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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서유럽 도시의 개방된 장소에 사람들이 한데 모이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장소의 발달.
서구 도시의 광장은 고대 그리스 도시의 아고라(agora)나 고대 로마 도시의 포룸에서 비롯한 것으로 여겨진다. '신들의 아고라'라고 불리던 아크로폴리스가 있어 도시의 신성한 정신적인 핵 역할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시민생활의 핵 역할을 했다. 처음에는 주로 정치나 입법 집회를 위한 장소였으나 점차 상업기능이 강해지고 나아가서는 주위에 제단이나 소신전이 설치되는 등 도시의 중심부로서 성격이 짙어졌다.
로마 최초의 포룸인 포룸 로마눔은 몇 세기 동안 존속하면서 그 주위에 신전, 집회 장소, 행정·정치 시설, 상점 등이 들어 섰는데, 다른 곳에 상업 광장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포룸은 차츰 신성한 장소, 의식적인 장소가 되어 갔다. 기원전 1세기경의 폼페이 포룸은 콜로네이드[柱廊]로 둘러싸인 장방형이었는데 주로 공공의식의 개최 장소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제정시대 로마 시에는 카이사르 포룸을 시작으로 황제의 포룸이 건설되었다.
아고라나 포룸을 원류로 하는 서구 도시의 광장은 이후 중세, 르네상스 시대, 바로크 시대를 거치며 크게 성장했다. 중세 유럽은 각지에서 도시가 재건된 시대였고 그 대다수는 광장을 핵으로 삼아 도시가 구성되었다. 중세의 주요광장은 교회 앞 광장, 시청 청사 앞 광장, 길드 홀 앞 광장, 시장 광장 등이며, 이들은 각각 독립되어 있기도 하고 병용되기도 했다.
뮌헨의 시장 광장인 마리엔 광장이나 시에나의 시청 청사 앞에 있는 칸포 광장 등 독일·이탈리아의 중세광장이 유명하다. 르네상스 시대의 광장은 주위의 건물에 장식을 하거나 조각 또는 분수를 설치하는 한편 기하학적 형상으로 설계함으로써 공간 전체를 아름답게 한 것 들이 많다. 이는 특히 이탈리아에서 발전했으며 비제바노 왕궁 앞의 광장 등이 유명하다.
바로크 시대의 광장은 도시 전체에 미적 질서를 주고자 한 도시 개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로마 황제의 포룸에서 축선에 의한 공간 연결 기법을 찾아볼 수 있으나 바로크 광장의 대부분은 도시 공간에 질서를 주는 직선적인 도로의 교차 지점에 배치되었다. 로마에서는 가톨릭 교회의 정점인 교황청이 들어선 웅장하고 화려한 도시를 만들어내기 위한 도시 개조의 일환으로서 미켈란젤로·베를리니 등의 예술가가 동원되어 광장을 설계했다.
한편 파리에서는 부르봉 왕가의 영화를 도시 공간에 드러내기 위해 루 노틀, J. H. 만사르 등의 설계로 광장이 정비, 개조되었다. 로마에서는 콤피틀리오 광장과 성 베드로 광장 등, 파리에서는 반둠 광장과 콩코드 광장이 유명하다. 이와 같은 도시 공간의 질서화는 파리에서는 뒤에 오스만의 도시 개조에 계승되었고, 영국이나 독일의 광장은 처음부터 워싱턴 D. C. 등 신대륙의 수도 계획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광장은 수적으로나 조형적으로나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화려하게 꽃피운 반면 영국이나 스페인에는 이렇다 할 만한 광장이 적은데 그 이유로 기후나 사회적·경제적 요인이 거론되지만 확실치는 않다. 16세기 이래로 스페인 사람들은 중심에 광장이 있는 도시를 아메리카 대륙 여러 곳에 건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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