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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이탈리아 중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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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3,722,729명 (2020년 추계) |
면적 | 22,992㎢ |
언어 | 이탈리아어 |
대륙 | 유럽 남부 |
국가 | 이탈리아 |
요약
이탈리아 중부에 있는 지방.
(영). Tuscany.
티레니아 해에 면해 있으며, 마사카라라·루카·피스토이아·피렌체·리보르노·피사·아레초·시에나·그로세토 주로 이루어져 있다. 이탈리아 북부 지방과 이탈리아 반도에 걸쳐 있는 전이지대로 옛 토스카나 대공작령과 거의 일치한다.
북쪽과 북동쪽으로 토스코에밀리아노아펜니노 산맥과 아푸아네알프스 산맥이 경계를 이루며, 이 두 산맥 사이로 아펜니노 산맥의 지맥을 이루는 알바노 산과 프라토마뇨 산맥 등에서 뻗어나온 기다란 계곡들이 연속해서 늘어서 있다.
시에나 남쪽에는 메탈리페레 고개, 아르젠타리오 산, 아미아타 산 등과 같은 척박하고 고도가 높은 산악고원지대가 펼쳐져 있다. 이 지방에서 저지대는 아르노 강 유역을 비롯한 내륙의 강 유역지나 마렘마와 같은 해안평야지대에서 나타난다.
역사
토스카나라는 이름은 BC 1000년경 이 지역에 정착했던 에트루리아족으로부터 유래되었다. 3세기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을 때는 투스키아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 6세기에 비(非)이탈리아계인 롬바르드족의 지배하에 공작령으로 통일되었고 루카를 그 중심지로 삼았다.
774년에는 프랑크족의 백작령이 되었다. 11세기에는 카노사·모데나·레조·만토바를 소유하고 이탈리아 중부의 주요세력으로 떠올랐던 아토니 가문에게 넘어갔다. 이 가문에서 가장 명성을 떨친 인물인 마틸다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1073~85)를 둘러싸고 일어났던 교황임관논란에서 그레고리우스를 지지했다. 1115년 마틸다가 죽고난 후 토스카나의 도시들은 점차 독립을 확보해 결국 전통적인 통일성을 상실했다.
다음 4세기 동안 도시들 간에 세력다툼이 벌어져 처음에는 피사가, 다음에는 피렌체가 지배권을 차지했으며, 이 지역은 르네상스 문화의 유수한 중심지가 되었다. 1434년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의 지배세력으로 출현하여 이 지역에 대한 세력을 점차 통일시키면서 토스카나는 공국으로 전환했다. 15세기말과 16세기초 외세의 침략중에 메디치 가문은 2차례(1495~1512, 1527~30)나 축출되었으나 1530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5세에 의해 세력을 되찾고 1569년부터 대공작의 칭호를 사용했다. 이 지역의 문화와 경제는 16세기초부터 쇠퇴했다.
1737년 메디치 대공작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인 잔 가스토네의 죽음으로 토스카나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후계자인 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이 될 로렌 공국의 프란츠에게 넘겨짐으로써 합스부르크-로렌가(家)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프란츠와 그의 아들 레오폴트 대공작의 지배하에 토스카나의 대혁명기가 시작되어 자국 내의 무역장벽이 제거되고 교회의 세력이 약화되었으며 사형이 폐지되었다. 1790년대말 이탈리아 반도가 프랑스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페르디난트 3세는 토스카나 공작령에서 도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1801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스페인 여왕의 조카 부르봉 파르마의 루이를 위해 토스카나에 트루리아 왕국을 세워주었다. 그러나 1808년 토스카나는 프랑스 제국에 합병되었고, 1809년에는 자신의 여동생 엘리사가 지배하도록 넘겨주었다. 1814년 나폴레옹의 몰락으로 페르디난트 3세는 토스카나에 귀환했으나 프랑스인들이 시행한 많은 개혁정책들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오스트리아 대공 페르디난트와 그의 아들 레오폴도 2세의 지배를 받던 19세기 첫 반세기 동안 토스카나는 자유주의자와 진보적 정부에 대한 관대함으로 이탈리아 제국들 사이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848년 이탈리아 전역에 파급된 자유혁명의 물결로 레오폴도는 입헌정치체를 받아들였지만 혁명적 동요는 점차 거세져 결국 1849년 2월 8일 공화국을 선포했고, 대공작가는 피난을 떠나야 했다. 레오폴도는 토스카나로 돌아왔지만 오스트리아인들의 보호를 받는 상태에서 귀환했기 때문에 많은 토스카나인들 상당수의 지지를 잃어버렸다. 피에몬테와 오스트리아의 전쟁이 일어났을 때(제2차 이탈리아 독립전쟁), 피에몬테의 입헌정체를 인정하는 것과 전쟁에서 피에몬테에 연합하는 것 모두를 거부한 레오폴도는 피렌체인들에 의해 추방되었다. 피에몬테의 주도하에 이탈리아를 통일하기 위해 베티노 리카솔리가 이끌던 임시정부의 활동으로 토스카나인들은 1860년 3월 11~12일에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인 투표율로 합병을 지지했다.
현대의 토스카나
토스카나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번창한 농업지역 가운데 하나로 밀을 비롯한 곡물, 올리브와 올리브유, 포도주 생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채소와 과일도 재배되며, 소·말·돼지 등 가금류 사육이 널리 이루어지고 있다. 이 지방의 농업은 메차드리아(mezzadria) 방식, 즉 자금과 경상비를 제공하는 지주와 노동력을 제공하는 소작인이 수확을 나누어 갖는 제도하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현재는 농업협동조합을 조직하는 추세가 강해지고 있다. 1966년 폭풍과 홍수로 피렌체와 그로세토가 피해를 입었을 당시 토스카나 지방의 농업 역시 큰 타격을 받았다.
아르노 강, 옴브로네 강에서 제공되는 물을 주로 이용하며, 대규모 수력발전 시설에 이용될 수 있을 정도의 강은 없지만, 라르데렐로의 붕사 매장지에서 발생하는 지하 증기력으로 대형 발전소가 가동되고 있다. 엘바 섬 근해에 많았던 철광석은 거의 고갈되었지만 납·아연·안티모니·수은·구리·황철광 등은 지금도 채광되고 있다. 산조반니발다르노 주변에서는 갈탄이 생산되고 있으며, 카라라의 대리석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야금업·화학공업·섬유제조업이 주요산업이며, 피렌체를 중심으로 공예산업이 유명하다. 해안 휴양지와 사적지에서는 관광업이 활발하며, 주요항구인 리보르노에서는 조선업이 행해지고 있다. 피옴비노·루카·피스토이아·그로세토·피사·시에나 등도 이 지방의 중심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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