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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장수왕 평양 천도
시대 | 42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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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륙 | 한국 |
고구려의 장수왕이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옮겼다. 2대 유리왕이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수도를 옮긴 지 424년 만이었다. 평양 지역은 국내성 지역보다 땅이 비옥해 농업에 유리했다. 서해 바닷길을 활용하는 데도 편리했다. 그러나 장수왕이 도성을 평양성으로 옮긴 이유가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국내성을 중심으로 힘을 키워온 귀족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국내성에서 멀리 떨어진 평양에 새 수도를 건설해 귀족들의 힘을 약화시키고, 새로운 세력을 등용해 중앙 집권 체제를 더 강화하고자 한 것이다.
이 때문에 국내성의 귀족들은 수도 이전을 반대했다. 하지만 장수왕은 귀족들의 반대를 누르고 평양성으로 수도를 옮기는 데 성공했다. 이는 장수왕이 귀족 세력을 상대로 한 정치적 대결에서 승리했음을 뜻한다.
장수왕의 평양 천도는 아버지인 광개토대왕의 정책을 이어받은 측면이 강했다. 광개토대왕도 평양을 중시했다. 광개토대왕은 평양에 아홉 곳의 사찰을 세우고, 재위 기간 동안 여러 차례 평양을 찾았다. 장수왕은 평양 천도를 계기로 국가를 정비하고, 남쪽으로 세력을 뻗친다. 고구려의 이러한 남진 정책에 위협을 느낀 백제와 신라는 공동으로 고구려에 맞서게 된다.
평양성은 평시에 도시 기능을 하는 안학궁(지금의 평양시 대성산 기슭)과 유사시 방어에 유리한 대성산성의 이중 구조로 이뤄져 있었다. 국내성(평시)-환도산성(전시)과 같은 구조였다. 고구려는 25대 평원왕 때 장안성(지금의 평양성 지역)으로 다시 도성을 옮긴다(고구려, 장안성으로 천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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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 ・ 시대 구분은 한국사의 흐름에 맞추었다.
- ・ 서기 1년 이전의 시대는 교과서에서 쓰이는 ‘기원전’ 대신 ‘서기의 앞 시기’ 라는 뜻에서 ‘서기전’으로 표기했다.
- ・ 한국사의 연대는 1895년까지는 음력, 태양력을 도입한 1896년 이후는 양력으로 표기했다. 세계사의 연대 표기는 중등 교과서에 따랐다.
- ・ 한글 맞춤법과 외래어 표기는 중등 교과서와 국립국어원에 준하되 편집의 필요에 따라 부분적으로 변화를 줬다.
출처
한국사와 세계사가 동시에 펼쳐지는 신개념 통합 역사 교양서한국사, 이제는 세계사와 함께 봐야 더 깊이 보인다!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최고의 역사 시리즈한..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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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고구려, 장수왕 평양 천도 – 세계사와 함께 보는 타임라인 한국사 1, 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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