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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독일의 정당.
(영). Social Democratic Party of Germany.
독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규모가 큰 단일정당으로 대기업에 대한 규제와 동유럽과의 화해를 주요강령으로 삼고 있다.
1875년 고타 시에서 페르디난트 라살이 이끌던 전독일 노동자연맹과 마르크스주의자 아우구스트 베벨 및 빌헬름 리프크네히트가 지도하던 사회민주노동당이 통합됨으로써 생겨났다. 통합당의 첫 명칭은 사회주의노동당이었으나 1890년 독일 사회민주당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878년 프로이센의 오토 폰 비스마르크 정부에 의해 불법정당으로 제재를 받았지만 오히려 번창했고 1889년에는 제2인터내셔널의 창설을 돕기도 했다. 1890년 합법화되어 제국의회 선거에서 19.7%의 지지를 얻었으며, 1912년에는 34.8%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총의석 397석 가운데 110석을 차지했다. 그러나 1914년의 전시공채 투표문제와 제1차 세계대전의 참화는 당의 분열을 초래했고 그 결과 카를 카우츠키의 중도파는 독립사회민주당을 로자 룩셈부르크와 카를 리프크네히트가 이끄는 좌파는 독일 공산당(KPD)의 전신인 스파르타쿠스단을 결성하며 떨어져나갔다(→ 스파르타쿠스단).
1918~20년 프리드리히 에베르트가 주축이 된 SPD 우파(다수파 사회민주당)는 자유주의자 및 보수주의자와 결합하여 볼셰비키식의 독일 혁명을 진압했다. 1919년 총선의 결과는 SPD가 37.9% 독립사회민주당은 7.6%였다. 1919년 SPD는 파리 강화회의에서 보다 나은 조건을 얻어내는 데 실패했고(패전국 독일의 지위는 베르사유 조약에서 최종 확정되었음) 경제문제가 심각해지자 지지기반을 잃게 되었다.
독립사회민주당과 재결합한 다수파 사회민주당은 1924년 선거에서 20.5%를 득표하는 데 그쳤으며 대공황의 여파로 어느 정도 회복된 지지기반을 다시 상실하여 우익은 나치당, 좌익은 공산당으로 각각 흡수되었다. 1933년 SPD는 바이마르 의회의 전체 647석 가운데 120석을 차지한 반면, 나치당은 288석, 공산당은 81석을 각각 획득했다.
SPD는 1933년 나치당에 의해 정치활동이 금지된 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서야 부활되었다. 동독의 경우, KPD와 연합하여 집권 사회주의통일당을 결성했으며 서독에서는 득표율이 점차 상승하여 1953년 28.8%였던 것이 1972년에는 45.9%로 호전되었다. 1966년 기독교민주당과 함께 연립내각을 구성했고 1969년에는 자유민주당과 연합하여, 자유민주당이 기독교민주당으로 제휴세력을 교체한 1982년까지 다수파로 집권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점차 우경화되어 1959~60년은 마르크스주의와 계급투쟁을 포기하고 노동자의 정당이 아닌 국민의 정당으로 스스로를 재정립한 바 있다. 도시 공업지대가 세력기반이며 주요 기관지는 주간 〈포어베르츠 Vorwärt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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