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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반환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반환될 때까지 보낸 한 세기 남짓한 시간의 길이가 그리 심상할 수는 없는 법. 그 결과 타협적으로 제시된 것이 ‘일국 양제(一國兩制)’라고 하는 ‘한 나라이지만 각자의 체제를 인정하는’ 일종의 절충안이었다. 홍콩은 반환되었으되, 반환되지 않은 것이다. 홍콩의 영화 감독 왕쟈웨이(王家衛, 왕가위)는 이러한 홍콩 반환의 역사적 의미를 홍콩 사람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일련의 영화를 제작한 바 있다. 그 가운데 대표작이라 할 만한 작품이 〈아페이정전(阿飛正傳, 아비정전)〉이다.
영화는 ‘주인공 아페이[장궈룽(張國榮, 장국영 분)]가 생모를 찾아가는 과정’과 ‘아페이 주변 인물과 맺고 있는 관계’라는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페이는 생모가 아닌 양모에 의해 양육되는데, 생모는 양육비를 보내주는 대신 지금의 양모에게 아페이를 맡겼던 것이다. 그러나 양모 역시 다른 남자를 만나 미국으로 떠나버리려 하자 아페이는 양모를 붙잡으며 여지껏 자신을 잡아둔 책임을 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양모는 아페이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언젠가는 너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서 너에게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말을 하고 나니 널 보낼 수가 없었다. 생모는 너를 버렸다. 너를 원했다면 벌써 나타났을 것이다. 그동안 넌 자포자기에 빠졌다. 너는 모든 책임을 나한테 돌렸다. 너는 언제나 구실을 만들었었지. 이젠 네 스스로 책임을 져 봐. 이제 날고 싶니? 그럼 날아봐.”
이것으로 아페이는 홍콩이고, 생모는 중국이며, 양모는 영국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아페이는 생모를 찾아 필리핀으로 가지만 다시 만난 생모는 그를 부인한다. 영화에서 아페이가 생모에게 버림받고 거부당하는 것은 홍콩이라는 자기 존재의 부정과 다르지 않다. 영화에서는 이러한 아페이의 운명이 ‘발 없는 새’의 우화로 변용되어 나타나는데, 이 새는 태어나자마자 날아다니다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쉬고 땅에 내려앉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그러므로 ‘발 없는 새’는 뿌리 없는 존재인 ‘홍콩’의 운명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페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그저 여기저기 떠돌 뿐이다.
아페이와 같은 인물이 어떤 관계를 통해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첫째 자신과 같은 종류의 인간을 만나거나 둘째, 기억을 공유하는 방법을 통해서일 텐데, 첫 번째 방법은 애당초 불가능한 것일 터이고 결국 아페이는 장만위(張曼玉, 장만옥)와 1960년 4월 16분 새벽의 1분이라는 시간을 함께 하고 그 뒤 서로를 잊지 못한다. 또 아페이에게는 귀걸이 때문에 아페이와 함께 있게 된 류쟈링(劉嘉玲, 유가령)이라는 또 다른 여인이 있다. 장만위는 아페이에게 결혼해달라고 요구하고, 류쟈링은 아페이에게 기둥서방 노릇을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아페이는 그 두 여인이 원하는 바를 충족시킬 수 없다. 어느 쪽이 되었든, ‘발 없는 새’에게는 지상으로 내려앉을 것을 요구하는 게 되는데, 아페이에게 그것은 존재의 상실이자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왕쟈웨이는 홍콩의 운명에 대해 비관적이었던 것일까?각주1)
홍콩의 반환 문제를 좀더 감성적으로 풀어간 것은 천커신(陳可辛, 진가신) 감독의 〈첨밀밀(甛蜜蜜)〉이다. 이 영화의 공간적 배경 역시 홍콩이지만, 중국과 타이완 역시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한다. 영화 내내 흐르고 있는 덩리쥔(鄧麗君, 등려군)의 노래는 타이완을 암시하고 있고, 주인공인 리밍(黎明, 여명)과 장만위(張曼玉, 장만옥)의 출신이 중국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주인공인 리밍의 홍콩 도착으로 시작하는데, 영화의 말미에서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 그제야 리밍이 기차 안에서 등을 맞대고 있던 여인이 다름 아닌 장만위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서로 등돌린 ‘한 몸’이 몇 차례의 이별과 재회를 거쳐 다시 만난다는 설정은 하나의 원환적 구조를 이루면서 중국과 홍콩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리밍과 장만위는 서로 좋아하지만, 굳이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애써 외면한다. 장만위는 리밍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홍콩에 온 목적은 네가 아니야. 네가 홍콩에 온 목적도 나 때문이 아니야.” 또 리밍이 뒷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한참 뒤에 꺼내든 쵸컬릿이 녹아버리는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이 초콜릿이야말로 중국인들이 오랫동안 자기 일에 바빠 잊고 있다 다시 꺼내든 홍콩이라는 존재에 대한 은유라 할 수 있다. 결국 오랫동안 서로를 갈망하다 각자의 길을 걸어가던 두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해준 것은 덩리쥔의 죽음을 알리는 뉴스였다. 머나먼 이역 땅에서 그야말로 기적 같은 재회의 순간 두 사람은 환한 웃음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달랐음에도 다시 만날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의 운명처럼 중국과 홍콩 역시 일시적인 이별이 있긴 했지만 결국 한 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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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 책은 자매편이라 할『중국사 강의』의 후속편이다. 1911년 신해혁명 이후부터 1997년 홍콩 반환까지를 다루고 초강대국으로 변모한 중국의 현대사를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