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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10년 차 임원 비서로 일하고 있는 진저리 씨, 작년부터 새로 부임한 임원을 수행하고 있다. 새로 온 임원은 사소한 일에도 불같이 화를 내고 변덕이 심한 성격인 데다가 진저리 씨를 비롯해 부하 직원들을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발언을 자주해 왔다. 그 임원 때문에 그동안 그만둔 직원들도 몇 되지만 비서로서 잔뼈가 굵은 진저리 씨는 그나마 잘 견뎌온 편이었다. 그러나 진저리 씨는 사소한 업무 실수 하나로 며칠째 인신공격을 지속하는 임원 때문에 스트레스와 우울감이 극도로 심해지면서 10년 동안 해 온 일을 그만두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출근이 두려워졌다. 업무 의욕도 거의 바닥을 치면서, 표정도 어두워지고 단순한 일에도 실수를 반복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인사부서에서 면담이 있으니 방문하라고 한다. 인사 팀장은 임원이 회사에 비서 교체를 요구했는데, 진저리 씨는 비서로서 자질이 부족한 것 같으니 지금이라도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는 게 좋지 않겠냐며 사직을 권고했다.
진저리 씨는 10년간 별문제 없이 성실하게 일해 온 것을 잘 알고 있는 인사 팀장이 자질 운운하며 사직을 권고하는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인사 팀장에게 임원으로 인한 고충을 토로하려다가 더는 회사를 계속 다니다가는 병이라도 얻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권고사직을 당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으니 그 기간 동안 몸과 마음의 휴식을 취하면서 천천히 다른 직장을 구해볼 심산이었다.
진저리 씨는 사직서를 쓰면서 '사직 사유'란에 '권고사직'이라고 또박또박 써서 제출했다. 그런데 사직서를 확인한 인사 팀장이 사직 사유를 '개인 사정'으로 바꾸라고 요구한다. 진저리 씨는 사직 사유를 개인 사정으로 쓰면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것 아니냐며 항의했다. 인사 팀장은 경영 사정으로 권고사직 될 때만 실업급여가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 잘못으로 권고사직이 되는 경우에는 어차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고 하면서, "사직 사유를 개인 사정으로 써야 사직서 처리가 가능하고, 이를 거부하면 징계위원회를 열어 해고할 수도 있으니, 그냥 개인 사정으로 해서 사직 처리하는 게 다른 직장에 취업할 때에도 그나마 나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진저리 씨는 무척 혼란스러웠다. 최근 사소한 업무 실수가 반복되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 해고까지 될 사유는 아닌 것 같다. 또한, 분명히 사직을 권고받아 사직서를 내는 상황인데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니 이해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근본적인 원인 제공은 임원이 하지 않았던가. 그 임원 때문에 이미 그만둔 옛 동료들에게 연락해보니 회사에서 '권고사직'으로 사직 사유를 쓰지 못하게 해서 결국 모두 개인 사정으로 사직서를 써서 그만두는 바람에 실업급여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황에서 회사를 계속 다니고 싶은 마음도 사라진 진저리 씨, 인사 팀장의 요구대로 사직 사유를 바꿔써 제출해야 할까?
실업급여는 불가피하게 실업 상태에 놓이게 된 근로자의 생계 및 재취업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지급하는 고용보험 급여입니다. 따라서 보험사고 즉, '실업'이 근로자의 잘못으로 발생했다면 자기 책임의 원칙에 따라 실업급여가 지급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에따라 고용보험법에서는 중대한 잘못으로 해고(또는 권고사직)되거나 자기 사정으로 이직할 때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는 '중대한 잘못'의 종류각주1) 가 법에 한정적으로 나열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 사유로 해고되지 않았다면 비록 해고되더라도 실업급여 수급이 가능합니다.
또한, 사직서를 제출해 겉으로 '자발적 이직'으로 보이더라도 그러한 이직이 불가피하다고 인정될 수 있을 때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습니다. 고용보험법 시행규칙에서는 이러한 사유를 ‘정당한 이직 사유’라고 하여 역시 한정적으로 열거해 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실제 이직 사유가 법에 정해진 '정당한 이직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 한 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당한 이직 사유'로는 근로조건 저하, 임금체불, 최저임금 미달, 주 52시간 이상 연장근로, 불합리한 차별대우, 성희롱, 회사의 불법적 사업 등과 같이 본인의 잘못과 상관없이 근무조건이 나빠지거나 회사의 불법적인 행위가 있는 경우, 성희롱과 같은 피해를 입은 경우 등이 있으며, 사업장 이전 · 전보 · 부양가족 동거 등의 사유로 통근이 곤란한 경우에도 인정됩니다.
또한 가족 간호가 필요하거나, 질병이나 장애를 얻은 경우, 임신 · 출산 · 육아, 군 복무 등으로 업무 수행이 곤란한 상황에서 이직한 경우도 포함되는데, 이 경우 회사로부터 휴직 등이 허용되지 않아서 이직한 경우각주2) 에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기타 사직서 제출과는 무관하지만 정년 도달이나 근로계약 기간 만료로 이직하는 경우 역시 정당한 이직 사유로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사유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러 '정당한 이직 사유' 중에 실제 가장 빈번한 실업급여 사유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 바로 '권고사직'인데, 모든 권고사직에 대해서 실업급여 수급이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법에 '정당한 이직 사유'로서 정해져 있는 권고사직은 정리해고 과정에서의 희망퇴직 모집이나 '사용자의 경영 사정'각주3) 과 관련되는 사유로 인한 퇴직 권고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진저리 씨와 같이 회사의 경영 사정과도 무관하고, 그렇다고 해고가 될 정도의 잘못도 아닌 자질 부족을 이유로 권고사직한 경우에 대해서는 법에 명시적인 규정이 없습니다. 고용보험 상실 신고서, 피보험자 이직 확인서 등에서 표기하게 되어 있는 이직 코드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도 모호합니다.
이직 코드 중 '권고사직'은 "23. 경영상 필요 및 회사 불황으로 인한 인원 감축 등에 따른 퇴사(해고 · 권고사직 · 명예퇴직 포함)"와 "26. 근로자의 귀책 사유에 의한 징계해고 · 권고사직"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23번은 실업급여 수급 자격이 인정되는 코드인데, 진저리씨에 대한 사직 권고는 경영 사정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26번은 사규상 징계해고 사유에 해당하나 권고사직을 당한 경우를 의미하고 원칙적으로 실업급여 수급 자격이 제한되는 코드인데, 회사가 내세운 자질 부족은 정당한 징계해고 사유로 보기 어렵습니다.
권고사직도 결국엔 '사직'이고, 다른 코드에 해당 사항이 없기 때문에 "11. 개인 사정으로 인한 자진 퇴사"에 표기할 수도 있습니다. 11번 이직 코드의 세분류 중 "본인의 업무상 과실 또는 능력 부족으로 인해 스스로 사직하는 경우"에 해당하는데, 11번 이직 코드 역시 수급 자격이 제한되는 코드입니다.
회사가 23번 코드로 신고한다면 실무상 진저리 씨가 실업급여를 받기가 더 수월합니다. 그러나 경영 사정에 의한 이직이 아님에도 23번 코드로 이직 신고했을 때 회사가 실제 사실과 다른 신고로 제재를 받을 우려가 있고, 23번 코드로 이직한 경우 '인위적인 고용조정에 따른 이직'으로 간주되어 회사는 각종 정부 지원이나 외국인 근로자 고용 허가 등에 제약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위험 때문에 최근에는 '회사 사정에 의한 권고사직' 처리를 기피하는 회사가 많아졌습니다. 진저리 씨의 사례에서 인사 팀장이 '개인 사정'으로 사직서의 사직 사유를 바꿔 쓰라는 종용도 이러한 이유였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6번 코드로 신고했더라도 무조건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26번 코드로 신고할 경우 해고나 권고사직 사유에 대해 추가로 심사한 뒤, 그 사유가 고용보험법에서 정한 '중대한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다른 사유라면 실업급여 수급이 가능합니다. 아울러 26번 코드는 인위적인 고용조정에도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회사에도 별다른 불이익이 없습니다.
회사가 11번 '개인 사정으로 인한 자진 퇴사'로 신고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매우 주의가 필요합니다. 11번 코드는 실무적으로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추가 심사 없이 실업급여 수급을 제한하기 때문입니다. 권고사직을 받았다고 주장하더라도 어쨌든 '사직서'를 제출한데다, 회사에서 '업무 자질이 부족하다는 언급은 했으나 사직을 권고한 사실은 없다'고 사직 권고 사실을 부정한다면 반증하기도 어렵습니다. 게다가 인사 팀장이 요구한 대로 진저리 씨가 '개인 사정'으로 사직서에 사직 사유를 기재한다면 권고사직을 주장하기 더욱 어려워집니다.
따라서 사직 사유 변경에 관한 인사 팀장의 요구를 거절하고 사직서에 '권고사직'임을 명확히 기재하도록 할 필요가 있으며, 권고사직 사실을 입증할 만한 객관적인 자료도 최대한 확보하는 게 좋습니다. 인사 팀장이 권고사직 처리에 따른 회사의 불이익을 잘못 알고 있었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이에 관하여 충분히 설명하며 회사가 고용보험 자격상실 신고할 때 이직 사유를 26번 코드로 기재하도록 요청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한편, 기존에 임원에 대한 고충으로 퇴사한 직원들은 무척 애매합니다. 우선 진저리 씨와 같이 직접적인 권고사직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단지 본인이 견디기 어려워 사직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권고사직'과 관련된 실업급여 수급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또한, 단순한 '상사의 괴롭힘'은 '정당한 이직 사유'로 명시되어 있지 않아 이에 따른 이직 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지도 불분명합니다.
다만, 이러한 괴롭힘이 '성적 괴롭힘'에 해당하거나 성별, 신체장애 등을 이유로 한 '차별행위'에 해당한다면 '정당한 이직 사유'로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습니다. 기타 '동일한 여건에서는 통상의 다른 근로자도 이직했을 것이라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인정될 경우'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데, 구체적인 괴롭힘 정도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수 있으나 적어도 다수 직원에게 괴롭힘이 발생했지만 일부의 직원만 퇴사한 상황이라면 '개인적인 선택'에 의한 퇴사로 볼 가능성이 높아 실업급여를 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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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개인 잘못으로 권고사직되어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요 – 대한민국에서 직장인이 꼭 알아야 할 노동법 100, 권정임, 생각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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