서가 설치되고 무안군이 부로 승격했다.
1903년 목포감리서가 따로 설치되면서 군으로 강등되었다가 1906년 다시 부로 승격되어 감리를 폐지하고 부윤이 겸하게 했다. 이 시기에 월경지 정리도 이루어져 함평군의 비입지인 다경면·해제면, 나주군의 비입지인 삼향면, 영광군의 비입지인 망운면·진하산면·다경포가 편입되어 영역이 크게 확대되었다. 1910년 무안부를 목포부로 개칭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목포부의 부내면과 거류지 등 시가지를 목포부로, 주변지역을 무안군으로 분리하고, 식지면 등 6개면을 3개면으로 통합해 함평군에 이관했다. 1949년 시제 실시에 따라 목포시로 개칭했다.
2006년 용당1동·산정2동을 용당1동으로, 북교동·무안동·남양동을 목원동으로 유달동·충무동을 유달동으로 통합하여 기존의 행정동 26개를 22개로 통분합하였다.
목포의 자연환경
노령산맥에서 뻗어나온 지적산(189m)·부주산(141m)·대박산(156m)·양을산(156m)·입암산(121m)·유달산(228m) 등이 저평한 구릉성 산지를 이루며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다.
이들 산지 사이로 바다를 메워 만든 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시가지와 공단이 들어서 있다. 유달산은 영산강·삼학도와 함께 지역을 대표하는 자연경관을 이룬다. 삼학도는 1968년 육지와 연결되면서 부두로 조성되었고, 영산강 하구는 1981년 영산강유역개발계획의 하나로 영암군 삼호반도와의 사이에 방조제가 축조되면서 영산호로 바뀌었다. 한편 고하도·눌도·달리도 등 천연의 방파제 구실을 해주는 섬들로 근해의 물결이 잔잔하고 수심이 깊어 천혜의 항만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다.
기후는 겨울에 북서계절풍의 영향을 많이 받아 같은 위도상의 동해안지방보다 기온이 낮고, 눈 내리는 날이 잦지만 적설량은 많지 않다. 연평균기온 13.6℃ 내외, 1월평균기온 1.3℃ 내외, 8월평균기온 26.2℃ 내외이며, 연평균강수량은 1,112㎜ 정도이다. 연중 쾌청일수는 65일 정도로 맑은 날이 적은 지역 중 하나이다. 식생은 난온대삼림대에 속하여 온대활엽수와 난대성 상록활엽수가 혼합되어 있다.
목포의 인구
1949년 시로 개편될 당시만 해도 호남지방 제일의 상업 중심지로 그 세력권에 신안군·무안군·해남군·진도군과 제주도까지 포함되어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지역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광주광역시로 많이 빼앗기고 항구로서의 기능도 크게 약해졌다. 그러나 더딘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지리적으로 다도해를 끼고 있고 수륙교통이 편리하여 인구가 계속 증가해왔다.
인구추세를 보면 1965년 15만 7,382명, 1970년 17만 7,801명, 1975년 19만 2,927명, 1980년 22만 1,856명, 1985년 23만 6,078명, 1990년 25만 3,423명으로 계속 증가했으나, 1995년 23만 9,571명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2024년 기준 인구는 21만 3,983명이다. 인구이동은 전입이 4만 9,777명, 전출이 5만 2,338명이고 전입·전출 모두 도내이동이 많다.
행정동별로는 행정·상업 중심지인 용당동·산정동·동명동·이로동 등의 상주인구율이 높은 반면, 연동·충무동·북교동·대반동·죽동 등의 도서와 시 외곽지역의 인구는 점차 감소하여 인구의 도심집중현상이 나타난다.
시가지는 현재 시역의 약 2/3를 차지하는 해안매립지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목포시의 경제사정이 좋았던 일제강점기 때 시가지가 무질서하게 팽창되어 업무·주거·상업 등 도시기능이 제대로 분리되지 못했으므로 도시공간이 좁고, 교통·주택·상하수도 시설 등 도시기반시설이 부족한 형편이다. 하당·매립 지구의 택지개발은 1999년에 완료되었으며 옥암 지구는 2003년에 착공하였다.
목포의 산업과 교통
지방산물의 집산지이자 연안어획기지로 성장해온 목포는 총취업인구 중 3차산업 종사자 75.3%, 2차산업 종사자 12.4%, 1차산업 종사자 12.3%로서 상업과 서비스업이 발달해 있다. 총경지면적 11.83㎢ 가운데 논이 3.39㎢, 밭이 8.44㎢이며, 경지율은 24.7%이다(2006). 농업가구는 전체가구의 1.4%에 불과하며, 주요농산물은 쌀 외에 무·배추·고추·딸기·포도 등이 생산된다.
수산업은 1897년 개항 이후 인근 다도해의 어업기지로 발달했으며, 조기·병어·민어·새우·갈치 등이 어획된다. 연안의 간석지에서는 꼬막·굴·대합 등의 양식업과 제염업도 행해지고 있다. 풍부한 노동력과 편리한 교통을 바탕으로 어업도구·도자기·양조업 등의 전통산업이 발달해 있으며, 1972년 석현동공업단지와 1990년 산정동농공단지 등이 조성되면서 공업이 점차 활기를 띠어 2006년 현재 총 138개의 기업이 입지해 있다. 특히 1981년 영산강 하구둑의 건설은 부족했던 공업용수를 공급해줌으로써 이 지역의 공업발달에 크게 기여했다.
1996년에 완성된 대불공업단지는 단지 내에 공단, 기술정보 센터, 주거, 유통 센터 등을 설치하고, 기계장치제조업·조립금속·석유화학·제철·제강·비금속공업 등 중화학공업을 유치하고 있다. 목포시는 일제강점기에거점도시의 하나로 성장하면서 호남지방에서 생산되는 쌀·누에고치·면화 등을 일본으로 반출하고 또 일본에서 가공된 물품을 들여오는 무역항으로 알려져왔으나 해방 후 그 기능은 침체되었다.
2006년 현재 중앙·동부 등 상설시장 5개와 농업협동조합과 수산업협동조합이 각각 1개소가 있으며, 목포어시장은 조기·갈치·멸치 등의 수산물 거래가 많기로 이름 나 있다. 일찍부터 도시화되고 지역의 경제기반이 주로 상업이었기 때문에 음식점·술집·숙박업 등의 서비스 업소가 많다.
호남선의 종점으로, 시의 중앙을 호남선이 가로지른다. 국도로 서울·부산 등지와 연결되고 영산강 하구둑의 건설로 해남·영암 등과도 연결되어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연안항로의 기항지로서 동목포-제주 간, 목포-홍동 간 정기여객선이 운행되고 있다. 목포항은 급유·급수 시설, 수산물 냉동·가공 시설, 선박수리시설 등 항만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다. 도로총길이 247.62km, 도로포장률 91%이다(2006).
목포의 유물·유적·관광
시내에는 국가지정문화재(사적 1, 중요무형문화재 1), 도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3, 기념물 3, 무형문화재 2), 문화재자료 3점 등이 있다.
고인돌·동검 등 청동기시대의 유물·유적이 출토되었으며, 이충무공기념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9호)를 비롯하여 목포시사(木浦詩社 : 전라남도 기념물 제21호)·고하도이충무공유적(高下島李忠武公遺蹟 : 전라남도 기념물 제10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그밖에 안호성지·유달성지·노적봉·유달산봉수지 등이 있다. 건축물로는 준르네상스식 건축양식으로 알려진 목포시립도서관(사적 제289호)이 있다.
다도해의 수려한 해상경관과 육지의 관광자원이 어우러진 도내 주요 해양·위락 관광기점으로 연중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목포시민의 영산인 유달산은 1924년부터 공원으로 조성되기 시작하여 현재 조각공원, 체육공원, 등산로, 이충무공 동상, 4·19탑, 목포의 눈물 노래비 등이 있으며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남동해안에는 삼학도와 갓바위가 있으며, 갓바위 부근에는 수석과 서화를 함께 전시한 향토문화관이 자리하고 있다. 영산호와 북서해안에 해수욕장이 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육지면을 시험재배한 고하도를 비롯하여 달리도·눌도·외달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흩어져 있으며, 1981년 다도해지역이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연간 380만여 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2006).
목포의 교육과 문화
도내에서 가장 먼저 그리스도교·신학문·현대기술 등과 같은 개화문물을 받아들인 곳이다.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은 1902년 미국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정명여자학교와 1897년 설립된 무안공립소학교(지금의 북교초등학교)이며, 이어서 목포제일중학교·목포상업중학교·이로소학교 등이 세워졌다. 2007년 현재 유치원 55개소, 초등학교 33개교, 중학교 15개교, 고등학교 15개교와 목포과학대학·목포해양대학교·목포가톨릭대학교·목포대학교가 있으며, 장애자를 위한 특수학교 1개교가 있다.
목포문화원과 목포예총지부에서는 매년 10월 문화예술제를 함께 열어 지방문화와 예술을 계승·보급하고 있으며, 목포시립도서관, 방송국지국(KBS·MBC), 향토문화관, 측후소, 체육관 등이 있다.
예로부터 문인·예술가들이 많이 배출된 고장이기는 하지만 일찍이 도시화·근대화 되었기 때문인지 전승되는 전통문화의 양과 종류가 많지 않다. 민속놀이로는 목포문화예술제에서 행해지는 강강술래·줄다리기·널뛰기 등이 있다. 설화는 〈삼학도전설〉·〈나불도와 갓바위 전설〉 등 지명유래담이 주종을 이룬다. 민요의 경우에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동요는 없고 몇 가지 의식요와 유희요가 전하며, 〈탕건바위노래〉·〈꿩서방노래〉·〈놀개노래〉·〈유선가〉 등이 전해온다.
2006년 현재 의료기관은 종합병원 4개소, 병원 7개소, 의원 148개소, 특수병원 1개소, 요양병원 1개소, 치과의원 44개소, 한의원 39개소, 조산소 2개소, 보건소 관련 의료기관 2개소가 있다. 사회복지시설은 아동복지시설 6개소, 노인복지시설 6개소, 장애인복지시설 5개소, 여성복지시설 3개소, 부랑인시설 2개소가 있다. 목포시의 환경오염은 해안매립과 도서의 육지화에 의한 환경파괴와 관광객들에 의한 자연훼손, 그리고 쓰레기방치가 주된 원인이다.
최근 들어 공단조성이 활발해지면서 수질오염에 대한 적극적인 예방과 대책에 힘쓰고 있으며, 목포녹색운동단체협의회 등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환경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