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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암물질

carcinogen, 發癌物質

소시지가 1군 발암물질이라고?

소시지를 위한 변명

난데없이 최근 1군(群) 발암물질로 낙인 찍혀 뭇 사람들의 걱정거리가 된 식품은 소시지(sausage)다. 기원전 5000년경 현재 이라크 지역에서 살던 수메르인이 처음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소시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음식 중 하나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남성의 성기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소시지 금식령(禁食令)을 내린 이후 사상 최대 위기를 21세기에 맞고 있는 셈이다.

소시지(saus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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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지를 1군 발암물질에 포함시킨 기관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의 국제암연구소(IARC)다. 이곳에서는 지난 40여 년간 약 900가지 물질에 대한 발암성 평가가 이뤄졌다. 이 중 100여 가지가 1군 발암물질로 지정됐다. IARC 외에도 발암성 평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기관이 몇 곳 더 있다. 미국 국립독성프로그램(NTP)과 환경보호청(EPA)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아직 이 두 기관에선 가공육 · 적색육에 대해 발암 '꼬리표'를 붙이지 않았다. 소시지가 1군 발암물질이란 사실을 IARC가 발표하면서 마트에서 소시지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 한 소시지 제조 회사 간부의 자녀는 “아빠가 다른 사람에게 암을 일으키는 식품을 만든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며 울먹였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IARC는 수많은 동물실험은 물론 사람 대상 역학(疫學) 연구 등을 통해 인간에게 암을 일으킨다는 점이 증명된 물질을 1군 발암물질로 지정한다. 그러나 1군 발암물질에 노출됐다고 해서 바로 암이 걸리는 것은 아니다. 소시지와 담배(흡연)가 둘 다 1군 발암물질이란 이유로, 소시지가 담배만큼 위험하다고 오해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이런 비교는 소시지 입장에선 정말 억울한 일이다. 예로 술과 B형 간염은 모두 간암을 일으키는 것이 증명된 1군 발암물질이지만 간암을 일으키는 능력(위험도)에 있어선 B형 간염과 술이 동급(同級)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IARC의 발표대로라면 소시지를 매일 50g씩 추가로 평생 먹을 때마다 대장암 발생률이 18%씩 증가한다. 담배는 하루 15개비씩 추가로 피울 때마다 암 발생률이 거의 500%씩 늘어난다. 소시지와 담배의 암 유발 능력은 이처럼 천양지차다.

소시지의 재료가 되는 돼지고기를 비롯해 쇠고기 · 양고기 · 염소고기 등 적색육(赤色肉)은 이번에 IARC로부터 2A군 발암가능 물질 판정을 받았다. IARC의 2군 발암가능물질은 다시 A와 B로 나뉘는데 발암성 관련 증거가 상대적으로 더 많이 쌓여 있는 것이 2A군이다.

IARC는 햄 · 소시지 · 베이컨과 같은 가공육을 1군 발암물질로, 소고기나 돼지고기 같은 적색육은 2군 발암물질로 대장암의 위험을 높인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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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고기를 섭취하는 방법은 크게 보아 두 가지 뿐이다. 적색육 등 생고기로 즐기거나 소시지 등 가공육을 만들어 먹는 것이다. IARC는 가공육 · 적색육이 모두 발암성과 관련 있다고 평가했으므로 육식(肉食) 문화 전반에 대해 '과하지 말라'는 경종을 울린 셈이다.

그렇다고 가공육 · 적색육 섭취를 무조건 금하란 의미가 아니며 이 점은 WHO도 인정하고 있다. 적당량 섭취하면 고기는 양질의 단백질 · 철분 · 칼슘 · 마그네슘 · 비타민 B군 · 비타민 D 등 여러 영양소를 공급받을 수 있는 소중한 먹거리다. 문제는 어느 정도가 적당량인가다. IARC가 이번에 예로 든 하루 가공육 50g, 적색육 100g이 '적정량'이라고 볼 만한 과학적 근거는 없다. 나라마다 선호하는 가공육의 종류, 고기 먹는 습관, 고기 조리법, 육류 섭취량 등이 모두 다르므로 각국이 알아서 적정량을 산출하라는 의미다. 같은 가공육이라도 순대는 일반 소시지의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아질산나트륨으로부터 자유롭고, 최근엔 아질산나트륨이 들어 있지 않는 가공육 제품도 출시되고 있다.

따라서 순대 · 아질산염 프리(free) 가공육과 소시지의 발암성은 다를 수밖에 없다. 또 적색육을 불에 직접 구워 스테이크로 먹는 서양인과는 달리 한국인은 고기를 수육 · 탕 · 찜 등에 넣어 먹는다. 고기를 바비큐하거나 프라이팬에 볶아먹으면 PAH · HCA 등 발암성 물질이 더 많이 생성된다는 것은 IARC의 이번 보고서에도 포함돼 있는 내용이다. 고기를 먹을 때 상추 · 깻잎 등 쌈채소를 곁들이는 한국인의 식문화도 암 예방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여겨진다. 가공육 · 적색육으로 인한 암 발생 위험을 낮추기 위해선 우유 등 칼슘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도 중요하다.

“모든 독성은 양(量)에서 나온다”는 것이 독성학의 기본 명제다. 가공육 · 적색육도 적정량 섭취가 최선의 대책이므로 식품안전당국이 신속하게 한국인의 연령대별 · 성별 적정 가공육 · 적색육 섭취권장량을 정해 알려줄 것을 기대한다.

적색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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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발암물질의 의미

1급 범죄 · 1급 비밀 · 1급 정보 · 1급 유해물질 · 1군 선수……. 1로 시작하면 누구나 직감적으로 사안이 중하거나 거물이라고 느낀다. 으뜸 · 기본을 뜻하는 1의 속성 때문이다. 보건 분야엔 1군 감염병(전염병)이 있다. 마시는 물이나 식품을 매개로 발생하고 집단 발생의 우려가 커서 발생 또는 유행 즉시 방역대책을 세워야 하는 감염병을 가리킨다. 콜레라 · 장티푸스 · 파라티푸스 · 세균성 이질 · 장출혈성 대장균감염증 · A형 간염이 여기 속한다. 최근 세계보건기구 산하기관인 국제암연구소는 소시지 · 햄 등 가공육을 1군 발암물질로 분류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1군 발암물질 검출이나 1군 감염병 유행 소식이 전해지면 대중은 1이란 숫자 때문에 실제보다 훨씬 큰 위험으로 받아들이며 과도한 두려움을 표시한다. 따라서 사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려면 1의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한다.

감염병 예방법엔 법정 감염병이 1∼5군 감염병과 지정 감염병으로 분류돼 있다. 이 중 '첫째'인 1군은 치사율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방역 당국은 빠른 속도로 감염되는 감염병에 1이란 숫자를 부여했다. 요즘 콜레라 · 장티푸스 · 세균성 이질 등 1군 감염병에 걸려 숨지는 사람은 거의 없다. 4군 감염병이라고 해서 절대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에볼라 · 두창(천연두) · 뎅기열 · 황열 · 보툴리누스 · 중증 급성호흡기 증후군(SARS) · 신종 인플루엔자(신종플루) · 웨스트나일열 · 큐열(Q熱) · 라임병 · 중증 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 일명 살인 진드기) 등 해외에서 유입된 신종 질환이 많이 포함돼 있으며 개중엔 생명까지 위협하는 것들도 있다. 4군 감염병이 유행하면 강제 격리 등 1군에 준하는 조치를 내릴 수 있는 것은 그래서다.

IARC는 발암물질(발암가능물질 포함)을 1군(群) · 2A군 · 2B군 · 3군 등으로 나눈 뒤 각 군(群)에 속하는 물질 리스트를 공개한다. 미국 환경보호청(EPA)도 발암물질(발암가능물질 포함) 분류 결과를 주기적으로 발표하고 있지만 우리 국민과 국내 미디어는 IARC의 발암물질 분류 결과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IARC의 1군 발암물질 리스트에 포함된 것은 여러 실험을 통해 사람에게 암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증명된 물질이다. 그러나 1군 발암물질에 소량 · 단기간 노출돼도 암에 걸리게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적인 예가 선탠 기구다. IARC는 '자외선 발생 전구(Sunlamp)'와 선탠 기구(Sunbed)를 1등급 발암물질에 포함시켰다. 이후 식약처는 선탠 기구를 이용한 선탠을 피할 것을 권고했다. 30세 이전부터 선탠을 과도하게 받았다면 흑색종 등 피부암 발생 위험이 '다소'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선탠 이용자가 선탠을 무조건 거부하거나 혹시 암에 걸릴까봐 밤잠을 설쳐야 할 필요는 없다.

1군 발암물질 리스트에 포함된 선탠 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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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RC의 1군 발암물질 리스트엔 태양의 자외선, 갱년기 증상 개선을 위해 복용하는 여성호르몬제, 흡연과 간접흡연, X선 검사, PVC를 만드는 데 쓰이는 염화비닐 등이 들어 있다. 1군 발암물질이 두렵다고 해서 바깥나들이를 삼가고 X선 검사를 기피한다면 득보다 실이 크다. 따라서 1이란 숫자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 1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것이 건강엔 더 마이너스다.

에틸 카바메이트(2A군)와 에탄올(1군 발암물질)의 모순

'불편한 진실'이지만 김치와 포도주에도 발암 물질이 들어 있다. IARC가 발암물질로 분류한 니트로소아민과 에틸 카바메이트다. 그러나 김치를 발암식품으로 보진 않는다. 발암물질의 양이 무시해도 될 만큼 극미량이기 때문이다. 김치에 풍부한 항암 · 항산화 성분은 니트로소아민의 해악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 1김치
    • 2포도주

요즘 웰빙주로 인기 높은 포도주도 국내에서 발암물질 검출 이슈로 수난을 겪은 바 있다. IARC가 2군 발암물질로 분류한 에틸 카바메이트란 물질이 검출된 것이다. 에틸 카바메이트는 별칭인 우레탄이 우리 귀에 더 익숙하다. 포도주 등 술을 제조할 때 효모의 영양원으로 공급하는 요소 등 질소산화물이 발효되면서 에틸 카바메이트가 생성된다. 포도주 · 청주 · 위스키 등 발효주와 요구르트 · 치즈 · 김치 · 간장 등 발효식품에서 에틸 카바메이트가 소량 검출되는 것은 그래서다.

술의 주성분인 에탄올은 IARC가 1군 발암물질로 분류한 물질이다. 하지만 에틸 카바메이트는 2A군 발암물질이다. 2A군 발암물질이란 인체 발암 증거는 제한적이고 부정확하지만, 동물실험에서 발암증거가 충분히 확보된 물질이다. 과거엔 에틸 카바메이트가 2B군으로 분류됐으나 2007년에 2A군 발암물질로 상향 조정됐다. 이는 에틸 카바메이트가 암 유발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들이 많이 축적된 결과다. 하지만 에틸 카바메이트가 1군 발암물질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에틸 카바메이트를 사람에게 직접 제공한 뒤 그 영향을 추적하는 연구나 에틸 카바메이트의 독성만을 따로 떼어낸 역학연구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 에탄올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섭취해 왔기 때문에 역학연구 결과가 수두룩하다. 이런 역학연구 결과들을 근거로 해 IARC는 주성분이 에탄올인 주류 자체를 1998년 1군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IARC는 1998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주류의 인체 발암성은 증거가 충분히 확보됐다”며 “알코올 섭취는 후두암 · 식도암 · 간암 · 구강암 등을 일으킨다”고 기술돼 있다. 술 섭취가 많은 사람의 구강암 · 후두암 발병률이 증가했고, 하루 주류 섭취량이 높을수록 사망률이 2∼5배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에틸 카바메이트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이것이 일부 수입 포도주에 '상당량' 들어 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부터다. 에틸 카바메이트가 이슈화된 뒤, 이 물질에 대한 규제 기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청은 딜레마에 빠졌다. 1군 발암물질로 분류된 주류(에탄올)의 유통은 자유로운데 에탄올에 비해 발암성 증거가 적은 주류 내 발암물질(에틸 카바메이트)에 대한 관리기준을 마련해 단속하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틸 카바메이트는 2A군, 에탄올은 1군 발암물질로 분류돼 있지만 에탄올의 발암 능력 · 독성이 에틸 카바메이트보다 더 강하다고 보긴 힘들다. 오히려 에틸 카바메이트의 독성 · 발암 능력이 훨씬 클 가능성이 높다. 에틸 카바메이트의 섭취 허용기준이 에탄올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낮다는 것이 그 근거다. 발암 분류 순위(1∼3군)와 실제 발암 능력 · 독성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것이 에탄올과 에틸 카바메이트의 사례가 여실히 보여준다. 건강을 위해 절주(節酒)가 권장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에틸 카바메이트도 가능한 한 적게 섭취하는 것이 최선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뾰족한 자구책은 없다. 포도주 등 술을 오래 두고 마실 때 보관 온도를 낮게 유지하는 정도다.

그러나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 근거는 다음 세 가지다. 첫째, 양이 극미량이다. ppb(10억분의 1) 단위로 들어 있다. 둘째, 검출되는 양의 대부분이 체내에서 빠르게 분해돼 빠져 나간다. 영국 식품표준청(FSA)의 2004년 발표에 따르면 음주 뒤 24시간 이내에 섭취한 에틸 카바메이트의 90∼95%가 간에서 무해한 물질로 분해된다. 분해되지 않은 것도 대부분 소변과 함께 배출된다. 셋째, 포도주엔 항암 · 항산화 성분인 폴리페놀(쿼세틴 · 에피카테킨 · 레스베라트롤 등)이 풍부하다. 이들은 에틸 카바메이트를 무독화하기에 충분하다.

역학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2006년 10월 미국 대학 위장관학회 학술대회에선 포도주 섭취가 대장 폴립(용종)의 발생률을 낮춰준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평균 나이가 50대 후반인 1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연구에서 적포도주 애호가에게 폴립 등 대장에 이상 증식이 생길 위험은 3%로 나타났다. 백포도주 애호가(9%) · 완전 금주자(10%)에 비해 확실히 낮았다. 이러한 결과는 레스베라트롤 덕분으로 추정됐다. 적포도주가 백포도주에 비해 월등한 결과를 보인 것은 포도주의 항암 성분이 껍질 부위에 몰려 있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항암·항산화 성분이 풍부한 포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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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류의 발암 위험 낮추는 식품 '베스트 10'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가 가공육과 붉은색 고기(적색육)의 과다 섭취가 암 유발(특히 대장암) 가능성을 높인다고 발표하자 육류의 발암 위험을 낮출 수 있는 식품들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높아졌다. 육류의 발암 가능성을 낮춰주는 식품 '베스트 10'엔 채소 5종(깻잎 · 부추 · 마늘 · 고추 · 양파), 과일 1종(귤), 해조류 1종(다시마), 발효식품 1종(김치), 유제품 1종(우유), 음료 1종(녹차)이 포함됐다.

이 중 깻잎의 항암 성분은 베타카로틴과 리모넨이다. 고기를 태우면 PAH 등 발암성 물질이 생길 수 있는데 깻잎에 풍부한 베타카로틴(체내에서 비타민 A로 변환되는 항산화 비타민)이 이를 상쇄해준다. 깻잎의 베타카로틴 함량(100g당 9.1㎎)은 당근(7.6㎎) · 단 호박(4㎎)을 능가한다. 깻잎의 향기 성분인 리모넨은 고기 특유의 냄새까지 잡아준다. 중국의 고의서인 『본초강목』엔 “깻잎은 고기의 온갖 독을 해독한다”고 쓰여 있다. 깻잎 추출물이 실험동물인 쥐의 대장암의 발생률을 53% 가량 낮췄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깻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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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에 풍부한 황화알릴 · 식이섬유 · 쿼세틴(항산화 성분) 등도 암 예방을 돕는다.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 의대 연구팀은 지난 2006년「임상위장병학-간장학」에 발표한 연구논문에서 양파에 든 쿼세틴이 대장폴립(용종)의 수를 줄이고 크기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마늘의 암 예방 성분은 매운 맛 성분인 알리신이다. 미국에서 4만 1000명의 중년 여성을 대상으로 실시된 '아이오와 여성건강연구'에선 규칙적으로 마늘과 과일 · 채소를 먹은 여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대장암에 걸릴 위험이 35%나 더 낮았다.

부추엔 황화알릴(마늘 · 양파 함유) · 베타카로틴(깻잎 함유) 외에 클로로필(엽록소) · 식이섬유가 들어 있다. 식이섬유를 충분히 섭취하면 변비를 예방하고, 대장암의 발생 가능성을 낮춰준다. 부추 등 채소의 식이섬유는 장내 유익균(有益菌)이 가장 선호하는 먹이다. 특히 부추에 들어 있는 물에 녹지 않는 불용성(不溶性) 식이섬유는 노폐물 · 발암 물질 등 유해 물질을 빨아들여 대변으로 배출시키는 '장내 진공청소기'다.

고추의 암 예방 성분은 항산화 비타민인 비타민 C와 매운 맛 성분인 캡사이신이다. 지난해 8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팀은 동물실험 결과 고추의 캡사이신 성분이 대장암 치료 효과가 있다고 국제학술지인 《임상조사저널》에 발표했다. 실험용 쥐에 캡사이신이 함유된 고추를 먹게 했더니 대장암 위험이 감소했을 뿐 아니라 이를 섭취하지 않은 쥐에 비해 수명이 30% 가량 길어졌다는 것이다.

귤의 암 예방 성분으론 비타민 C(항산화 비타민) · 베타카로틴 · 리모넨(깻잎 함유)이 꼽힌다. 귤 100g당 비타민 C 함량은 44∼48㎎. 게다가 귤은 대부분 생과로 먹으므로 비타민 C가 조리 도중 소실 · 파괴될 일도 거의 없다.

다시마의 암 예방 성분은 식이섬유 · 칼슘 · 셀레늄 등이다. 특히 식물성 식이섬유인 알긴산이 풍부하다. 음식의 종류와 상관없이 하루에 섭취하는 총 칼로리가 높을수록 대장암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긴산은 포만감을 금세 느끼게 해 열량 섭취를 줄여준다. 알긴산의 일종인 후코이단(fucoidan, 다시마 · 미역 등 해조류 표면의 미끈거리는 성분)도 암 억제에 유용하다. 2011년 일본 홋카이도대학 연구팀은 후코이단이 대장암 세포의 자살을 촉진해 암의 증식을 억제한다고 발표했다.

고기 먹을 때 우유를 곁들이면 대장암 예방에 유익한 것은 우유가 '칼슘의 왕'이기 때문이다. 칼슘 섭취는 대장암과 대장 선종의 발생 위험을 낮춰준다. IARC는 칼슘을 섭취하면 가공육이나 적색육에 의한 암 발생 위험을 낮출 수 있다고 밝혔다. 우유 등 칼슘이 풍부한 식품을 즐겨 먹으면 암 · 노화 등을 일으키는 니트로소아민이나 과산화지질의 생성을 억제할 수 있다. 칼슘이 풍부한 음식으론 우유 외에 유제품 · 멸치 · 다시마 · 미역 · 새우 · 브로콜리 등이 있다.

발효 식품인 김치의 암 예방 성분은 유산균 · 식이섬유 · 비타민 C · 폴리페놀 등이다. 김치 유산균은 장내(腸內) 염증은 물론 암의 발전 · 전이 과정을 억제시킨다. 김치의 양념 재료인 마늘 · 생강에 풍부한 염증 억제 성분들은 가공육 · 적색육의 발암 성분의 독성을 완화한다. 가공육의 '아킬레스건'인 아질산나트륨(아질산염)을 줄이는 데도 김치 유산균이 효과적이란 국내 연구결과도 있다.

녹차의 항산화 성분이자 떫은 맛 성분인 카테킨이 암 예방을 돕는다. 미국에선 녹차에서 EGCG(카테킨의 일종)란 성분을 추출해 암 치료 · 예방에 사용한다. 녹차가 암 예방을 돕는다는 것은 여러 동물실험과 역학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카테킨은 암의 성장을 늦추고 암세포의 자살을 유도한다. 미국에선 마늘의 SAMC와 함께 녹차의 EGCG를 천연물 항암제로 개발 중이다.

발암물질에 대한 리스크 평가

1950년대엔 각종 화학물질의 분석 한계가 밀리그램(㎎, 1000분의 1g)이나 마이크로그램(㎍, 100만 분의 1g) 수준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MS-GC 등 분석 장비의 발달로 나노그램(ng, 10억 분의 1g), 피코그램(pg, 1조 분의 1g)까지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엔 '모르는 게 약'이었던 유해물질들이 백일하에 드러나 현대인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것이다. 다이옥신이 좋은 예다. 다이옥신의 검출량은 수 피코그램 수준이어서 과거엔 그런 물질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위해도 평가는 모든 식품엔 발암물질 · 중금속 · 식품첨가물 · 잔류농약 등 소비자가 우려하는 화학물질이 들어 있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한다. 득(혜택)과 실(위험)을 따져 식용 가능성을 평가하자는 것이다. 어떤 식품이든 절대선과 절대악은 없다. 김치를 항암식품으로만 여기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니트로소아민 등 발암물질이 극소량 들어 있을 수 있다. 또한 사과는 '이걸 먹고 아픈 사람이 줄어 환자가 없어지면 어쩌나' 의사가 걱정할 만큼 몸에 좋은 과일이지만 아스피린 원료인 살리실산, 소독성분인 아세톤 · 이소프로판올이 함유돼 있다. 우리가 김치 · 사과를 먹는 것은 손익계산에서 이익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문제는 니트로소아민 등 발암물질의 존재 유무가 아니라 얼마나 들어 있느냐다. '독성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위스의 의사 필리푸스 파라셀수스는 이미 500여 년 전에 '독은 곧 양(Dose is poison)'이라고 했다. 세상에 독이 없는 것은 없으며 얼마나 많이 먹느냐가 관건이란 뜻이다. 물도 극단적으로 과량 섭취하면 독이 된다. 우리 국민의 발암물질에 대한 인식도 '정성'(발암물질의 유무)에서 '정량'(얼마나 들어 있는지)으로 업그레이드될 때가 됐다.

필리푸스 파라셀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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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암물질의 등급을 매기는 5개 기관들

발암물질은 말 그대로 '암을 일으키거나 그 발생을 증가시키는 물질'이다. 통계청(2015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의 10대 사인(死因)은 악성 신생물(암), 심장 질환, 뇌혈관 질환, 고의적 자해(자살), 폐렴, 당뇨병, 만성 하기도 질환, 간 질환, 운수사고, 고혈압성 질환 순이다. 전체 사망자의 70.5%가 10대 사망원인에 기인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암으로 인한 사망률은 2014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남성 188.7명, 여성 113.2명으로, 총 사망원인의 약 28.6%를 차지한다. 지난 10년간 사망원인 1위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최근엔 가공육 · 붉은 살 고기(적색육) · 디젤 자동차, 심지어는 휴대전화까지 발암 가능 물질로 논란에 휩싸이면서 국민들의 발암물질에 대한 관심과 불안감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시청자의 관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디어에선 벤조피렌 · 석면 등 특정 발암물질을 앞세우기 보다는 발암물질이란 단어를 더 자주 사용하고 있을 정도다.

암은 전 세계적으로 인류가 가장 고통 받고 있는 질병 중 하나다. 암을 일으키는 데 관여하는 발암물질은 화학물질 · 미생물 등 다양하다. 세계보건기구 산하기관인 국제암연구소, EU(유럽연합), 미국 국립독성프로그램, 미국 환경청, 미국 산업위생 전문가협의회(ACGIH) 등은 각기 발암물질 리스트와 등급을 제시하고 있다. 실험동물을 이용한 독성시험 결과, 사람 대상 역학(疫學) 연구자료, 해당 물질의 구조, 독성 메커니즘 등 과학적 자료를 토대로 해서다.

최근 가공육을 1군 발암물질로 선정해 유명세를 탄 IARC는 1971년 이후 100여 권의 인체 발암물질에 관한 평가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작업엔 전 세계 50개국 이상, 1000명 이상의 과학자가 관여하고 있다.

IARC는 발암물질 후보에 대한 발암성 평가를 실시할 때 전문가 회의를 갖는다. 이 자리엔 인간 발암위험에 대한 역학조사 자료, 동물 발암성 평가자료, 발암 메커니즘에 대한 관련 연구자료 등을 발표한 연구자 · 관련 전문가가 참석한다. 전 세계에서 모인 15∼30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워킹 그룹(Working Group)이 주축이 돼 평가를 진행한다. 워킹 그룹에선 발암물질 후보의 발암성 여부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결론을 내린다. IARC는 1군(Group 1), 2A군(Group 2A), 2B군(Group 2B), 3군(Group 3), 4군(Group 4) 등 5가지 그룹으로 분류하고 있다. 여기서 그룹Group을 국내 미디어가 1급으로 번역하면서 1급 발암물질이 대중에 '가장 위험하고 강력한' 발암물질로 인식됐다. 가공육을 IARC가 '1그룹' 발암물질 리스트에 포함시킨 뒤 대중의 공포가 커지자 요즘은 미디어에서도 '1급' 대신 '1군'이란 표현을 주로 쓰고 있다.

IARC는 인체에 대한 역학연구 자료가 충분한 경우(사람에게 암을 일으킨다는) 동물실험 자료와 무관하게 '1군'으로 분류하고 있다. 사람 대상 역학 자료가 제한적(미흡)이면서 동물실험 자료가 충분하면 '2A군', 사람 대상 역학 자료가 불충분하거나 제한적이면서 동물실험 자료도 충분하지 않으면 '2B군'으로 분류한다.

비(非) 정부기관인 미국 산업위생 전문가협의회는 노동자의 건강 · 근무 환경과 관련된 각종 자료를 모아 주요 화학물질의 직업적 노출기준을 정해 이를 알리고 있다. 지금까지 700종 이상의 화학물질에 대해 직업적 노출기준(TLVs) 리스트를 발표했다. 여기서도 각 물질에 대한 역학연구 자료와 동물실험 자료 등을 토대로 발암성을 평가한 뒤 발암물질을 A1에서 A5까지 5단계로 분류하고 있다. 이 분류 기준은 IARC의 5단계 분류 기준과 비슷하다.

미국 국립 독성 프로그램은 미국 보건복지부 산하 기구다. 매 2년마다 발암물질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평가과정엔 NTP 소속 과학자뿐 아니라 연방 보건기구나 규제기구, 비정부 연구소 등에 소속된 과학자들이 참여한다. NTP는 발암물질 후보의 발암성을 2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발암성 평가를 하는 전 세계 5개 기관에서 모두 1급 또는 1군으로 규정하고 있는 발암물질은 벤젠 · 염화비닐 · 비스(클로로메틸)에테르 · 벤지딘 · 석면 · 6가 크롬 등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발암물질인가?

2004년 《사이언스》 제304호엔 2000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 암으로 숨진 사람들(115만 9000명)의 암 발생 원인을 조사한 연구논문이 실렸다. 암에 걸리는 첫째 원인은 담배(43만 5000명), 둘째는 잘못된 식생활과 운동부족(40만 명)이었다. 따라서 둘만 잘 관리(사려 깊은 음식섭취 · 금연 등)해도 암 환자를 지금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면 우리가 매일 먹는 식품이 발암물질이란 말인가? 당연히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대부분의 식품은 발암과 무관하다. 채소 · 과일 등 암 예방 식품도 많다. 암과 관련해 의심을 받는 식품은 극소수다. 술이 식도암 · 간암, 소금이 위암, 기름진 지방 음식이 대장암 · 유방암 · 전립선암 발생에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다. 그나마 이들의 혐의는 '의혹' 수준이며 '확정'된 것도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식품 그 자체에서 발암물질을 찾아내려 든다면 완전히 헛다리짚은 것이다. 그보다는 식품의 조리 · 제조 과정을 들여다봐야 한다. 식품의 조리 중엔 'HAA' · 'PAH'라는 발암가능 물질이 생긴다. HAA는 쇠고기 · 닭고기 · 생선에 열을 가할 때 고기의 아미노산들(단백질 구성 성분)이 변성된 것이다. PAH도 주로 고기를 굽는 과정(지방의 변성)에서 생긴다. PAH와 HAA는 하나의 유해물질이 아니라 여러 유해물질을 총괄하는 용어다. 최근 올리브유에서 검출됐던 벤조피렌은 PAH 중에서 발암성이 가장 강력한 녀석이다.

이 둘을 전혀 안 먹고 살 수는 없다. 그러려면 육식은 포기해야 한다. 다행히 섭취를 줄이는 방법이 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고기의 타거나 검게 그을린 부위를 떼어 내고 먹는 것이다. 태운 정도가 심할수록 PAH와 HAA가 더 많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스테이크 집에서 주문할 때 '웰던'보다 '미디엄'이 건강에 이롭다고 보는 것은 그래서다.

고기를 미리 절이는 것도 훌륭한 대안이다. 마늘 · 올리브유 · 레몬주스 · 소금 · 설탕 · 식초 · 감귤주스 등에 절여 조리하면 HCA의 발생량이 92∼99%나 감소한다는 미국암연구기금(AICR)의 연구결과도 있다. 절이는 시간은 생선 15분, 껍질을 제거한 닭고기는 30분, 쇠고기 · 돼지고기는 1시간이면 적당하다. 미국에선 '매리네이드(marinades, 절임)의 마술'을 소비자에게 적극 홍보 · 교육하고 있다.

고기 하나를 조리할 때도 우리 전통의 조리법은 빛이 난다. 고기를 굽거나 튀기는 서양 요리에 비해 삶거나 찌는 우리 방식은 발암가능 물질의 생성을 확실히 줄여준다. 쇠고기를 구웠을 때는 벤조피렌(PAH의 일종)이 0.25ppb, 삶았을 때는 0.02ppb 검출됐다는 국내 학자의 연구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1군 발암물질 벤조피렌 회피한 조상의 지혜

IARC는 벤조피렌을 1군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수십 년간 일정 농도 이상 섭취하면 암, 특히 위암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통해 확인됐기 때문이다. 벤조피렌에 짧은 기간 노출되더라도 그 양이 많으면 적혈구가 파괴되고 면역력이 떨어진다. 임신부가 벤조피렌에 과다 노출되면 태아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문제는 벤조피렌이 식품을 가열 · 조리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긴다는 사실이다. 숯불구이 · 스테이크 · 훈연(燻煙)식품 등 가열한 육류, 생선 · 건어물 · 표고버섯 등의 탄 부위, 커피 등 볶은 식품에서 주로 검출된다. 지방이 풍부한 식품을 열처리하는 과정에서도 생긴다. 담배 연기 · 자동차 배기가스 · 쓰레기 소각로 연기 등에도 벤조피렌이 소량 포함돼 있다.

따라서 식탁에서 벤조피렌을 완전 추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려면 화식(火食)을 포기하고 거주지를 남극 등 청정지역으로 이전해야 한다. 현실적인 대안은 가능한 한 벤조피렌을 적게 먹는 것이며 방법은 있다. 삼겹살 · 숯불구이 · 바비큐 · 스테이크 등 고기를 불에 직접 구워 먹는 횟수를 줄여야 한다. 고기의 지방 성분과 불꽃이 직접 접촉할 때 벤조피렌이 가장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고기는 석쇠보다 두꺼운 불판이나 프라이팬에 굽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 숯불 대신 프라이팬에 구우면 벤조피렌 발생량이 100분의 1 정도로 감소한다. 가열 · 조리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는 것도 방법이다.

고기가 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부위에는 벤조피렌에 들어 있을 수 있으므로 탄 부위는 반드시 잘라내고 먹는다. 기름에 튀기거나 볶은 음식의 섭취도 최대한 줄인다. 고온으로 튀기거나 볶을 때 벤조피렌이 생기기 때문이다. 소시지 · 칠면조 고기 등 훈연한 식품에서도 벤조피렌이 자주 검출된다. 소시지나 햄을 프라이팬에 구워 먹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도 벤조피렌이 생기기 때문이다.

되도록 열을 가하지 않는 방법으로 제조한 식용유를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콩기름 · '엑스트라 버진'(최고급 올리브유) 등에서는 벤조피렌이 거의 검출되지 않는다. 그러나 깨나 들깨를 볶아 식용유를 만들면 벤조피렌이 생긴다. 가끔 정제 올리브유인 '포마스'와 옥수수기름에서 벤조피렌이 검출돼 식용 부적합 판정을 받는 것도 이런 식용유를 제조할 때 가열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벤조피렌의 섭취를 최대한 줄이려면 우리 선조가 고안한 건강 조리법인 삶기 · 찌기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좋다. 삶거나 찐 음식에서는 벤조피렌이 거의 검출되지 않는다. '구이는 동, 수육은 금'인 것은 그래서다. 우리 전통 음식인 설렁탕 · 삼계탕 등도 벤조피렌으로부터 안전하다. 금연도 벤조피렌 섭취를 줄이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고기의 지방 성분과 불꽃이 직접 접촉할 때

벤조피렌이 가장 많이 발생하므로, 검게 그을린 부분은 반드시 잘라내고 먹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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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예방 식품과 암 촉발 식품

실제로 대부분의 암 발생은 우리의 생활환경과 관련이 있다. 음식과 담배가 암 발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35% · 30%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외의 수많은 의학자 · 한의학자 · 영양학자 · 식품학자 · 건강 전문가 등이 저마다 암 예방(항암) 식품을 추천한다. 그 수는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다. 세계암연구재단도 '15대 항암 식품'을 선정했다. 이 리스트에 포함된 식품의 면면을 보면 전문가들이 왜 채소 · 과일 섭취를 강조하는지 이해가 간다. 이 리스트에서 최고의 항암 식품으로 꼽힌 것은 시금치다. 다음은 오렌지 · 브로콜리 · 마늘과 양파 · 파파야 · 토마토 · 고구마 · 포도 · 완두 · 콩 등의 순서다.

시금치엔 암 등 성인병의 주범인 활성(유해)산소를 없애는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다. 베타카로틴 · 비타민 C · 루테인 등이 시금치에 든 항산화 성분이다. 이런 성분들을 충분히 섭취하려면 시금치를 가능한 한 재빨리 조리해야 한다. 비타민 C는 물에 녹는 수용성 비타민인데다 가열하면 금세 파괴되기 때문이다. 루테인도 오래 조리하면 파괴돼 버린다. 시금치를 조리할 때 콩기름 등 기름을 사용하면 지용성인 베타카로틴 · 루테인을 더 많이 섭취할 수 있다.

서양에서 가장 인기 높은 항암식품은 브로콜리 · 레드 와인 · 블루베리다. 브로콜리는 미국 국립암연구소(NCI)가 마늘과 함께 최고의 항암식품으로 선정해 주가가 더 올라갔다. 브로콜리의 항암성분은 인돌-3-카비놀 · 설포라판 · 식이섬유 등이다. 인돌-3-카비놀은 전립선암의 성장을 억제하고, 설포라판은 유방암 세포의 증식을 막아주고, 폐암 · 대장암 예방을 돕는다는 연구논문이 있다. 애연가나 육식주의자에게 브로콜리가 추천되는 것은 이래서다. 컬리플라워 · 양배추 · 순무 · 케일 · 냉이 등이 항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이들이 브로콜리와 같은 십자화과(양배추과) 채소여서다.

브로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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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와인(적포도주)은 암 예방뿐 아니라 심장병 · 노화 억제에도 효과적인 술로 통한다. 레스베라트롤이란 항암 성분이자 강력한 항산화 성분이 풍부해서다. 레스베라트롤은 포도 껍질의 성분이다. 따라서 레드 와인 대신 포도를 먹거나 포도주스를 마셔도 효과는 비슷하다. 레드 와인이 웰빙주라고 해서 하루에 2잔 이상 마시는 것은 안 된다. 과음하면 다른 술과 마찬가지로 간에 부담을 주며 유방암 · 간암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서양에선 딸기(스트로베리)의 사촌인 블루베리 · 라즈베리 · 크랜베리 · 블랙베리 · 브라질 아사이베리 등의 항암 효과가 집중 연구되고 있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 연구진은 '베리 형제들' 가운데 야생 블루베리의 항암 능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블루베리에 든 안토시아닌(항산화성분의 일종, 블랙 푸드의 껍질 성분)은 세포에 유해산소가 쌓이는 것을 막아준다. 검붉은 색소인 안토시아닌은 블랙베리에도 들어 있다. 또 크랜베리엔 안토시아닌 외에 녹차의 항암성분인 카테킨까지 들어 있다. 브라질 아사이베리는 사람의 백혈병(혈액암의 일종) 세포를 죽이는 것이 확인됐다.

동양인이 즐겨먹는 대표 항암식품은 녹차 · 버섯 · 콩이다. 학자들은 녹차의 항암 성분으로 카테킨을 지목한다. 녹차엔 떫은 맛 성분이면서 항산화 성분인 카테킨이 10∼18%나 들어 있다. 카테킨은 발암물질이 유전자(DNA)를 손상시키는 단계부터 차단한다. 또 발암물질인 벤조피렌 · 아플라톡신 등이 사람의 정상 유전자와 결합하지 못하도록 막아준다. 카테킨은 이미 손상된 유전자의 회복을 돕고 암세포가 신생혈관을 만들면서 다른 부위로 전이되는 것도 억제한다. 이를 주성분으로 한 항암제도 개발 중이다. 항암 효과를 기대하려면 녹차를 하루 5∼10잔, 녹차 잎으론 매일 6g을 먹어야 한다. 잎은 잘게 썰어 밥이나 반찬에 뿌려 먹으면 된다.

버섯의 항암 성분은 베타글루칸으로, 수용성(물에 녹는) 다당류이다. 우리나라에선 혈관 건강에 이로운 성분으로 알려져 있으나 일본에선 항암성분으로 더 유명하다. 베타글루칸은 열을 가해도 잘 파괴되지 않으므로 가열 · 조리해 먹어도 상관없다. 수용성인 베타카로틴을 더 많이 섭취하려면 버섯을 꼭꼭 씹어 먹는 것이 좋다(침이 더 많이 분비). 버섯 불린 물 · 버섯 조림 국물도 버리지 말고 잘 챙겨 먹는다. 일본시험분석센터 자료에 따르면 베타글루칸 함량이 가장 높은 버섯은 꽃송이버섯(100g당 43.6g)이다. 잎새 · 영지 · 느타리 · 송이 · 아가리쿠스 등도 베타글루칸이 풍부한 버섯에 속한다.

콩의 항암성분은 이소플라본과 사포닌이다. 특히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과 비슷한 작용을 해서 식물성 에스트로겐이라 불리는 이소플라본은 유방암 · 대장암 예방 효과가 기대된다. 이소플라본은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등 여성의 갱년기 증상을 덜어주는 데도 유용하다. 항암 효과를 얻으려면 콩조림 · 된장국 · 청국장 · 두부 · 두유 등 콩이 든 음식을 최소한 매주 2∼4회는 먹어야 한다. 조직이 단단한 콩보다 두부 · 청국장 · 된장 등이 소화 · 흡수가 더 잘 된다.

동 · 서양인이 함께 즐기는 항암식품으론 마늘 · 토마토를 들 수 있다. 마늘은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비문에 '스태미나 식품'으로 기록돼 있다. 피라미드를 쌓기 위해 동원된 노예 등에게 마늘을 먹여 체력을 극대화시켰다. 그러나 요즘은 항암식품으로 더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 실시된 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간 1.5㎏씩 마늘을 먹는 사람이 암에 걸릴 위험은 거의 안 먹는 사람에 비해 50%나 낮았다. 마늘의 항암성분은 황화 아릴류와 S-아릴 시스테인이다. 이 두 성분을 효과적으로 섭취하려면 마늘에 기름을 넣고 볶는 것이 좋다. 그러나 지나치게 고온에서 조리하면 항암성분이 분해될 수 있으므로 빻은 마늘을 100도 이하에서 1~2분가량 볶는다. 마늘을 소주에 담가 놓으면 수용성인 S-아릴 시스테인이 빠져나온다. 생마늘은 자극성이 강하므로 하루 한쪽, 익힌 마늘은 하루 두세 쪽 정도 먹는 것이 적당한다. 미국 국립암연구소에 따르면 마늘이 위암 · 위궤양의 원인 중 하나인 헬리코박터균의 증식을 억제한다고 한다.

토마토의 항암 · 항산화 성분은 라이코펜이다. 라이코펜의 항암능력은 항산화 비타민인 베타카로틴의 거의 두 배에 달한다. 미국 남성들은 토마토를 전립선암 예방 식품으로 간주한다. 토마토를 올리브유 등 기름에 살짝 볶아서 먹으면 지용성인 라이코펜의 흡수가 촉진된다.

지금까지 열거한 항암식품의 공통점은 채소 아니면 과일이란 사실이다. 미국에서 '5 a day' 운동(하루에 5접시의 채소나 과일 섭취하기)을 벌이는 것은 이래서다. 채소 · 과일엔 3대 항산화 비타민으로 알려진 베타카로틴 · 비타민 C · 비타민 E가 풍부하다. 항산화 비타민은 노화와 암의 원인인 유해 산소를 없애준다. 식이섬유도 많이 들어 있다. 식이섬유는 대장의 움직임을 활발하게 해 변비를 예방하고 발암물질 등 유해물질이 장에 머무르는 시간을 단축시킨다. 현미 · 보리 · 통밀 등 거친 음식, 채소, 과일 등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품을 먹으면 요즘 국내에서 환자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대장암의 발생 위험을 낮출 수 있다.

    • 1~2채소와 과일

발암물질 등 암 발생을 촉진하는 것들을 적극 피하는 것도 효과적인 암 예방법이다. 세계 암연구기금(WCRF)과 미국 암연구기금은 1960년 이후 전 세계에서 진행된 7000개의 암 관련 연구를 분석한 뒤 적색육 · 알코올 · 소금 · 설탕 · 영양 보충제 등이 암 발생에 크게 기여한다고 발표했다.

적색육(쇠고기 · 돼지고기 · 양고기 등)과 육가공식품(햄 · 베이컨 · 살라미 · 소시지 등)을 과다 섭취하면 특히 대장암 발생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인당 육류 섭취량이 세계 최고 수준인 뉴질랜드인들은 대장암에 잘 걸린다. 반면 육류를 거의 먹지 않는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인들에게 대장암은 희귀 암이다. 따라서 조리된 적색육의 섭취를 주당 500g 이하(날고기로는 주당 700g 이하)로 줄이고 육 가공식품은 되도록 적게 섭취하는 것이 좋다. 또 고기를 굽는 과정에서 발암물질이 생길 수 있으므로 탄 부위를 떼어 내고 먹어야 한다. 숯불에 굽거나 가열로 검게 탄 식품에는 벤조피렌 등 강력한 발암물질이 들어 있어서다.

지나친 알코올 섭취가 유방암 · 대장암 발생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적지 않다. 따라서 암 예방을 위해 남성은 하루 2잔, 여성은 하루 1잔 이내로 음주량을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맥주를 기준으로 하면 남성은 하루 800㎖, 여성은 500㎖ 가량이다. 음주와 암의 관계에선 알코올의 양이 중요하며, 술의 종류와는 무관하다. 웰빙술로 통하는 레드와인도 과다 섭취하면 암 유발 요인이 될 수 있다. 여성은 매일 한 잔의 음주가 유방암 발생 위험을 11% 높인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따라서 유방암 가족력이나 위험 요인이 있는 여성은 술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과다한 소금 섭취는 위암을 부를 수 있다. 위암은 우리나라 남성 암 발생률 1위의 암이다. 너무 짠 음식이나 소금에 절인 염장 음식은 위 점막을 손상시켜 위암 발생을 돕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체 실험에서도 과다한 소금 섭취가 위암의 '예고탄'인 위축성 위염의 발생률은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젓갈 등 염장 음식을 즐겨 먹는 사람이 위암에 잘 걸린다는 역학 조사 결과도 나왔다. 실제로 동아시아 · 북유럽 · 서유럽 등 음식을 짜게 먹는 나라의 위암 발생률이 미국보다 2∼3배 높다. 고혈압 뿐 아니라 암 예방을 위해서도 소금을 하루 6g 이하 섭취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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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균 집필자 소개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학사, 동대학원에서 공중보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조지아대학교 식품과학과 연구원으로 일했으며 국내 유일의 식품의약전문기자로 활동했다. 현재 중앙대학교 의약식품대학원 겸임..펼쳐보기

출처

청소년이 꼭 알아야 할 과학이슈 4
청소년이 꼭 알아야 할 과학이슈 4 | 저자박기혁 외 | cp명과학동아북스 도서 소개

『청소년이 꼭 알아야 할 과학이슈. 11 SEASON4』는 과학기술의 성과와 중요성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 과학매체의 편집장들과 과학전문기자, 과학칼..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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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발암물질청소년이 꼭 알아야 할 과학이슈 4, 박기혁 외, 과학동아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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