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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다른 표기 언어 torture , 拷問 동의어 고신, 拷訊

요약 고문은 고대 문명사회부터 행해져왔다. 14세기 중반부터 18세기말까지 대다수 유럽 국가들과 로마 가톨릭 교회는 고문을 법률소송절차의 일부로 공인했다. 당시의 고문도구들은 스트러페이도·랙·섬스크루 등이었다.
20세기에는 고문 사용이 크게 늘어났으며, 1948년 국제연합이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문은 여전히 많은 지역에서 행해지고 있다.
현대의 고문기술은 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방법부터 심리학·약리학의 복합적 방법의 사용까지 매우 다양하다. 고문 방법으로는 신체의 자연적인 고통억제과정을 억압하는 것, 수면과 감각을 박탈하는 것, 이빨·손톱·발톱을 강제로 뽑는 것, 모의처형, 신경자극제의 사용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신·형신 등의 이름으로 고문이 행해져왔지만, 오늘날에는 헌법상으로 완전히 폐지되었다.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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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볼 때 모든 정부는 적국인에 대하여 고문을 사용했으며, 이를 자국 법제도의 일부로서 운용해왔다.

또한 고문은 정부 이외의 사인(私人)에 의한(이를테면 범죄자에 의한) 행위를 기술하는 용어로 널리 사용되어왔다. 고통을 부과하는 형태는 저항을 억누를 뿐만 아니라 인간성을 파괴하기 위하여 고안해낸 고도의 심리적 기법을 이용한 모든 물리적 장치와 화학물질의 주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고문은 수많은 고대 문명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실행되었음이 분명하다.

정보를 얻어낼 목적으로 노예를 고문한 고대 그리스의 관행은 노예와 사회적 하위신분자로부터 증언을 받아내는 유효한 방법으로 사용된 초기 로마 법에 영향을 주었다.

로마 법에 대한 관심의 부활, 신뢰할 수 있는 정보확보를 위해 사용된 초기 방식에 대한 불만, 강력한 정치기구의 발전 등은 12세기초 유럽에서 고문의 사용을 증대시켰다(→ 중세). 그 이전에는 통상 결백선서(oath)·신판(神判 ordeal)·결투 등의 방법으로 사법상의 분쟁을 해결했으나, 13세기에 들어와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자백이 목격증인(eyewitness)의 증언과 함께 유죄를 확정짓는 수단이 되었다.

피의자는 정황증거(情況證據)를 근거로 해서는 유죄판결을 받을 수 없었다.

따라서 자백을 얻어내기 위해 점점 고문사용이 증가했으나, 대체로 고문은 피의자에게 불리한 증거가 유력한 경우에만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되었다. 14세기 중반부터 18세기말까지 대다수 유럽 국가들과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고문이 법률소송절차의 일부로 공인되었으며,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단자를 심문할 경우 고문의 사용을 승인했었다(→ 종교재판).

당시에 사용되었던 고문도구 중에는 스트러페이도(strappado:피의자의 등 뒤로 양손을 단단히 묶은 뒤, 그 줄을 끌어올려 몸을 매다는 형틀)·랙(rack:팔·다리와 몸통을 잡아당기는 도구)·섬스크루(thumbscrew:피의자의 엄지손가락을 죄는 쇠가 박힌 장치) 등이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프랜시스 베이컨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고문의 유용성을 주장했던 반면에, 일찍이 로마 시대부터 키케로와 세네카 등은 고문에 대해 공격했다.

세네카는 "고문은 무고한 사람까지도 죄를 지었다고 거짓말을 하도록 만든다"고 주장했다. 중세 유럽의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피고가 무죄인 경우에도 그는 불확실한 범죄 때문에 일정한 처벌을 당할 것이다. 그것도 그가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죄를 지었는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라고 말하면서 고문의 도덕적 타락성을 지적했다.

수세기에 걸쳐 고문에 대한 법적·도덕적 비난이 계속되었으나 그다지 호응을 얻지 못하다가, 계몽주의시대에 들어와서 인도주의 운동과 유럽 법에 있어서의 극적인 변화 등에 힘입어 그러한 비난의 목소리가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다.

새로운 소송절차는 정황증거에 따른 강한 혐의를 근거로 한 유죄판결을 허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 등의 나라에서는 목격자의 증언과 피의자의 자백이 갖는 중요성이 줄어들게 되었다. 또한 영국법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고문을 인정하지 않았다.

1532년 카롤리나 형사법전(Constitutio Criminalis Carolina)의 제정 이후 근세 초기의 규문주의 절차(糾問主義節次:형사절차의 개시와 심리가 일정한 소추권자의 소추에 의하지 않고 법원의 직권에 의하여 행해지는 절차로서, 재판기관과 소추기관의 동일성을 특징으로 함)에 있어서는 합리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하기 위해 피고인의 자백이나 2명 이상의 신용할 수 있는 목격자의 증언이 있어야 한다는 법정증거주의가 채택되었다.

이러한 자백 위주의 증거법에는 '자백은 증거의 왕'(confessio regina probationum)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자백의 증거가치를 절대시했고, 이러한 자백우위의 사상은 필연적으로 자백을 얻어내기 위한 가혹한 고문과 연결되어 극심한 인권침해를 초래했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의 문화적 산물의 하나인 '개혁된 형사소송법'(나폴레옹 치죄법)에서는 자유주의적 인권사상의 요청에 의해 고문이 금지됨과 동시에 법정증거주의를 버리고, 증거의 증명력을 법관의 자유판단에 일임하는 자유심증주의를 채택했다.

1800년경 대다수 유럽 국가들은 고문사용을 법적으로 폐지시켰으나, 20세기에 들어와서 고문의 사용이 크게 늘어났다.

근대국가의 정치적 강압이 이러한 고문의 증가를 부추켰는데, 특히 전시(戰時)의 군대나 정보기관에서 고문의 사용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고문이 가장 널리 확산된 곳은 이탈리아와 나치 독일 등의 파시스트 국가나 스탈린 치하의 소련 공산주의 정부와 같이 법률을 이용하여 이데올로기를 강제했던 국가들이다. 나치 강제수용소에서는 의사들이 소름끼치는 고문방법을 고안해내고, 피고문자들을 계속 고문할 수 있도록 숨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 일을 자행했다.

1948년에 국제연합(UN)에서 고문의 사용을 비난하는 문서인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1950년대 프랑스령 알제리와 그리스에서 널리 자행된 고문에 대한 실상이 폭로되었는데, 이는 20세기 후반에 있어서조차도 고문이 얼마나 많은 문명세계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즉 고문은 전세계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라틴아메리카·아프리카·중동 등을 비롯한 많은 지역에서 여전히 널리 행해지고 있다.

현대의 고문기술은 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전통적 방법들뿐만 아니라 고통에 대한 의학적·심리학적 연구결과로부터 발전된 심리학과 약리학(藥理學)의 복합적 방법의 사용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신경을 교란시키는 방법 중 가장 효과가 높은 것으로는 신체의 자연적인 고통억제과정을 억압하는 것으로, 이는 앞서 가해진 참기 어려운 고통을 심화·연장시킨다.

그밖의 방법으로는 수면과 감각을 박탈하는 것, 이빨이나 손톱, 발톱을 강제로 뽑아내는 것, 모의처형(mock execution) 또는 신경자극제의 사용 등이 있다.

1960년대 미국에서 행해진 한 실험은 가학성 변태자만이 고문을 가할 수 있다는 종래의 믿음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 실험에서는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평범한 시민들인 지원자들에게 일정 대상자를 상대로 기억력 테스트를 실시하도록 의뢰했다. 대상 '학습자'를 일정장치에 끈 등으로 고정시키고 전극을 부착시킨 뒤 그 학습자가 틀린 대답을 할 때마다, 지원자들은 강도높은 전기충격을 그 학습자에게 주라는 지시를 받았다.

지원자들에게는 알려주지 않았지만, 학습자는 직업적인 배우였으며 사실상 그들에게 아무런 충격도 전해지지 않도록 되어 있었다. 지시를 받은 대다수의 지원자들은 자신들이 알기에도 위험한 수준까지, 심지어는 학습자의 절규와 항의를 들은 뒤에도 계속해서 전기충격을 가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문은 고신(拷訊)·형신(刑訊)·고략(拷掠) 등의 여러 이름으로 행해져왔는데, 법사적(法史的) 측면에서 고찰하면 범죄에 대한 제재인 형벌과 고문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 형(刑)이라 불러왔다는 점이 특색이다.

고려시대에는 주로 당제(唐制)를 따랐고, 조선시대에는 주로 명률(明律)에 의하여 고문이 시행되었다. 죄인은 신문(訊問)에 대해서 자기부죄적(自己負罪的) 진술의 의무가 있었으므로 죄인이 자백하지 않는 경우에는 고문이 법적으로 허용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우리 헌법상으로도 고문은 완전히 폐지되었고("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재판·검찰·경찰 기타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 형사피의자 또는 기타 사람에 대하여 폭행 또는 가혹한 행위를 가한 때에는 형법상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죄'를 구성하여 가중처벌되며, 이러한 고문금지정신을 담보하기 위하여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 폭행, 협박, 신체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欺罔) 등 기타의 방법으로 임의로 진술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여 강제 등 자백의 증거능력을 제한하고 있으며, 피고인 또는 피고인이 아닌 자의 진술이 임의로 된 것이 아닌 것은 증거로 할 수 없다고 하여 진술의 임의성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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