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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메이지 일본의 상징
메이지 천황
사치노미야(祐宮), 明治天皇출생 | 185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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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12년 |
본명 | 무쓰히토(睦仁) |
국적 | 일본 |
메이지 천황은 근대 일본의 상징이자 막부가 종식되고 천황 친정 체제가 확립되는 격동기 일본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대정봉환과 왕정복고, 메이지 유신, 청일 전쟁, 러일 전쟁 등 격동의 시기에 서구식 근대화를 도입해 단기간에 국력을 신장시켰다. 이로써 일본을 아시아 유일의 제국주의 국가 대열에 합류시키며 일본인에게 아시아 최강국의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심어 주었다.
메이지 천황은 1852년 고메이 천황과 권대납언 나카야마 다다야스의 딸 요시코 사이에서 제2황자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이름은 사치노미야(祐宮)이며, 1860년에 무쓰히토(睦仁)라는 이름을 받고 황태자에 임명되었다. 1867년 아버지 고메이 천황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15세의 나이로 즉위했는데, 갑작스런 등극에 따라 즉위 초에는 천황 교육을 받는 데 집중했으며, 즉위하고 10년이 지나서야 친정을 시작했다. 그가 즉위한 해 대정봉환이 일어나며 새로 구성된 메이지 정부는 오쿠보 도시미치를 중심으로 통치 체제를 확립하고 개혁에 착수했다.
메이지 천황이 즉위할 당시 일본은 페리 제독의 내항 전후로 시작된 개국의 물결에 휩싸여 있었다. 막부는 개국파와 쇄국파로 나뉘었고, 그 와중에 통치력의 한계를 내보인 막부를 타도하고 천황 친정 체제를 수립하려는 다이묘들이 천황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조슈, 사쓰마 번 등에서는 천황을 중심으로 한 정치 체제를 지향하고 서양 오랑캐들을 무찔러야 한다는 존왕양이를 기치로 지사들이 활발히 활동했다. 막부는 국내외적 혼란 속에서 서서히 그 기반이 무너지고 있었다.
1866년 사쓰마 번과 조슈 번이 막부 토벌의 기치로 동맹을 맺기에 이르렀다. 삿초 동맹 측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에게 통치권을 천황에게로 이양할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1867년 11월 9일 니조 성에서 쇼군 요시노부가 메이지 천황에게 통치권을 반환한다는 의견을 표시하고 천황이 그것을 윤허하는 방식으로 대정봉환이 단행되었다. 쇼군 요시노부는 통치권은 이양했다 해도 새로운 정부에서 다시 정권을 장악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으나 신정부에서 쇼군 가는 완전히 배제되었다.
요시노부는 사쓰마-조슈 번의 압력으로 마지못해 쇼군직을 사직하고 천황에게 영지를 반환하고 에도로 돌아갔다. 이듬해 막부군은 요시노부를 추대하여 거병했다. 사쓰마-조슈 측은 요시노부를 토벌하고 막부의 영지를 몰수할 것을 천명했고, 동맹군은 막부군을 궤멸시키고 에도로 진군했다. 에도 성 총공격을 앞두고 요시노부는 가신인 가쓰 야시요부의 진언을 받아들여 미노 성으로 물러났다. 삿초 동맹군은 에도 성에 무혈 입성했고, 이로써 250년간 이어진 에도 막부 시대가 막을 내렸다.
새로 구성된 메이지 정부는 셋쇼, 간파쿠 등의 관직을 폐지하고, 천황 아래 총재, 의정, 참여의 3직으로 구성되었다. 1868년 천황은 일세일원(一世一元, 한 임금의 재위 중에 하나의 연호만을 사용하고 고치지 않는다)을 천명하고, 연호를 '메이지(明治)'라 했다. 그리고 에도를 도쿄라고 개칭하고 에도 성으로 궁성을 옮겼다. 그리고 그해 메이지 정부의 기본 방침 5가지를 천명했다. 정치상의 쟁점은 다이묘들의 의견을 모은 공론으로 결정한다는 것과 구습을 타파하고 천지의 공도를 따르며, 관민이 합심하여 나라를 번창하게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메이지 정부는 이 방침을 중심으로 개혁에 착수했다. 먼저 봉건 제도를 타파하기 위해 기존의 번을 현으로 재편하고, 다이묘들의 판적봉환(版籍奉還, 영토와 영민을 천황에게 돌려줌)이 이루어졌다. 번 소유의 영지는 천황 직할지가 되어 황실의 재정 기반이 되었다. 신분제에 있어서도 공경, 다이묘라는 호칭을 없애고 화족(華族)이라 부르기로 하고, 농공상인 계급을 평민으로 통합했다. 그리고 폐도령(廢刀令)을 통해 사실상 무사 신분을 해체했으며, 다른 신분 간의 결혼이나 직업 제한 등도 해제되었다. 메이지 정부는 서구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일본을 진흥하는 계획을 수립하는 한편, 지식 보급을 위해 교육기관을 설립했다. 그리고 신도를 국교로 정하고 제정일치를 선언하여 천황을 신격화했다. 천주교는 사교(邪敎)라 하여 금지되었다.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과 천황을 만세일계의 신으로 한다는 제정일치 체제가 서로 배척되기 때문이었다.
서구의 근대화를 모방해 일본의 근대화를 이룬다는 시책의 일환으로 1871년 이와쿠라 도모미를 중심으로 서양 문명 시찰단이 조직됐고, 많은 청년들이 해외 유학을 떠났다. 귀국한 유학생들은 신정부의 관리로 근대화와 부국강병책에 힘을 쏟았으며, 이들의 초청으로 미국인 교수들이 일본에 들어와 학교를 설립하는 등 서구식 교육기관에서 새로운 인재를 양성했다.
그러나 급변하는 정치 상황 속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잃은 사족의 불만은 하늘을 찔렀고, 양이파와 개혁파가 계속 대립하는 등 국내 정세는 혼란스러웠다. 특히 사쓰마와 조슈 출신 지사들이 신정권의 요직을 독점하여 독선적인 정치가 되풀이되자 새로운 국가 건설에 기대를 모았던 사람들마저 신정부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각지에서 사족들의 반란이 일어났고, 정한론을 주장하다 실각한 사이고 다카모리를 중심으로 세이난 전쟁이 촉발되기에 이르렀다. 이 전쟁은 다카모리를 비롯하여 쿠데타군의 지도자들이 자결함으로써 진압되었으나 이후 신정부의 정치 독점에 대한 불만은 자유민권 운동으로 발전했다. 자유민권론자들에 의해 내각의 중심 인물이던 오쿠보 도시미치까지 암살되자, 메이지 천황은 자유민권 운동이 격화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서둘러 국회 개설 칙유를 내렸다.
1882년에는 군제를 서구식으로 개편하고 군비 증강에 박차를 가했으며, 1884년에는 의회 창설에 대비해 입헌군주 국가로 나아가는 발판을 마련했다. 1885년에는 내각제가 채택되었고, 1889년에는 이토 히로부미가 초안한 대일본제국 헌법이 공표되었고, 이에 따라 이듬해 귀족원과 중의원으로 이루어진 제국의회가 발족했다. 그리고 천황과 일본에 대한 충성을 촉구하는 〈교육칙어각주1) 〉를 공포하여 천황제를 중심으로 한 국가 체제 확립에 정점을 찍었다. 메이지 천황은 천황 친정제에 엄청난 열의를 가지고 있었다. 적극적으로 정무에 참여했으며, 특히 제국헌법을 심의하는 추밀원 의회에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참석할 정도였다.
근대화와 군비 증강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국내 정세를 갈무리한 일본은 본격적인 식민지 개척에 나섰다. 1879년 일본은 류큐 왕국을 오키나와 현으로 편입시키고 조선 정벌에 나섰다. 이를 위해 일본은 러시아, 청나라와 전쟁을 벌여 승리하면서 조선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는 한편 동아시아의 신흥 강국으로 급부상했다. 메이지 천황은 직접 대본영(大本營, 전시에 설치되는 일본 최고의 통수 기관)으로 나와 각료들을 격려하고 전쟁을 독려할 정도로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을 지지했으며, 그의 주도 아래 내각은 침략 정책을 적극 추인했다. 일본은 1910년 대한제국을 병합하고 만주로 진출하면서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을 가속화했다. 막부가 체결했던 서구 열강과의 불평등 조약도 하나씩 개정해 나갈 정도로 명실공히 열강의 하나로 우뚝 섰다. 이런 과정에서 메이지 천황은 일본인의 국민적인 숭앙과 절대적 지지를 받게 되었다.
메이지 천황은 1912년 지병인 당뇨병이 악화되어 사망했다. 메이지 천황의 죽음은 메이지 일본의 종언으로 여겨졌으며, 일본에서는 그를 추모하며 자살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에 희생된 주변 국가에게 그는 막심한 고통을 안겨 준 인물이지만, 일본인에게는 제국 일본의 영광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 1867년 :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메이지 천황에게 통치권을 반환하는 대정봉환이 단행되다.
· 1889년 : 〈대일본제국헌법〉이 공표되고 제국의회가 발족하다.
· 1910년 : 대한제국을 병합하고 만주로 진출하며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을 가속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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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시대부터 인간의 시대까지, 100인의 인물로 관통하는 일본사! 일본사에 한 획을 그은 100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오늘날 일본과 일본인의 정신을 이룬 역사, 문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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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메이지 천황 – 일본사를 움직인 100인, 양은경,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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