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께 보는 타
임라인...
고구려, 수나라 침략군을 살수에서 격퇴
시대 | 61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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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륙 | 한국 |
1월 양제가 이끄는 수나라의 113만 대군이 탁군(지금의 베이징)을 떠나 고구려 원정을 시작했다. 양제가 직접 지휘하는 지상군은 요하를 건너 요동성을 친뒤 남하하고, 내호아가 지휘하는 수군은 산동반도에서 황해를 건넌 다음, 한데 모여 평양성을 공격하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지상군은 요동성을 공략하지 못해 발이 묶였다. 그사이 평양에 도착한 내호아는 지상군을 기다리지 않고 평양성에 진입했다가 매복한 고건무(훗날의 영류왕)의 군사들에게 전멸당했다.
양제는 요동성 앞에서 30만 별동대를 편성해 바로 압록강을 건너 평양성을 치도록 했다. 을지문덕이 이끄는 고구려군은 별동대를 맞아 하루에 일곱 번 싸워 모두 후퇴하는 작전으로 적의 기운을 뺐다. 보급 부대의 지원 없이 무거운 양식을 손수 짊어지고 내려온 수나라 별동대는 하루가 다르게 지쳐 갔다. 평양성 앞에 진을 친 적군의 사기가 땅에 떨어진 것을 확인한 을지문덕은 적장 우중문에게 거짓 항복의 뜻이 담긴 시를 적어 보냈다.
귀신 같은 계책은 하늘에 이르고을지문덕
신묘한 계산은 지리에 통달했소.
싸움마다 이겨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한 줄 알면 그치기를 바라오.
우중문은 이 시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나, 군사들이 싸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항복을 받아 들인다는 명분으로 후퇴를 결정했다. 을지문덕은 후퇴하는 적군을 추격해 살수에서 공세를 벌인 끝에 30만 명 중 수천 명만 돌려보내는 대승을 거두었다(7월). 양제는 참담한 패배를 인정하고 요동성에서 원정군을 되돌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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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 ・ 시대 구분은 한국사의 흐름에 맞추었다.
- ・ 서기 1년 이전의 시대는 교과서에서 쓰이는 ‘기원전’ 대신 ‘서기의 앞 시기’ 라는 뜻에서 ‘서기전’으로 표기했다.
- ・ 한국사의 연대는 1895년까지는 음력, 태양력을 도입한 1896년 이후는 양력으로 표기했다. 세계사의 연대 표기는 중등 교과서에 따랐다.
- ・ 한글 맞춤법과 외래어 표기는 중등 교과서와 국립국어원에 준하되 편집의 필요에 따라 부분적으로 변화를 줬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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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고구려, 수나라 침략군을 살수에서 격퇴 – 세계사와 함께 보는 타임라인 한국사 1, 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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