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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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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886년 미국의 선교사 H.G. 언더우드가 서울 정동에 설립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갖는 기독교계의 중등교육기관.

최초의 교명은 언더우드 학당이었는데, 1893년 민로아 학당으로 바뀌었다가 1901년 미국 북장로교의 목사인 J. S. 게일이 교장으로 부임한 뒤인 1905년 경신학교로 고쳤다. 1905년 서병호(徐丙浩)를 최초의 졸업생으로 배출한 이래 매년 상당수의 졸업생이 나왔다. 당시 교사로는 언더우드, E. H.밀러 등 선교사와, 김정삼(金正三)·정해영(鄭海永)·정태용(鄭泰容)·김도희(金道熙) 등이 근무했다.

교육내용은 그리스도교 전도자와 교원을 양성할 목적으로 국어·영어·과학 등 일반 교과목 외에도 성경·교회사·미국사 등을 가르쳤다.

1910년 소학교원 양성을 위한 소학사범강습소를, 1911년에는 실업교육을 가르치는 수공부(手工部)를 각기 설립했다. 1913년 E.W. 쿤스 목사가 8대 교장으로 취임한 뒤, 자유·평등·박애를 교육이념으로 하는 교훈을 제정했다. 1915년 4월 초대 교장인 언더우드의 노력으로 경신학교 대학부가 설립되었는데, 이 대학부를 모체로 2년 후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가 설립되었다.

1938년 신사참배문제를 둘러싸고 미국 북장로교 선교회 소속의 재단측과 총독부 간에 마찰이 심화되면서, 1939년 선교회가 교육경영에서 물러나고 운영권이 황해도 안악재단의 김홍량(金鴻亮)에게로 넘어갔으며, 최태영(崔泰永)이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9대 교장에 취임했다. 1940년 4월에는 교사를 정릉으로 이전했다. 해방 후 남북 분단으로 안악재단이 학교경영과 단절되자 김상덕(金尙德)·신동기(申東起) 등이 동문회를 구성, 학교경영을 유지했다.

1952년 화재로 정릉교사가 소실되자 1955년 4월 혜화동 현교사로 이전했고, 곧 전필순(全弼淳) 목사를 이사장으로 하는 재단법인 경신학원을 설립했다. 1957년 신교사를 건립했고 그후 몇 차례 교사를 증축했다.→ 경신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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