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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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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타원형의 공을 사용하는 구기 스포츠. 영국에서 유래한 운동으로 손발을 모두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개요

타원형의 공을 사용하는 구기 스포츠다. 선수는 손을 사용하여 공을 잡거나 던질 수 있고 축구처럼 발을 이용하여 공을 다룰 수 있다. 공을 가지고 상대편 구역에 들어가면 득점하는 방식으로 신체 접촉이 격렬한 편이다.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대회로는 15인제의 아마추어 경기인 럭비유니언 대회와 13인제의 프로 경기인 럭비리그 대회가 있다.

유래

럭비는 1823년 영국 럭비스쿨에서 헐링애트골 경기 도중 한 소년이 공을 손에 들고 달려간 사건을 계기로 등장했다. 헐링애트골은 16~17세기 영국에서 성행하던 축구와 유사한 스포츠이다. 럭비라는 이름도 학교 이름에서 유래했다. 럭비는 이후 영연방을 통해 전달되어 세계적인 스포츠로 발전하였다. 한국에는 1920년대 들어왔으며 학교와 군대 등을 중심으로 보급되었다.

경기장과 장비

국제위원회 규칙에 따라 럭비 경기장의 크기는 세로 70m, 가로 144m 이내다. 경기장은 필드 오브 플레이(The Field of paly)와 인골(In-Goal) 등을 포함한다. 필드 오브 플레이는 골라인과 터치라인 사이의 지역을 말한다. 세로 70m, 가로는 100m으로 전체 경기장의 중심 부분에 해당한다. 인골은 골라인과 데드볼 라인, 터치인 골 라인 사이의 지역으로 경기장의 양쪽 끝 부분에 있다.

럭비공

ⓒ borzywoj/Shutterstock.com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양 팀 골라인 중앙에는 바닥에서 1m 위에 크로스바를 세워둔 폭 5.6m의 골포스트(골대)가 있다. 골대는 H자 형태로 3.4m 이상의 높이로 제작한다. 공은 미식축구나 캐나디안 풋볼에서 사용되는 것보다는 덜 뾰족한 타원형 공이다. 길이 28~30㎝, 세로둘레 74~79㎝, 가로둘레 58~62㎝, 무게 400~440g으로 외피는 가죽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다. 선수들은 저지나 쇼트팬츠, 스타킹, 럭비화를 착용한다. 미식축구와 달리 단단한 보호장비는 착용할 수 없다. 단 어깨 패드나 정강이 보호대, 헤드기어, 마우스피스는 착용할 수 있다.

경기규칙

럭비 경기는 크게 15인제와 7인제로 구분한다. 15인제의 경기 시간은 전·후반 각 40분씩 총 80분이며 휴식시간은 10분이다. 교체 인원은 7명까지 가능하며 스크럼은 8명이다. 7인제 럭비는 전·후반 각 7분씩 14분으로 경기한다. 휴식시간은 1분이며 인원 교체는 3명까지 가능하다. 스크럼은 반칙이나 정지 후 경기를 다시 시작할 때 선수들이 나열하여 짜는 기본대형이다. 맨 앞에는 3명이 서며 스크럼 사이의 공간으로 공을 던지면 양팀에서 서로 공을 차지하려 경쟁한다.

럭비는 손발을 이용하여 공을 차거나 직접 전해주거나 패스할 수 있지만 전방으로 패스하는 것은 금지된다. 한편 경기중에 공을 가지고 달리는 선수는 상대 팀 선수에게 태클을 유발시킨다. 공을 상대 팀 골라인 뒤에 있는 골에어리어에 터치다운하거나 골포스트 사이의 크로스박스 위로 차 넘김으로써 점수를 얻는다.

럭비

ⓒ jackmac34/Pixabay | Public Domain

아마추어

규칙

경기는 1명의 주심, 2명의 터치저지에 의해 전후반 각각 40분씩 진행된다. 트라이는 4점, 트라이에 이은 추가골은 2점, 공을 땅에 떨어뜨려 첫번째 바운드에 차서 골포스트 사이의 크로스바를 넘기는 드롭킥은 3점, 상대 팀의 반칙으로 인한 페널티킥은 3점으로 규정되었다.

럭비가 시작된 초기에는 규칙이 없었으나 점차 규칙이 제정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영국과 스코틀랜드가 처음 시합을 벌인 1871년에는 한 팀의 선수가 20명이었으나 1877년 15명으로 줄었다. 한편 당시에는 트라이가 득점으로 인정되지 않고 다만 킥에 의한 골만이 득점으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동점일 경우에 한해 트라이 횟수가 승패 결정에 영향을 주었다. 그후 수많은 규칙의 변천을 거치면서 1905년 지금의 득점체계가 마련되었다.

럭비가 발전하면서 선수들의 기량도 향상하였다. 이에 따라 수비적인 공격성향이 짙어지면서 경기가 지루해지는 경향이 생겼다. 1964년 국제위원회는 럭비 경기 활성화를 위해 새로운 규칙을 제정하였다. 이런 변화로 공격팀은 정통적인 공격법에서 벗어나 상대 팀 수비의 약점을 이용해 득점을 시도하게 되었다.

라인아웃의 경우 각 팀의 스리쿼터들이 골라인 9m 안에서 대형을 이루어 상대방이 공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어야 하며 백들은 스크럼에서 공이 밖으로 나오기 전에는 전진할 수 없도록 바뀌었다. 또한, 라인아웃에서 공격 팀에게 라인아웃 길이를 줄일 수 있는 권한을 주어 상대 팀이 공을 가질 수 없도록 했다. 1970년에는 골라인에서 22m 이내에서의 터치라인이나 사이드라인에서 공을 직접차는 것을 허용했다.

기본대형

럭비의 기본대형으로는 스크럼과 라인아웃의 2가지가 있다. 스크럼은 같은 팀 선수들이 서로 팔을 낀 상태에서 1열 3명, 2열 4명, 3열 1명으로 된 3열의 형태로 상대 팀을 앞으로 미는 대형이다. 이때 공은 각 팀의 첫번째열 사이로 던져지고 각 팀은 발을 이용하여 공을 차지하려고 한다. 라인아웃은 터치라인 밖으로 나간 공을 다시 플레이 상태로 가져오게 하는 대형으로 양팀의 포워드들이 각각 1열로 공이 나간 터치라인 지점에서 수직으로 선다. 이때 줄지어 선 선수들 사이로 공이 던져지고 각 팀은 손을 이용해 공을 차지하려고 한다.

각 팀의 포워드가 스크럼이나 라인아웃을 형성하는 동안 나머지 선수들은 자기팀 포워드와 골라인 사이에서 여러 대형으로 위치를 바꾸며 방에서 공을 패스하거나, 러닝하거나, 킥킹을 하여 트라이나 드롭골을 시도한다. 이때 나머지 선수들이란 2명의 하프백, 4명의 스리쿼터백(레프트백·라이트백·레프트윙·라이트윙), 1명의 풀백을 말한다.

스크럼이나 라인아웃 이외에 몰(Maul)과 럭(Ruck)이 있다. 경기 도중 공이 일시적으로 제지되었을 때(공을 떨어뜨리거나 선수가 공을 가지고 넘어졌을 때, 상대 팀 선수에 의해 쓰러졌을 때, 2명 이상의 선수들이 서로 엉켜 공을 차지하려고 할 때) 일어난다. 미식축구나 캐나디안 풋볼에서 볼 수 있는 블로킹은 허용되지 않는다.

프로

프로 경기도 아마추어 경기와 마찬가지로 트라이와 골인에 의해 득점을 한다. 그러나 페널티킥은 2점, 드롭골은 1점으로 인정하며 선수는 윙포워드 2명이 제외된 13명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스크럼은 1열 3명, 2열 2명, 3열 1명으로 형성된다. 라인아웃은 스크럼으로 대신하며 럭과 몰은 없다. 선수가 공을 가지고 쓰러졌을 때에는 스크럼 상태에서 발을 이용하여 후위의 자기팀에게 패스해야 한다.

참고내용

럭비유니언(아마추어)

① 기원:럭비는 1823년 영국 럭비학교에서 축구경기 도중 윌리엄 웨브 엘리스라는 소년이 공을 들고 뛰면서 시작되었다.

그러한 행동은 반칙행위였지만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되어 발을 이용하는 축구와는 달리, 주로 손을 이용하는 경기인 럭비로 굳어졌다. 그러나 일부 스포츠 역사가들은 럭비의 기원을 육상선수인 매키가 활약했던 1838~39년으로 보기도 한다. 럭비는 1871년 영국에서 럭비 풋볼유니언(Rugby Football Union/RFU)이 창설되어 영국과 스코틀랜드가 첫 시합을 했으며, 1879년 아일랜드, 1881년 웨일스에서도 럭비 풋볼 유니언이 창설되었다. ② 럭비의 해외보급:럭비는 군인, 사업가, 기술자, 외교관, 외국인접대 종사자, 학생들에 의해 외국에 소개되었다. 1873년 오스트레일리아, 1882년 캐나다, 1887년 프랑스, 1889년 아르헨티나와 남아프리카 공화국, 1892년 뉴질랜드, 1899년 일본, 1913년 피지 등지로 보급되었다. 한편 1895년부터 럭비 선수들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면서 프로화를 주장하는 영국 북부지방의 22개 팀이 RFU를 탈퇴해 럭비 리그(Rugby League)를 조직하면서 럭비 역사에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럭비리그(프로)

1895년 RFU에서 탈퇴한 팀들의 시합은 1920년대 들어 럭비 풋볼리그(Rugby Football League/RFL)로 불렸으며 그후 럭비 리그로 정착되었다. 럭비 리그의 프로 선수들은 다른 직업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스포츠의 프로 선수들과 차이가 있었지만 이들은 출전한 시합에 대해 보수를 받았으며 이러한 시합은 영국 북부의 요크셔·랭커셔·컴브리아에서 꾸준히 발전했다. 프로 경기는 지속적인 입장료 수입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관중의 흥미를 위해 선수인원을 15명에서 13명으로 축소했다.

조직과 대회

① 아마추어:럭비가 널리 인기있었던 영국과 영연방국가를 중심으로 1886년 국제 럭비풋볼 위원회(International Rugby Football Board)가 창설되었으며 그후 1958년 각 국가마다 2명씩의 임원으로 구성된 기구가 설립되었다.

한편 1934년 영국 및 영연방국가들을 제외한 국가들을 회원국으로 하는 국제 아마추어 럭비 연합(FIRA)이 창설되어 럭비 유니언은 2개의 국제기구를 갖게 되었다. 럭비 유니언 소속 팀간의 국제경기 중 가장 권위 있는 대회는 1894년에 시작된 테스트매치이다. 1987년부터는 16개국이 참여하여 우승 팀에게 윌리엄웨브엘리스 트로피가 주어지는 월드 컵 대회가 열리고 있다. ② 프로:럭비 리그는 영국·프랑스·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4개국만이 참여할 수 있으며, 이 4개국이 각 국가를 순회하면서 경기를 펼치는 월드 컵 대회가 있다.

한국의 럭비

럭비가 한국에 소개된 것은 1920년대 초로 주로 경성전기·철도청·경성사범학교 등을 중심으로 경기가 펼쳐졌다.

본격적으로 보급이 시작된 것은 1929년 3월 조선 럭비 축구협회가 창설되면서부터이다. 이에 따라 보성전문학교·배재고등보통학교·양정고등보통학교·중앙고등보통학교 등이 팀을 구성했으며, 그중 1929년 5월에 창단한 보성전문학교 럭비팀은 일본인 학교와 경기를 가지면서 기량을 향상시켜 1929년 10월에는 일본 관서지부 추계 럭비리그전에 출전해 우승하기도 했다. 그후 럭비는 제2차 세계대전중 일제에 의해 배척을 받기도 했으나 8·15해방 이듬해인 1946년 3월 대한 럭비 축구협회가 창설되면서 그 기틀이 마련되었다. 6·25전쟁 이후에는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비롯하여 여러 군 부대에서 군 전력 증강을 목적으로 팀이 구성되기도 했다.

한국은 1982년 제8회 아시아 선수권대회 1986년 제10회 아시아 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등 아시아에서는 럭비 강국으로 꼽히고 있다. 1991년 현재 국내에서 열리는 주요대회로는 춘계 리그전, 전국체육대회, 대학 리그전, 전국종별선수권대회, 체육청소년부장관기쟁탈전, 전국중고대회, 한영수교 100주년 기념대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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