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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부터 사람들의 거주지였음을 보여주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 산재해 있다.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전야산군(轉也山郡:또는 轉伊山郡)으로, 757년에는 남해군으로 이름을 바꾸어 강주(康州:진주)에 속했다. 이때 영현으로 난포현(蘭浦縣:이동면 일대로 본래 內浦縣이었음)과 평산현(平山縣:남면 일대로 본래 平西山縣 또는 西平縣이었음)을 가졌다.
1018년에 현령을 설치했으며, 같은 현종대에 난포현과 평산현이 속현으로 합해졌다. 1358년 왜구의 침략이 심하여 주민들은 진주목의 대야천부곡(大也川部曲)으로 피란했다가 1404년 복구했다. 1414년 하동에 병합되어 하남현(河南縣)이라 칭했다가 다음해 분리되었으며, 그뒤 금양부곡과 합하여 해양현이라 부르다가 1417년 남해현으로 환원되었다. 1419년 곤명현과 합하여 곤남군이 되었다가 1437년 복구되었다.
1598년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함대가 노량 앞바다에서 왜군을 크게 물리쳤으나, 이곳에서 이순신 장군이 전사했다. 조선시대에는 유배지 가운데 하나로 많은 인물들의 자취가 남아 있다. 별호는 전산(轉山)·화전(化田)·윤산(輪山)이었다. 1895년 지방제도개혁으로 군이 되었다가 이듬해 경상남도에 속했다. 1906년 월경지 정리에 의해 진주의 비입지인 적량면·창선면이 편입되었다. 1973년 남해고속도로와 남해대교가 개통되어 육지화되었다. 1979년 남해면이 읍으로 승격했으며, 1980년 창선교의 개통으로 남해도와 창선도가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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