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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도교는 영적·내세적 종교가 아니라, 육체적 생명과 현세적 삶을 추구하는 종교이다. 때문에 도사들은 양생술 또는 방생술을 중시하여 각 교파 나름대로 독자적인 방법을 고안해냈으며, 또 그 수행에도 힘썼는데, 이는 신선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선사상을 집대성한 갈홍은 〈포박자〉에서 금단술에 관하여 자세하게 서술했는데, 금단의 복용이라는 구체적인 약물요법을 중시했다. 그러나 단의 독기로 생명의 단축 내지는 생명 상실의 역효과를 초래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자 내적 생명력의 수련을 통해 인체 내에서 금단을 형성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것을 내단이라고 하며, 뒷날 단학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내단은 육체 속에 깃들어 있는 원정·원기·원신을 기르는 방법으로 단학에서는 정·기·신을 육신이 본유한 고귀한 약물로 간주해왔다.
개요
이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이능화(李能和:1868~1945)이다.
그의 저서 〈조선도교사〉의 제21장 조선단학파 속에서 단학파·단파·단학 등의 말을 사용하였다. 도교의 맥을 형성하는 단학파의 도맥은 멀리 상고시대의 단군과 관련을 두며 한국의 고유사상인 신도·선도에다 그 연원을 두고 있다.
중국 도교의 성립과 단학
단학이란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중국 도교의 성립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후한대에는 도가·황로학·신선설·참위설 등의 사상과 신앙이 행해지는 한편 일부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불교도 수용되었다. 또한 동중서에 의해 신비적인 경향이 가미된 유학은 후한대에 들어와서는 앞의 것들의 영향을 받아 방술·도술·참위서 등에 정통한 유가들도 꽤 많이 배출했는데, 그들 사이에는 유가의 경전을 읽는 것 자체에 주술적인 힘을 인정하는 경향조차 보이게 되었다.
당시의 지식인들 가운데는 각기 작은 집단을 만들어 자신들의 주장을 폈는데, 이것은 학파라기보다는 오히려 종교적인 성격을 띤 집단이었다.
이러한 집단이 생겨난 사회적인 원인은 정치적 혼란과 함께 당시 촌락공동체의 붕괴에 따라 종래 신앙생활의 중심이었던 토지신[社]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대신해서 의지할 수 있는 신앙과 공동체를 대신할 조직이 필요했고, 아울러 생활의 안정도 원했다. 그결과 종교적 집단이 많이 생겨났고, 그들 중에는 반란을 일으켰던 교파들도 있었는데 가장 큰 집단이 태평도와 오두미도였다.
황건적의 난을 일으킨 태평도(太平道)는 장각(張角)이 중심인물이지만, 그 시초는 간길(干吉:일명 于吉이라고도 함)에게서 비롯되었다. 동쪽에서 일어난 태평도와 거의 같거나 조금 늦게 서쪽에서는 오두미도(五斗米道)가 일어났다. 오두미도는 장릉(張陵:뒷날 張道陵으로 불려짐)에 의하여 개창되었는데, 후에 천사도(天師道)라 불렀다. 3세기 초엽에는 태평도와 천사도가 통합되었다.
구겸지의 장생술
마침내 북위(北魏) 숭산(嵩山:河南)의 도사 구겸지(寇謙之:365~448)에 의하여 신천사도(新天師道)가 성립됨으로써 도교는 비로소 그럴듯한 내용과 체제를 가진 종교로 조직되었다.
위진남북조시대 이래로 불교가 점차로 중국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는데 도교는 이론적인 면에서 불교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러므로 불교에 대항하여 도교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불교에 못지 않는 종교적인 내용과 체제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해서 개선된 조직이 구겸지에 의해서 제창된 신천사도였다. 구겸지는 도교를 청정하게 만들고, 삼장(三張:오두미도의 창시자인 張陵과 그의 아들 衡 및 손자 魯를 합해서 부르는 말)의 거짓된 법, 쌀로 세금을 받는 것, 남녀 합기술 등을 없애버렸다.
그는 오로지 예도(禮度)를 제일로 하고, 복식(복약법)·폐련(명상법)·복기(호흡법)·도인(안마법)·벽곡(식이법) 등의 장생술을 배워 자기의 수행을 완성시켰다. 이것은 바로 천사도의 개혁이 완성되었음을 의미한다. 그후 구겸지는 신천사도의 단위·예배·의식 등의 종교적 의례와 세계관, 신들의 계열, 복장, 부적 등을 제도화하고 정비했다. 그리고 도사의 자격을 4단계로 나누어 법록을 수여했다. 이것으로써 명실공히 도교가 성립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구겸지는 노자(老子)를 도교의 개조로 삼고 자신이 그 정통을 이은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이후로 노자가 도교의 개조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5세기 중엽에는 도교가 국가적 종교의 위치를 획득하게 되었다.
도교의 가르침은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일을 하면 화를 당한다"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생명의 연장과 현실적 축복을 얻자는 것이다. 도교는 신선방술을 기본으로 하여 고대 중국으로부터 내려온 음양술·오행설·복서(점)·의술·참위설 등을 종합했다.
또한 유교의 세간도덕과 불교의 인과응보설을 교묘히 결합하여 일반 대중에게 안심입명(安心立命)의 위안을 주려고 했다. 그러므로 도교란 한마디로 개괄하기는 어려우나 장수·부귀·행복 등을 구하기 위해 도덕적 선행을 실천하고 귀신에게 제사지내는 종교, 즉 일종의 현세적·공리적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도교는 영적·내세적 종교가 아니라, 육체적 생명(不老長生)과 현세적 삶(現世利益)을 추구하는 종교이다. 이와 같이 도교의 목적이 불로장생이기 때문에 도사들은 양생술 또는 방생술을 중시하여 각 교파 나름대로 독자적인 방법을 고안해냈으며, 또 그 수행에도 힘썼다.
인간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벽곡, 복이(服餌:여러 가지 약의 제조법과 복용법), 조식(調息:심호흡법), 도인(導引:보건체조 또는 안마법), 방중(房中:성생활의 조화) 등의 일을 중시하고 실행해야 한다. 이와 같은 방법들은 신선사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신선사상에서는 인간이 특수한 수련을 통하여 영생불사하는 신선이 될 수 있으며 그러한 신선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믿음을 갖게 해준다.
이는 전국시대에 생겨서 한나라 때 널리 신봉되었다.
갈홍의 신선사상
이러한 신선사상을 집대성한 인물은 서진(西晉) 때 단양구용(丹陽句容:南京 근처) 사람인 갈홍(葛洪:283~343)이었다.
그의 저술인 〈포박자 抱朴子〉는 도교 수련의 중요한 소재를 제공했다. 〈포박자〉에는 금단술(金丹術)에 관하여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단을 연마하는 방법(煉丹術 또는 練丹術)에는 2종류가 있다. 첫째, 외부의 물질을 섭취하여 수명을 연장시키는 방법이다. 이 외부의 물질(不死藥)이 금단(金丹)이며, 이러한 방법을 외단(外丹)이라고 한다.
둘째, 인간의 정신적인 수련을 통한 방법이다. 이것은 자신의 체내에서 금단을 완성하는 것으로, 이러한 방법을 내단(內丹)이라고 한다.
〈포박자〉에서는 금단의 복용이라는 구체적인 약물요법을 중시한다. 선약편에서는 신선이 되는데 유효한 약의 종류를 3가지로 구별한다. 그중 하약(下藥)은 질병을 치료하는 효력을 지니며, 상약(上藥)은 수명을 연장하고 귀신을 부릴 수 있는 조화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상약에 해당하는 것이 금단인데, 이는 금액(金液)과 환단(還丹)을 합하여 부르는 용어이다. 환단은 단사(丹砂:유화수은 혹은 황화수은, 황화제이수은, 수은과 유황의 천연화합물로서 주황색의 광물질인데 중국에서는 辰州産이 유명함)를 태워 화학변화시킨 것을 주성분으로 하고 여러 가지 광물질을 첨가하여 만든 고체의 약이다. 금단편에서는 여러 종류의 단을 제시하고 가장 뛰어난 것을 태청신단(太淸神丹)이라고 했다. 금액은 황금에 여러 가지 광물질을 섞어서 만든 액체의 약이다. 이렇게 만든 단약(환단)을 복용하면 단사의 변화성·환원성·조화성에 힘입어 노쇠한 몸도 다시 회춘하게 되고, 금액을 마시면 황금의 불변성으로 말미암아 육체가 영원히 죽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2가지 약을 제조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데, 그 과정이 복잡할수록 더욱 위대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 금단술은 중국 연금술의 발달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포박자〉에서는 이밖에 호흡법·방중술·음식조절법 등을 금단술의 하위체계로 보았다. 이러한 양생법은 모두 기(氣)의 단련에 의해 신선이 된다는 견해이다. 금단술은 외부의 탁월한 기를 인체 내에 복용하는 방법이며, 호흡법은 인체 내의 원기를 배양하는 법이다.
음식조절법도 탁한 기를 버리고 맑은 기를 얻으려는 방법이다. 따라서 〈포박자〉의 신선사상에는 기의 단련이 중요시되고 있다. 그런데 외단을 통한 수명 연장의 방법은 사실상 실효를 거두기가 어렵고, 도리어 금단의 독기로 생명의 단축 내지는 생명 상실의 역효과를 초래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연금술이 최고로 발달되었던 당나라 때에는 실제로 많은 임금들이 단약을 먹고 수은 중독에 걸려 죽는 일이 일어났다. 이렇게 되자 금단을 제조하는 대신 내적 생명력의 수련을 통해 인체 내에서 금단을 형성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제 금단도를 외적인 것에서 내적·본성적인 것으로 전환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것을 내단이라고 하며, 뒷날 단학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내단은 인간의 육체 속에 깃들어 있는 3가지의 근원적인 힘, 즉 원정(元情)·원기(元氣)·원신(元神)을 기르는 방법이다. 단학에서는 정·기·신을 육신이 본유한 고귀한 약물로 간주해왔고, 정·기·신을 수련한다는 것은 곧 정신수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일원기(一元氣)의 흐름을 역행시켜 정을 기로 변화시키고, 기를 다시 신으로 변화시키며, 신도 궁극에는 허(虛)로 환원시키려는 것이다. 결국 정·기·신을 그 근원처로 되돌리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요체는 수중(守中)과 포일(抱一)이니, 모든 인위적인 사념(私念)을 배제한 가운데 마음을 고요히 하여 정신을 통일하는 것이 바로 단학의 수련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내단법은 기를 단련하여 금단을 완성시킴으로써 신선이 된다는 것이다. 내단법은 〈포박자〉의 신선사상 중에서 호흡법(혹은 行氣法)을 택하여 발전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외단에서 내단으로의 전환은 당과 송의 양대에 걸쳐 서서히 이루어졌다.
위백양의 연단법
한편 단학과 관련이 있는 또 하나의 문헌은 2세기경 오(吳)나라 사람 위백양(魏伯陽)이 저술했다고 하는 〈주역참동계 周易參同契〉(줄여서 〈참동계〉라고 부름)이다.
위백양의 행적은 분명하지 않은데 후한 환제 때 오나라의 명문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도술을 좋아하여 뒷날 산에 들어가 금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참동계〉는 주역과 음양오행설을 연결시킨 저술이다. '참동계'라는 말의 뜻은 그의 사상이 '주역'과 같은 원리이며 뜻이 통하고 대의가 합한다는 것이다.
〈참동계〉에서의 연단법은 연명장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천지의 법칙에 따라 단을 제련하는 문제이다. 구체적인 방법에는 내단적인 것과 외단적인 것이 있다. 그런데 〈참동계〉의 문장은 기괴하여 그에 대한 해석도 구구하다. 어떤 학자들은 〈포박자〉가 외단의 대표적인 저작이라면, 〈참동계〉는 내단의 대표적인 저작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위백양의 〈참동계〉와 갈홍의 〈포박자〉는 한국 도교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국의 민중도교와 단학
한국의 도교는 유교나 불교의 존재양상과는 달리 표면상의 독립된 자기 면모없이 복잡하고 다양한 민간신앙과 생활관습 속에 소박한 믿음으로 존속해왔다.
한편 한국 도교의 표면적 양상은 재초(齋醮) 위주의 국가적 의례행사로 존속했던 의식도교(儀式道敎:혹은 科儀道敎)와 단학의 도맥(道脈)을 형성케 한 수련도교(修練[鍊]道敎)의 2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 도교는 한 번도 교단을 형성한 일이 없다.
한국에 도교가 처음으로 들어온 해는 고구려 말기인 624년(영류왕 7)이다.
그뒤 보장왕 때 권신 연개소문에 의하여 널리 유포되고 일시적으로 세력을 떨쳤다. 이때 도입된 도교는 도관(道觀:도교의 사원)에서 도사를 중심으로 국가의 복을 비는 초제(醮祭)와 같은 의식을 주로 하는 의식도교였다. 의식도교는 고려시대에 국가의 비호를 받으며 성장했는데,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것이 주요목적이었다.
한국 도교의 뚜렷한 흐름은 도교의 지적 엘리트 간에 전승된 수련적 도교이다.
이 수련도교는 엄격한 자기 수련을 통해 신선이 된다는 이상을 지닌 내단학이다. 수련도교의 맥은 멀리 단군과 관련을 가지며 신도·선도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단학파의 시초는 신라 말기의 당나라 유학생들인데, 그 대표적인 인물은 김가기·최승우·자혜·최치원 등이다. 수련도교는 일부 식자들간에 기행·방술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는데, 이들은 합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하여 장생을 위한 양생의 수련과 이론을 병행함으로써 점차 도맥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 도맥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더욱 확실해져 일종의 학파를 형성했다. 조선시대의 (내)단학은 기복도교적인 주술적 요소를 가능한 한 배격하고 순수한 내적 수련에 치중했다. 이는 은일자들 사이에서 성행했는데, 그들은 양생법과 함께 인격수양도 병행했다. 이 양생술은 불자와 유자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고 의학 내지는 의술의 발전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한국에서 독자적인 도맥을 전개시킨 수련적 도교를 이능화는 조선단학파라고 불렀다.
조선단학파의 인물 중에서 저서를 남긴 사람은 김시습과 정렴뿐이다. 김시습의 현학적이고 철학적인 수련방법이 정렴에게서는 건강을 위한 예방의학적인 측면으로 변화되었다. 김시습은 단학수련에 대해 많이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단학자체에 대해서는 매우 혹독한 비판을 가했다. 조선단학파가 특히 중시한 도교의 경전은 〈참동계〉와 〈황정경 黃庭經〉이었다.
단학파들은 신선사상을 숭앙하고 신선이 되기 위해 수련을 쌓았다. 그 수련이란 심호흡법·벽곡·도인(導引)에 의한 신체의 단련을 말하며, 자신의 체내에 장생불사약이라고 불리는 내단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심호흡법을 정점으로 하는 내관법적인 도인이 그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한국 도교의 핵심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민중도교라고 볼 수 있다.→ 도가와 도교, 선도교
구겸지의 장생술
북위(北魏) 숭산의 도사 구겸지(寇謙之:365~448)에 의하여 신천사도가 성립됨으로써 도교는 비로소 그럴듯한 내용과 체제를 가진 종교로 조직되었다. 위진남북조시대 이래로 불교가 점차로 중국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는데 도교는 이론적인 면에서 불교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러므로 불교에 대항하여 도교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불교에 못지 않는 종교적인 내용과 체제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해서 개선된 조직이 구겸지에 의해서 제창된 신천사도였다. 구겸지는 도교를 청정하게 만들고, 삼장(오두미도의 창시자인 장릉과 그의 아들 장형 및 손자 장로를 합해서 부르는 말)의 거짓된 법, 쌀로 세금을 받는 것, 남녀 합기술 등을 없애버렸다.
그는 오로지 예도를 제일로 하고, 복식(복약법)·폐련(명상법)·복기(호흡법)·도인(안마법)·벽곡(식이법) 등의 장생술을 배워 자기의 수행을 완성시켰다. 이것은 바로 천사도의 개혁이 완성되었음을 의미한다. 그후 구겸지는 신천사도의 단위·예배·의식 등의 종교적 의례와 세계관, 신들의 계열, 복장, 부적 등을 제도화하고 정비했다.
그리고 도사의 자격을 4단계로 나누어 법록을 수여했다. 이것으로써 명실공히 도교가 성립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구겸지는 노자(老子)를 도교의 개조로 삼고 자신이 그 정통을 이은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이후로 노자가 도교의 개조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5세기 중엽에는 도교가 국가적 종교의 위치를 획득하게 되었다.
도교의 가르침은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일을 하면 화를 당한다"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생명의 연장과 현실적 축복을 얻자는 것이다. 도교는 신선방술을 기본으로 하여 고대 중국으로부터 내려온 음양술·오행설·복서(점)·의술·참위설 등을 종합했다. 또한 유교의 세간도덕과 불교의 인과응보설을 교묘히 결합하여 일반 대중에게 안심입명의 위안을 주려고 했다.
그러므로 도교란 한마디로 개괄하기는 어려우나 장수·부귀·행복 등을 구하기 위해 도덕적 선행을 실천하고 귀신에게 제사지내는 종교, 즉 일종의 현세적·공리적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도교는 영적·내세적 종교가 아니라, 육체적 생명(不老長生)과 현세적 삶(現世利益)을 추구하는 종교이다.
이와 같이 도교의 목적이 불로장생이기 때문에 도사들은 양생술 또는 방생술을 중시하여 각 교파 나름대로 독자적인 방법을 고안해냈으며, 또 그 수행에도 힘썼다. 인간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벽곡(오곡을 먹지 않음, 일종의 식이법), 복이(여러 가지 약의 제조법과 복용법), 조식(심호흡법), 도인(보건체조 또는 안마법), 방중(성생활의 조화) 등의 일을 중시하고 실행해야 한다.
이와 같은 방법들은 신선사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신선사상에서는 인간이 특수한 수련을 통하여 영생불사하는 신선이 될 수 있으며 그러한 신선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믿음을 갖게 해준다. 이는 전국시대에 생겨서 한나라 때 널리 신봉되었다.
갈홍의 신선사상
신선사상을 집대성한 인물은 서진(西晉) 때 단양구용 사람인 갈홍(葛洪:283~343)이었다. 그의 저술인 〈포박자〉는 도교 수련의 중요한 소재를 제공했다. 〈포박자〉에는 금단술(金丹術)에 관하여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단을 연마하는 방법(煉丹術 또는 練丹術)에는 2종류가 있다.
첫째, 외부의 물질을 섭취하여 수명을 연장시키는 방법이다. 이 외부의 물질(不死藥)이 금단이며, 이러한 방법을 외단이라고 한다. 둘째, 인간의 정신적인 수련을 통한 방법이다. 이것은 자신의 체내에서 금단을 완성하는 것으로, 이러한 방법을 내단(內丹)이라고 한다.
〈포박자〉에서는 금단의 복용이라는 구체적인 약물요법을 중시한다. 선약편에서는 신선이 되는데 유효한 약의 종류를 3가지로 구별한다. 그중 하약은 질병을 치료하는 효력을 지니며, 상약은 수명을 연장하고 귀신을 부릴 수 있는 조화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상약에 해당하는 것이 금단인데, 이는 금액과 환단을 합하여 부르는 용어이다.
환단은 단사(유화수은 혹은 황화수은, 황화제이수은, 수은과 유황의 천연화합물로서 주황색의 광물질인데 중국에서는 진주산(産)이 유명함)를 태워 화학변화시킨 것을 주성분으로 하고 여러 가지 광물질을 첨가하여 만든 고체의 약이다. 금단편에서는 여러 종류의 단을 제시하고 가장 뛰어난 것을 태청신단이라고 했다.
금액은 황금에 여러 가지 광물질을 섞어서 만든 액체의 약이다. 이렇게 만든 단약(환단)을 복용하면 단사의 변화성·환원성·조화성에 힘입어 노쇠한 몸도 다시 회춘하게 되고, 금액을 마시면 황금의 불변성으로 말미암아 육체가 영원히 죽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2가지 약을 제조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데, 그 과정이 복잡할수록 더욱 위대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 금단술은 중국 연금술의 발달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포박자〉에서는 이밖에 호흡법·방중술·음식조절법 등을 금단술의 하위체계로 보았다. 이러한 양생법은 모두 기(氣)의 단련에 의해 신선이 된다는 견해이다. 금단술은 외부의 탁월한 기를 인체 내에 복용하는 방법이며, 호흡법은 인체 내의 원기를 배양하는 법이다. 음식조절법도 탁한 기를 버리고 맑은 기를 얻으려는 방법이다.
따라서 〈포박자〉의 신선사상에는 기의 단련이 중요시되고 있다. 그런데 외단을 통한 수명 연장의 방법은 사실상 실효를 거두기가 어렵고, 도리어 금단의 독기로 생명의 단축 내지는 생명 상실의 역효과를 초래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연금술이 최고로 발달되었던 당나라 때에는 실제로 많은 임금들이 단약을 먹고 수은 중독에 걸려 죽는 일이 일어났다.
이렇게 되자 금단을 제조하는 대신 내적 생명력의 수련을 통해 인체 내에서 금단을 형성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제 금단도를 외적인 것에서 내적·본성적인 것으로 전환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것을 내단이라고 하며, 뒷날 단학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내단은 인간의 육체 속에 깃들어 있는 3가지의 근원적인 힘, 즉 원정·원기·원신을 기르는 방법이다. 단학에서는 정·기·신을 육신이 본유한 고귀한 약물로 간주해왔고, 정·기·신을 수련한다는 것은 곧 정신수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일원기의 흐름을 역행시켜 정을 기로 변화시키고, 기를 다시 신으로 변화시키며, 신도 궁극에는 허(虛)로 환원시키려는 것이다. 결국 정·기·신을 그 근원처로 되돌리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요체는 수중(守中)과 포일(抱一)이니, 모든 인위적인 사념을 배제한 가운데 마음을 고요히 하여 정신을 통일하는 것이 바로 단학의 수련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내단법은 기를 단련하여 금단을 완성시킴으로써 신선이 된다는 것이다.
내단법은 〈포박자〉의 신선사상 중에서 호흡법(혹은 行氣法)을 택하여 발전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외단에서 내단으로의 전환은 당과 송의 양대에 걸쳐 서서히 이루어졌다.
위백양의 연단법
2세기경 오(吳)나라 사람 위백양(魏伯陽)이 저술한 단학과 관련이 있는 문헌으로 〈주역참동계〉(줄여서 〈참동계〉라고 부름)가 있다. 위백양의 행적은 분명하지 않은데 후한 환제 때 오나라의 명문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도술을 좋아하여 뒷날 산에 들어가 금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참동계〉는 주역과 음양오행설을 연결시킨 저술이다.
'참동계'라는 말의 뜻은 그의 사상이 '주역'과 같은 원리이며 뜻이 통하고 대의가 합한다는 것이다. 〈참동계〉에서의 연단법은 연명장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천지의 법칙에 따라 단을 제련하는 문제이다. 구체적인 방법에는 내단적인 것과 외단적인 것이 있다.
그런데 〈참동계〉의 문장은 기괴하여 그에 대한 해석도 구구하다. 어떤 학자들은 〈포박자〉가 외단의 대표적인 저작이라면, 〈참동계〉는 내단의 대표적인 저작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위백양의 〈참동계〉와 갈홍의 〈포박자〉는 한국 도교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국의 단학
한국의 도교는 유교나 불교의 존재양상과는 달리 표면상의 독립된 자기 면모없이 복잡하고 다양한 민간신앙과 생활관습 속에 소박한 믿음으로 존속해왔다. 한편 한국 도교의 표면적 양상은 재초 위주의 국가적 의례행사로 존속했던 의식도교와 단학의 도맥을 형성케 한 수련도교의 2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 도교는 한 번도 교단을 형성한 일이 없다.
한국에 도교가 처음으로 들어온 해는 고구려 말기인 624년(영류왕 7)이다. 그뒤 보장왕 때 권신 연개소문에 의하여 널리 유포되고 일시적으로 세력을 떨쳤다. 이때 도입된 도교는 도관(도교의 사원)에서 도사를 중심으로 국가의 복을 비는 초제와 같은 의식을 주로 하는 의식도교였다. 의식도교는 고려시대에 국가의 비호를 받으며 성장했는데,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것이 주요목적이었다.
한국 도교의 뚜렷한 흐름은 도교의 지적 엘리트 간에 전승된 수련적 도교이다. 이 수련도교는 엄격한 자기 수련을 통해 신선이 된다는 이상을 지닌 내단학이다. 수련도교의 맥은 멀리 단군과 관련을 가지며 신도·선도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단학파의 시초는 신라 말기의 당나라 유학생들인데, 그 대표적인 인물은 김가기·최승우·자혜·최치원 등이다. 수련도교는 일부 식자들간에 기행·방술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는데, 이들은 합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하여 장생을 위한 양생의 수련과 이론을 병행함으로써 점차 도맥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 도맥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더욱 확실해져 일종의 학파를 형성했다. 조선시대의 (내)단학은 기복도교적인 주술적 요소를 가능한 한 배격하고 순수한 내적 수련에 치중했다. 이는 은일자들 사이에서 성행했는데, 그들은 양생법과 함께 인격수양도 병행했다. 이 양생술은 불자와 유자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고 의학 내지는 의술의 발전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한국에서 독자적인 도맥을 전개시킨 수련적 도교를 이능화는 조선단학파라고 불렀다. 조선단학파의 인물 중에서 저서를 남긴 사람은 김시습과 정렴뿐이다. 김시습의 현학적이고 철학적인 수련방법이 정렴에게서는 건강을 위한 예방의학적인 측면으로 변화되었다. 김시습은 단학수련에 대해 많이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단학자체에 대해서는 매우 혹독한 비판을 가했다. 조선단학파가 특히 중시한 도교의 경전은 〈참동계〉와 〈황정경〉이었다.
단학파들은 신선사상을 숭앙하고 신선이 되기 위해 수련을 쌓았다. 그 수련이란 심호흡법·벽곡·도인(導引)에 의한 신체의 단련을 말하며, 자신의 체내에 장생불사약이라고 불리는 내단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심호흡법을 정점으로 하는 내관법적인 도인이 그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한국 도교의 핵심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민중도교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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