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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18. 12. 23, 함부르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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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독일 |
요약 독일의 정치가.
헬무트 슈미트는 1974~82년 총리를 지냈다. 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 기간중 동부전선의 기갑사단에서 복무했고 아르덴 공세에 참가하여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종전 후 곧바로 사회민주당(SPD)에 입당했다.
헬무트 슈미트는 함부르크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으며, 곧 함부르크 시정부의 경제운송과에서 근무했다(1949~53). 1953년 하원의원으로 선출되었으나 1961년 함부르크 시로 돌아와 1965년까지 시정활동을 계속했다. 1965년 하원에 복귀하여 1969~72년 국방장관, 1972~74년 재무장관을 역임했다.
헬무트 슈미트는 자유민주당(FDP)과의 연합을 통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SPD의 핵심간부로서 빌리 브란트의 사임에 뒤이어 1974년 5월 16일 총리로 선출되었고 1976년과 1980년 재선되었으나 자유민주당원들이 연합을 이탈한 뒤 1982년 10월 1일 치러진 하원의 불신임투표 결과 총리직을 사퇴했다. 후임자는 독일 기독교민주연합당의 헬무트 콜이었다. 총리 재임시절 슈미트는 대체로 독일 국민 대부분의 존경을 받았고 영향력 있는 서유럽 정치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1980년의 의회연설에서 헬무트 슈미트는 국제정치의 최우선 과제는 위기의 고조를 방지하고 그것을 해소하는 것이라고 전제한 뒤, "우리는 독일연방공화국이 큰 힘을 갖고 있지 않지만 발전가능성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슈미트는 여러 차례 모스크바를 방문했고 소련에 유화적이라는 이유로 미국과 야당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동서간의 대화중단사태 이후 프랑스의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과 함께 초강대국간의 대화 재개를 위해 노력한 것뿐이었음을 강조했다. 국제무대에서 상당한 실력을 행사하고 있던 슈미트는 경제불안정과 자유민주당의 연합 이탈 등 일련의 국내문제 악화로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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