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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02. 8. 8, 잉글랜드 글로스터셔 브리스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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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84. 10. 20, 미국 플로리다 탤러해시 |
국적 | 영국 |
요약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주요업적은 양자역학과 전자 스핀에 대한 연구이다.
1933년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와 공동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디랙은 어릴 때부터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브리스틀에서 학교에 다닐 때는 매우 어려운 수학책을 혼자 공부하기도 했다. 같은 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던 스위스 태생의 아버지는 아들이 수학적 재능을 키울 수 있도록 격려해주었다. 디랙의 회고에 따르면, 아버지는 아들이 프랑스어도 유창하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에 프랑스어로 말을 걸지 않으면 대답도 하지 않을 정도였다.
단어를 고르는 데 아주 조심스럽고 말을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디랙의 성격은 이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사람들과의 교제를 피하고 혼자 연구하는 것을 더 좋아했으며 주요 소일거리는 혼자 산책하는 것이었다.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는 실질적인 목적 때문에 브리스틀대학에서 공학을 공부했다. 이때 배운 근사법 이용은 나중의 연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즉 문제해결에 직관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믿음을 더 확고히 했던 것이다.
그는 현상에 대한 정확한 지식보다는 직관에 의한 근사법에 근거해서만 자연의 기본법칙을 나타내는 이론이 구축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리고 실제현상은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물리학자는 다만 실재에 대한 근사적 지식을 얻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기공학 학사학위를 받았으나 이 분야에서 일을 찾지 못한 채 보조를 받아 케임브리지의 세인트 존스 칼리지에 입학한 뒤에야 이론물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그는 원자물리학에서 닐스 보어와 더불어 선구적인 업적을 남겼던 지도교수 R. H. 파울러로부터 그 분야의 주요현황을 배웠다.
아직 대학원생이던 1926년 양자역학 즉 원자입자(atomic particles)를 지배하는 운동법칙의 한 형태를 고안해냄으로써 물리학 분야에 처음으로 중요한 공헌을 했다.
독일에서 연구중이던 다른 물리학자들(막스 보른, 파스쿠알 요르단)이 이 업적에서 디랙보다 몇 달 더 빨리 이 방법을 예견했으나 양자역학에 대한 디랙의 견해는 보편성과 논리적 단순성에서 탁월했다.
원자법칙을 가장 명확한 수학적 언어로 정식화하려는 목적에서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원리를 양자역학에 적용했다. 그는 4개의 연립미분방정식을 만족하는 4개의 파동함수로 전자(電子)를 기술할 수 있다는 획기적인 생각을 했다.
이 방정식에서 얻은 1가지 결론은 전자가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회전한다는 것으로 다른 물리학자도 이미 알고 있던 생각이었다. 또다른 결론은 음(陰)의 에너지 상태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2번째 결론은 물리적 실재와 맞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뒤에 발표한 논문에서 에너지가 음인 상태에 있는 한 전자의 결여는 짧은 수명의, 양으로 하전된 입자와 동등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견해는 칼 데이비드 앤더슨이 양전자, 즉 전자와 질량이 같지만 양으로 하전된 입자의 존재를 보여주는 안개상자 사진을 얻으면서 확증되었다.
이러한 현상을 실험적으로 확증함으로써 디랙의 이론이 가지는 명백한 난점이 승리로 바뀌었다(파면).
〈양자역학의 원리들 The Principles of Quantum Mechanics〉(4판, 1958)에서 디랙은 나머지 변수들이 고정되었을 때 몇몇 변수들의 통계적 분포를 계산할 수 있게 한 이른바 양자역학의 변환이론(transformation theory)을 발전시켰다.
또 이론물리학에 대한 철학적 견해도 밝혔다. 그는 자연의 기본법칙들이 "엉뚱함을 도입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그것의 상(像)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없는 자연의 근거를 지배한다"고 썼다. 자신의 연구에서도 수학적 기호들로 기술된 현상에 대해 설명할 때 그림 모형이나 관념적인 상은 사용하지 않았다.
원자 규모의 물질에 대한 수학적 기술방식을 더 세련화했으며 복사(輻射)의 양자이론도 세웠다.
또 그는 페르미-디랙 통계의 공동발명자였다. 1933년 노벨 물리학상, 1939년 왕립학회의 메달을 받았다. 케임브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계속 그곳에서 강의했고 1932년 한때 아이작 뉴턴이 역임했던 루카스좌(座) 수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1968년까지 그 자리에 있다가 미국으로 건너갔다. 1971년 플로리다 탤러해시의 플로리다주립대학 명예교수가 되었다.
출판된 다른 책으로는 〈양자역학 강의 Lectures on Quantum Mechanics〉(1966)·〈양자이론의 발전 The Development of Quantum Theory〉(1971)·〈힐베르트 공간에서 스피너 Spinors in Hilbert Space〉(1974)·〈일반 상대성이론 General Theory of Relativity〉(197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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