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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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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을 선출한 선거. 한국에서는 1948년 초대 헌법을 공포하고 대통령 선거를 시행했다. 2017년 5월 기준 총 19번의 대통령 선거를 진행했으며 12명의 대통령을 선출하였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9번의 헌법개정이 이뤄졌으며 그에 따라 대통령 선거는 직접선거와 간접선거를 오가는 변화를 겪었다. 간선제로 치러진 대통령 선거는 1대, 4대, 8~12대이며 2~7대와 13대 대선부터는 직선제로 시행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은 1948년 7월 17일 제헌헌법을 공포하고 초대 대통령 선거를 진행했다. 2017년 5월 기준 총 19번의 대통령 선거를 시행했으며 12명의 대통령을 선출하였다. 그동안 총 9차례 헌법개정이 있었고 그에 따라 대통령 선거는 직선제(직접선거)와 간선제(간접선거)를 오가는 변화를 겪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대통령 선거는 간선제로 진행되었다. 간선제가 시행된 대통령 선거는 1대, 4대, 8~12대이다. 제4대 대통령 선거는 당선자인 이승만 전 대통령이 3.15 부정선거로 하야하면서 4·19 혁명 전후로 직선제와 간선제로 두 번 시행되었다. 대통령 선거에서 간선제 방식은 세 번 바뀌었다. 대통령 선출 주체는 1대와 4대가 국회, 8~11대는 통일주체국민회의, 12대는 대통령선거인단이었다. 2~7대와 13대 대통령 선거부터는 직선제로 시행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 선거 현황

대별 선거일 선출방법 투표율 당선자 득표율
초대 1948.07.20(화) 국회선출 99.0% 이승만 91.8%
제2대 1952.08.05(화) 직접선출 88.1% 이승만 74.6%
제3대 1956.05.15(화) 직접선출 94.4% 이승만 70.0%
제4대 1960.03.15(화) 직접선출(선거무효) 97.0% 이승만(하야) 100%
제4대 1960.08.12(금) 국회선출 - 윤보선 82.1%
제5대 1963.10.15(화) 직접선출 85.0% 박정희 46.6%
제6대 1967.05.03(수) 직접선출 83.6% 박정희 51.4%
제7대 1971.04.27(화) 직접선출 79.8% 박정희 53.2%
제8대 1972.12.23(토) 통일주체국민회의선출 100% 박정희 100%각주1)
제9대 1978.07.06(목) 통일주체국민회의선출 100% 박정희 100%각주2)
제10대 1979.12.06(목) 통일주체국민회의선출 100% 최규하 100%각주3)
제11대 1980.08.27(수) 통일주체국민회의선출 100% 전두환 100%각주4)
제12대 1981.02.25(수) 대통령선거인단선출 100% 전두환 90.3%각주5)
제13대 1987.12.16(수) 직접선출 89.2% 노태우 36.6%
제14대 1992.12.18(금) 직접선출 81.9% 김영삼 42.0%
제15대 1997.12.18(금) 직접선출 80.7% 김대중 40.3%
제16대 2002.12.19(목) 직접선출 70.8% 노무현 48.9%
제17대 2007.12.19(수) 직접선출 63.0% 이명박 48.7%
제18대 2012.12.19(수) 직접선출 75.8% 박근혜 51.6%
제19대 2017.05.09(화) 직접선출 77.2% 문재인 41.1%
제20대 2022.03.09(수) 직접선출 77.1% 윤석열 48.6%
역대 대통령 선거 상황

역대 대통령 선거 내용

제1대 대통령 선거

선거일은 1948년 7월 20일이다. 같은 해 7월 17일 공포된 제헌헌법(초대헌법) 제53조에 따라 국회에서 간접선거로 시행되었다. 제헌헌법에는 대통령 선거를 국회 간선제로 명시했으며 대통령 임기는 4년이며 재선을 통해 1차 중임할 수 있도록 했다.

초대 대통령 선거는 부통령 선거와 함께 진행되었다. 대통령에 출마한 후보는 이승만(대한독립촉성국민회), 김구(한국독립당), 안재홍(무소속) 등으로 이승만이 180표(약 91.8%)를 받아 제1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투표율은 99.0%였다. 부통령에는 이시영(대한독립총성국민회)후보가 선출되었다.

제헌헌법 제53조
대통령과 부통령은 국회에서 무기명 투표로써 각각 선거한다.
제헌헌법 제55조
대통령과 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한다. 단, 재선에 의하여 1차 중임할 수 있다. 부통령은 대통령 재임 중 재임한다.
제2대 대통령 선거

선거일은 1952년 8월 5일이다. 1952년 이승만이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심야에 날치기로 통과시키면서 직선제로 시행되었다. 대통령 후보는 조봉암(무소속), 이승만(자유당), 이시영(무소속), 신흥우(무소속) 등으로 이승만이 득표율 74.6%로 재선에 성공하였다. 투표율은 88.1%였다.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 당시 숭례문에 붙은 선거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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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대 대통령 선거

선거일은 1956년 5월 15일이다. 1954년 이승만은 대통령의 3선 제한 폐지를 핵심으로 하는 사사오입개헌을 강행하였으며 이를 통해 제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었다. 대통령 후보로는 조봉암(무소속), 신익희(민주당), 이승만(자유당)이 출마했으며 이승만이 70%의 득표율로 장기집권에 성공하였다. 전체 투표율은 94.4%였다.

사사오입개헌

사사오입개헌은 대한민국의 제2차 헌법개정으로 사실상 위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헌법개정에 필요한 의결정족수는 재적인원(203명)의 3분의 2(135.333…)로 136표가 되어야 하는데 135표로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자유당 측은 영점 이하의 숫자는 1인이 되지 못하므로 사사오입(반올림)하여 135가 의결 정족수라 주장했다. 개헌의 핵심은 이승만의 장기 집권을 위해 대통령의 1회 중임만 허용한 헌법 내용을 개정하는 것이었다.

제4대 대통령 선거(무효)

선거일은 1960년 3월 15일이다. 이승만의 장기 집권을 위해 자유당 정권이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부정선거를 감행하여 3·15 부정선거라 불린다. 이승만(자유당)과 조병욱(민주당)이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며 이승만이 100%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의하여 마산에서 3·15 의거가 일어났으며 이후 전국적인 규모의 시위로 이어졌다. 결국, 4·19 혁명이 일어나 이승만은 하야했으며 해당 선거는 무효가 되었다. 투표율은 97.0%였다.

제4대 대통령 선거

선거일은 1960년 8월 12일이다. 1960년 6월 15일 개정된 제2공화국 헌법에 따라 제1대 대통령 선거 이후 두 번째로 간선제로 진행되었다. 4·19 혁명으로 이승만이 하야한 뒤, 국회는 6·15 개헌을 통해 내각책임제(의원내각제)를 대한민국의 새로운 헌법 체제로 채택하였다. 이에 따라 제4대 대통령 선거는 민의원참의원 합동회의에서 간선제로 시행되었다. 양원제 국회에서 민의원은 하원, 참의원은 상원에 해당한다.

제4대 대통령 선거에는 윤보선(민주당), 김창숙(민주당) 등이 출마하였으며 윤보선이 재적의원 263명 중 208표(82.2%)의 찬성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1961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면서 민주당 정권은 붕괴하였다.

제5대 대통령 선거

선거일은 1963년 10월 15일이다. 개정된 제3공화국 헌법에 따라 직선제로 시행되었다. 5·16 군사정변을 주도한 박정희 등은 1961년 12월 6일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통과시키고 국민투표에 부쳤다. 개헌안은 국민투표에서 찬성률 78.8%를 받아 채택되었으며 이에 따라 제3공화국이 출범하였다.

출마한 대통령 후보는 장이석(신흥당), 박정희(민주공화당), 오재영(추풍회), 윤보선(민정당), 변영태(정민회) 등이다. 선거 결과 박정희가 46.6%, 윤보선이 45.1%를 득표하면서 박정희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두 후보의 표차는 약 15만 6천여 표로 이는 역대 대통령 선거 사상 가장 근소하다. 투표율은 85.0%였다.

1963년 제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윤보선 후보의 서울 유세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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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제5대 대통령 선거 개표현황을 지켜보기 위해 모인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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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대 대통령 선거

선거일은 1967년 5월 3일이다. 이전 선거와 마찬가지로 직선제로 치러졌다. 출마한 후보는 이세진(정의당), 전진한(한국독립당), 윤보선(신민당), 김준연(민중당), 박정희(민주공화당), 오재영(통한당) 등이다. 제5대 대통령 선거에 이어 박정희와 윤보선이 다시 접전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선거 결과 박정희가 51.4%, 윤보선이 40.9% 득표하여 박정희가 재선에 성공하였다. 투표율은 83.6%였다.

제7대 대통령 선거

선거일은 1971년 4월 27일이다. 1969년 박정희 정권은 대통령의 3선 연임을 허용하는 내용의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3선개헌으로 대통령의 3선 연임과 대통령 탄핵 발의에 필요한 의원 수를 30명(과반수)에서 50명(3분의 2)으로 상향 조정하여 장기 집권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제7대 대통령 선거 당시 유세 연설하는 김대중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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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대 대통령 선거는 직선제로 치러졌다. 후보로는 박정희(민주공화당), 김대중(신민당), 박기출(국민당) 등이 출마했다. 선거 결과 박정희 53.2%, 김대중 45.2% 득표율로 박정희가 3선에 성공하였다. 투표율은 79.8%였다.

제8대 대통령 선거

선거일은 1972년 12월 23일이다. 박정희 정권이 장기집권을 위해 제정한 유신헌법에 따라 간선제로 치러졌다. 박정희 정권은 1972년 10월 대통령 특별선언(10월유신)에 따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선출한다는 내용의 개헌안(유신헌법)을 비상국무회의에서 의결·공고하였다. 11월 21일 유신헌법에 대한 국민투표가 시행되었으며 91.5%(투표율 92.9%) 찬성으로 확정되었다.

유신헌법에 따라 제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통일주체국민회가 대통령을 선출하였다. 후보는 박정희(민주공화당) 한 명이었다. 당시 투표율은 100%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전원이 장충체육관에 모여 선거에 참여하였다. 대의원 수는 총 2,359명으로 박정희는 2,357표(무효 2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1972년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위한 투표를 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 일가

박정희 정권은 장기집권을 위해 1972년 대통령 간선제를 핵심으로 하는 개헌안(유신헌법)을 확정하였다. 이에 따라 제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이 대통령을 선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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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대 대통령 선거

선거일은 1978년 7월 6일이다. 이전 선거와 마찬가지로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한 간선제로 치러졌다. 제9대 대통령 선거에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2,583명 중 2,578명이 참여했다. 후보는 박정희(민주공화당) 한 명으로 2,577표(기권 1표)를 받아 당선되었다. 그러나 1979년 10·26사태로 박정희가 사망하면서 대통령직은 공석이 된다.

제10대 대통령 선거

선거일은 1979년 12월 6일이다. 10·26사태로 박정희가 피살되자 당시 국무총리였던 최규하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취임하였다. 이어 헌법에 따라 제10대 대통령 선거가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한 간선제로 치러졌다. 후보는 최규하(무소속) 한 명이었다.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2,560명 중 2,549명이 선거에 참여했으며 최규하는 그중 2,465표(무효 84표)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선거 6일 후인 12월 12일 전두환 등 신군부가 쿠데타(12·12사건)를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군권을 장악한 이들은 이후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계기로 국가권력까지 장악하였다.

제11대 대통령 선거

선거일은 1980년 8월 27일이다. 신군부가 정국을 장악하면서 최규하는 약 8개월 21일 만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신군부의 전두환은 이전처럼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제11대 대통령 선거를 진행했다. 전두환(민주정의당)이 단일후보로 출마하였다.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2,540명 중 2,525명이 출석하여 2,524를 얻어 당선되었다.

제12대 대통령 선거

선거일은 1981년 2월 25일이다. 1980년 전두환은 유신헌법 대신 대통령 임기 7년 단임과 간선제를 통한 대통령 선출을 핵심으로 하는 제5공화국 헌법을 마련해 국민투표로 확정했다. 이에 따라 제12대 대통령 선거는 대통령 선거인단을 통한 간접선거로 진행되었다. 투표는 전국 77개 선거구에서 시행되었으며 참여한 선거인단은 약 5,278명이었다.

이전과 다르게 정당 소속원의 출마를 허용한 것이 특징이다. 후보는 전두환(민주정의당), 유치송(민주한국당), 김종철(한국국민당), 김의택(민권당) 등이다. 선거 결과 전두환(민주정의당)이 90.3%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대통령 임기는 단임제로 바뀌었으나 선거인단을 통한 간접선거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와 다를바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제13대 대통령 선거

선거일은 1987년 12월 16일이다. 6월항쟁과 노태우의 6·29민주화선언으로 개정된 헌법에 따라 직선제로 시행되었다. 1980년 개헌 이후 제5공화국의 대통령 간선제가 민주주의 원리를 위반한다는 비판이 계속되었다. 직선제 개헌은 국민적 지지를 얻었으나 전두환 정권은 민주화운동세력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고 부림사건 등의 용공조작 사건 등을 만들어냈다. 그 과정에서 서울대 박종철 학생이 고문으로 사망하는 사건(박종철고문치사사건)이 일어나면서 이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 투표하기 위해 줄을 선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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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두환은 시국 혼란을 이유로 1987년 4월 13일 일체의 개헌논의를 중지하는 사일삼호헌조치(4·13호헌조치)를 발표했으며 각계의 비판이 이어졌다. 5월 18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성명을 통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은폐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6월 10일 전국에서 이를 규탄하는 국민대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6월 26일에는 전국 34개 도시와 4개 군에서 130여만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참여한 국민평화대행진이 진행되었다. 결국, 전두환 정권은 시국을 수습하기 위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을 골자로 하는 6·29 선언을 하게 된다.

제13대 대통령 선거는 6월 항쟁의 결과로 개정된 헌법에 따라 직선제로 치러졌다. 후보는 노태우(민주정의당), 김영삼(통일민주당), 김대중(평화민주당), 김종필(신민주공화당), 신정일(한주의 통일한국당) 등이다. 선거 결과 노태우가 36.7%의 지지율로 제13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후보별 득표율은 김영삼 28%, 김대중 27.1%, 김종필 8.1% 등이다. 투표율은 89.2%였다.

제14대 대통령 선거

선거일은 1992년 12월 18일이다. 이전 선거와 마찬가지로 직선제로 치러졌다. 후보는 김영삼(민주자유당), 김대중(민주당), 정주영(통일국민당), 이종찬(새한국당), 박찬종(신정치개혁당), 이병호(대한정의당), 김옥선(무소속), 백기완(무소속) 등이다. 선거 결과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후보가 42.0%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후보별 득표율은 김대중 33.8%, 정주영 16.3%, 박찬종 6.4%, 백기완 1.0%이다. 투표율은 81.9%였다.

제14대 대선 후보들의 선전 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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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대 대통령 선거

선거일은 1997년 12월 18일이다. 직선제로 시행되었다. 출마 후보는 이회창(한나라당), 김대중(새정치국민회의), 이인제(국민신당), 권영길(건설국민승리21), 허경영(공화당), 김한식(바른나라정치연합), 신정일(한주의 통일한국당) 등이다. 선거 결과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40.3%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후보별 득표율은 이회창 38.7%, 이인제 19.2%, 권영길 1.2% 등이다. 투표율은 80.7%였다.

제16대 대통령 선거

선거일은 2002년 12월 19일이다. 직선제로 시행되었다. 후보는 이회창(한나라당), 노무현(새천년민주당), 이한동(하나로국민연합), 권영길(민주노동당), 김영규(사회당), 김길수(국태민안호국당), 장세동(무소속) 등이다. 선거 결과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48.9%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다. 후보별 득표율은 이회창 46.6%, 권영길 3.9% 등이다. 투표율은 70.8%였다.

제17대 대통령 선거

선거일은 2007년 12월 19일이다. 직선제로 시행되었다. 후보는 정동영(대통합민주신당), 이명박(한나라당), 권영길(민주노동당), 이인제(민주당), 문국현(창조한국당), 정근모(참주인연합), 허경영(경제공화당), 전관(새시대참사람연합), 금민(한국사회당), 이회창(무소속) 등이다. 선거 결과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48.67%의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후보별 득표율은 정동영 26.1%, 이회창 15.1%, 문국현 5.8%, 권영길 3%, 이인제 0.7% 등이다. 투표율은 63.03%였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선거일은 2012년 12월 19일이다. 직선제로 시행되었다. 후보는 박근혜(새누리당), 문재인(민주통합당), 박종선(무소속), 김소연(무소속), 강지원(무소속), 김순자(무소속) 등이다. 선거 결과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가 51.55%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후보별 득표율은 문재인 48.02%, 강지원 0.17%, 김순자 0.15% 등이다. 투표율은 75.8%였다. 선거 전후로 부정선거 논란이 있었다. 선거 직전에는 국가정보원 소속 공무원들이 인터넷 여론조작을 통해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2013년 10월에는 김광진 의원에 의해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제18대 대선 개입 의혹이 불거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우편함에 넣어진 제18대 대통령 선거공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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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대통령 선거

선거일은 2017년 5월 9일이다. 직선제로 시행되었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대통령(박근혜) 탄핵심판 청구에 관해 재판관 8인 전원일치로 인용결정을 내리면서 대통령이 파면(탄핵)되어 선거일이 앞당겨졌다. 2016년 12월 3일 국회는 박근혜 전 대통령 재직 중 직무집행과 관련하여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최순실 등 비선실세를 통한 권력 남용으로 다수의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혐의다. 대통령이 파면(궐위)되면 60일 내에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공직선거법」 규정에 따라 제19대 대통령 선거일은 2017년 5월 9일 화요일로 결정되었다.

공직선거법 제35조
① 대통령의 궐위로 인한 선거 또는 재선거는 그 선거의 실시사유가 확정된 때부터 60일 이내에 실시하되, 선거일은 늦어도 선거일 전 50일까지 대통령 또는 대통령권한대행자가 공고하여야 한다.
⑤ 이 법에서 "선거의 실시사유가 확정된 때"라 함은 다음 각호에 해당하는 날을 말한다.
1. 대통령의 궐위로 인한 선거는 그 사유가 발생한 날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후보는 문재인(더불어민주당), 홍준표(자유한국당), 안철수(국민의당), 유승민(바른정당), 심상정(정의당) 등이다.

제19대 대통령 선거벽보를 바라보는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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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표 결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41.08%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후보별 득표율은 홍준표 24.0%, 안철수 21.4%, 유승민 6.8%, 심상정 6.2% 등이다. 전체 투표율은 77.2%로 제18대 대선보다 1.4% 상승하였다. 제19대 대통령 선거는 궐위에 의한 선거이므로 제19대 대통령 임기는 선거 다음날인 2017년 5월 10일부터 시작했다.

공직선거법 제14조
① 대통령의 임기는 전임대통령의 임기만료일의 다음날 0시부터 개시된다. 다만, 전임자의 임기가 만료된 후에 실시하는 선거와 궐위로 인한 선거에 의한 대통령의 임기는 당선이 결정된 때부터 개시된다.

제20대 대통령 선거

선거일은 2022년 3월 9일이다. 직선제로 시행되었다. 후보는 이재명(더불어민주당), 윤석열(국민의힘), 심상정(정의당), 오준호(기본소득당), 허경영(국가혁명당), 이백윤(노동당), 옥은호(새누리당), 김경재(신자유민주연합), 조원진(우리공화당), 김재연(진보당), 이경희(통일한국당), 김민찬(한류연합당) 등이다. 선거 결과 국민의힘의 윤석열 후보가 48.56%의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후보별 득표율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47.83%, 정의당 심상정 2.37%, 국가혁명당 허경영 0.83%, 진보당 김재연 0.11% 등이다. 투표율은 77.1%였다.

역대선거투표율

선거투표율
선거명 선거일 투표율 사전투표율
제20대 대통령선거 2022.03.09. 77.1% 36.93%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2020.04.15. 66.2% 26.69%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18.06.13. 60.2% 20.14%
제19대 대통령선거 2017.05.09. 77.2% 26.06%
제20대 국회의원선거 2016.04.13. 58.0% 12.19%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14.06.04. 56.8% 11.49%
제18대 대통령선거 2012.12.19. 75.8% -
제19대 국회의원선거 2012.04.11. 54.2% -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10.06.02. 54.5% -
제18대 국회의원선거 2008.04.09. 46.1% -
제17대 대통령선거 2007.12.19. 63.0% -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06.05.31. 51.6% -
제17대 국회의원선거 2004.04.15. 60.6% -
제16대 대통령선거 2002.12.19. 70.8% -
* 본 정보에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정보를 재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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