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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법

다른 표기 언어 代田法

요약 밭농사법의 하나.

BC 90년 전한(前漢)의 조과(趙過)가 수속도위(搜粟都尉)가 되어 보급한 농법이다. 내용은 1무에 3열의 견(畎:고랑)을 만들어 여기에 파종하는데, 해마다 파종처를 바꾼다(歲代處). 이때 '대'는 '이'(易)를 뜻하는데, 이때문에 이런 토지를 '대전'이라 했다고 한다. 이같은 파종법은 이랑을 크게 만들거나 평지에 파종하는 방식(縵田)보다 지력이용률을 높여준다.

그리고 고랑에서 싹이 자람에 따라 둔덕을 김매고, 그 흙을 긁어내려 고랑의 묘근을 덮어준다. 그러면 여름이 가까워올수록 둔덕은 낮아지고 묘근은 깊어져 내풍성·내한성이 강해지며 노동력도 절감된다. 때문에 대전법은 만전에 비해 소출이 높아 조과 당시에 무당 1곡(斛), 잘하면 2배까지도 증수했다고 한다.

그러나 1무3견과 '세대처'의 실체와 작무(作畝) 방식에 대해서는 중국의 역대 농학자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해석이 분분하다. 서광계는 이를 1무 안에서 해마다 전년에 고랑이었던 곳을 이랑으로, 이랑이었던 곳을 고랑으로 바꾸어 경작하는 방식이라고 보았다. 이는 가장 일반적인 설로 서유구·박지원 등 실학자들도 이 설을 받아들였다.

반면에 대전을 휴한전이란 뜻으로 해석하여 이렇게 정지(整地)한 토지를 매년 휴한시켜 경작한다는 뜻으로 해석하거나 3개의 고랑을 만들고 해마다 1고랑씩 이용하는 방식이라는 설도 있다. 무의 크기에 대해서도 설이 많은데 한나라 때의 척도에 따라 길이 240보, 폭 1보(6척)로 보는 설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중기까지도 만전법이 유행하고, 둔덕[壟]을 만들어도 둔덕과 둔덕 사이(溝)를 둔덕보다 2~3배 넓게 하여 이 부분을 휴식시켰다가 다음해에는 이곳에 둔덕을 만들어 파종하거나 혹은 그 사이에 다른 작물을 심어 함께 재배하는 간종법(間種法)을 사용했다. 따라서 파종도 넓게 흩뿌리는 산파법(散播法)을 썼다. 다만 사료에 드물게 '대전'이 나타나는데, 실체는 분명하지 않다.

대전과 휴한전이 같은 것이라고 해석하여 아직 상경화되지 않는 휴한전을 의미하는 말로 보기도 하고, 주거지를 근처에 두고 채소 등을 재배하는 소규모 텃밭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조과의 대전법은 17세기 이후 유형원·박세당·서유구·박지원 등 실학자들에 의해 활발하게 연구되었다. 실학자들은 보다 집약적 농법인 견종법을 채택한다는 관점에서 대전법을 주목한 것으로, 서광계의 설에 입각하여 우리 실정에 맞는 정지법과 작무법, 농구개량에 노력했다. 서유구는 이같은 대전법의 장점으로 위의 사항 외에도 대전은 고랑 안에 일정하게 파종하므로 곡의 숙성이 일정하며 시비도 묘근 부분에 집중적으로 고르게 할 수 있다는 점, 또 앉아서 짧은 호미로 제초해야 하는 만전에 비해 장병서(長柄鋤)로 서서 할 수 있으므로 작업능률이 높고, 파종 때 종자도 절약된다는 점을 들었다.→ 견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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