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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토스카나 최고 귀족가문 가운데 하나.
피사 근처 게라르데스카·도노라티코·몬테스쿠다이오에 영지가 있었다. 13세기초 이 가문은 피사 공화국에서 황제파인 기벨린을 이끌고 밀라노의 비스콘티 가문이 이끄는 교황파 구엘프에 대항했으며 성직자 몇 명과 더불어 특히 군인·정치가들을 배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엘프와 기벨린).
기록에 처음으로 나오는 이 가문 사람은 스스로 게라르데스카와 도노라티코의 백작이 된 제라르도(990경 죽음)이다. 테디치오는 피사 최초의 포데스타가 되었다(1190). 기벨린을 지지하던 게라르도와 갈바노는 호엔슈타우펜 왕조의 마지 막 사람인 슈바벤 공작 콘라딘 편에 서서 나폴리를 구엘프 세력에게서 되찾으려 했으나 실패하고 그들의 지도자 콘라딘과 함께 나폴리에서 참수형을 당했다(1268. 10).
이 가문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도노라티코 백작 우골리노 델라 게라르데스카(1289. 3 죽음)로 처음에는 기벨린이었으나 뒤에는 구엘프 편을 들어 피사의 독재 영주가 되었다.
1284년 제노바가 피사를 위협하자 우골리노는 10년 임기의 포데스타 및 카피타노 델 포폴로(→ 포폴로)로 뽑혔다. 그는 피렌체와 평화조약을 맺고 그의 지위를 이용하여 정적들을 없앴으며 그들의 성을 파괴했다. 또한 동맹자였던 밀라노의 비스콘티 가문과 싸웠으며 공화국의 질서회복을 원했던 루지에리 델리 우발디니 대주교와 이해관계가 충돌했다. 대주교는 우골리노를 반역자로 기소하여 1288년 그를 그의 두 아들, 두 손자들과 함께 구알란디 탑에 가두었으며 그는 거기서 굶어죽었다.
1316~47년에는 게라르데스카 가문 사람들이 피사의 시뇨리아를 구성했는데 도노라티코 백작 가도(1320 죽음)는 1316년 폭군 우구초네 델라 파주올라를 제거하고 죽을 때까지 온건·공정한 방법으로 공화국을 다스렸다. 그가 죽은 뒤 라니에리는 다시 기벨린 편에 서서 가혹한 법률로 다스렸다. 도노라티코 백작 파치오(1340/41 죽음)는 반란을 일으켜 피사를 폭군인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에게서 해방시켰다.
지도자로 뽑힌 뒤 그는 피렌체, 나폴리 왕, 교황과 강화를 맺었으며 피사의 학문을 장려했다. 아버지 뒤를 이어 피사의 영주가 된 라니에리(1347 죽음)는 이 가문에서 마지막으로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담당한 사람이었다. 그가 죽고 또 이듬해 흑사병이 돌자 이 가문은 피사에서 힘을 잃기 시작했다.
이 가문의 일파가 16세기초 피렌체에서 다시 일어나 이탈리아 상류계급의 지위를 다시 찾았고 1534년 피렌체 시민권을 얻었으며 도노라티코 백작령을 회복했다(1710~75). 이 일파의 후손 가운데 유명한 인물은 군사 역사를 쓴 우고(1588~1646), 피에솔레 주교(1702)와 피렌체 대주교(1703)를 지냈고 피렌체에 신학교를 세운 톰마소 보나벤투라(1654~1721), 하원·상원 의원을 지낸 우골리노(1823~82)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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