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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도 에너지 파시즘으로 패권 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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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러시아는 “석유의 수급은 경제적인 문제”라고 말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석유는 경제재 이전에 힘의 논리에 의해 좌우되는 특이 상품이다. 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러시아 역시 에너지를 통한 패권 확보를 반복해서 행동으로 보여줬다. 엄청난 양의 석유와 우라늄은 물론 유라시아 최대의 천연가스와 석탄 보유량을 자랑하는 러시아는 이제 새로운 에너지 초강대국이다. 러시아는 천연가스 생산에 있어 절대강자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보유량은 측정된 것만 1700조 세제곱피트에 이른다. 전 세계 천연가스 공급량의 27%를 차지하는 양이다.

러시아, 우크라이나에 가스공급 중단하다

러시아는 시민혁명으로 탈러시아 그룹에 합류한 우크라이나에 대해서 천연가스 가격의 대폭 인상이라는 무기로 강력한 경고를 줬었다. 러시아의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은 2006년 1월 1일을 기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했다.

이는 2005년 12월 13일 “우크라이나가 내년부터 러시아 가스를 인상된 가격으로 사가지 않을 경우 가스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엄포를 실행에 옮긴 것이다. 러시아가 탈러시아, 친서방 노선을 걷고 있는 우크라이나에게 본때를 보이겠다고 나섰다. 우크라이나는 옛 소련권 형제국 가운데 덩치가 가장 크다. 그런데 소련 붕괴 후 새로운 조직의 보스가 된 러시아가 느슨해진 조직에서 이탈하려는 우크라이나에 조직의 쓴 맛을 보여주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동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천연가스를 아주 싼 값으로 공급해왔다. 사회주의 형제국에겐 시세의 20~30%에 불과한 가격으로 줬던 것이다. 유럽연합은 러시아로부터 1천 세제곱미터당 250달러 내외를 내고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를 수입하고 있지만 형제국들은 50달러 정도에 받아서 썼다. 그런데 2004년 ‘선거혁명’ 이후 과거 한 식구였던 우크라이나가 배반의 길을 걷자 맏형 격인 러시아가 천연가스라는 무기를 내세워 압박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시세대로 받겠다며 230달러로 올렸다. 한꺼번에 네 배 이상 받겠다고 하니 우크라이나가 반발하는 것도 당연했다. 우크라이나는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매달렸지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2006년 새해 첫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 가는 가스 공급을 전격 중단하자 우크라이나는 서유럽으로 가는 가스를 자신들 내수용으로 돌려버렸다. 우크라이나는 1930년 당시 소련 가스 산업의 태생지였다. 이후 1960년대에 소련의 가스 산업 중심이 서시베리아로 옮겨지긴 했지만 이후에도 우크라이나는 가스 산업의 주요 도시로서 가스관과 가스저장 시설 등이 갖춰져 있었다.

이런 이유로 러시아와 서유럽을 잇는 가스관은 대부분 우크라이나를 통과하고 있었다. 유럽 가스 소비량의 25%를 러시아가 공급하는 데 이중 80%는 우크라이나를 거치고 나머지는 벨라루스를 통해 공급된다.

우크라이나에는 임시 가스저장시설이 있어서, 러시아에서 오는 가스를 일단 집하했다가 이를 다시 내수 및 서유럽으로 보내는 역할을 했다. 즉 가스 이동을 중간에서 조절할 수 있는 시설이 우크라이나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난리가 난 곳은 동구권과 서유럽이었다. 우크라이나를 통과하는 가스관을 통해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수입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은 한 겨울에 날벼락을 맞은 꼴이었다. 유럽 국가들은 2006년 1월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으로 발전소와 난방시설 가동이 멈추는 등 심각한 혼란을 겪었다. 유럽은 전체 가스 소비의 25%, 수입의 40%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러시아는 유럽의 최대 천연가스 공급원이다. 당시만 해도 독일은 국내 소비량의 44%를 러시아에서 들여오고, 이탈리아, 프랑스는 각각 29%, 26%를 들여왔다. 동유럽의 의존도는 이보다 더 높아 헝가리는 72%, 핀란드는 100%를 러시아에서 사서 썼다. 나흘 만에 사태는 마무리되었지만 동구권과 유럽이 러시아의 에너지 위력을 실감한 첫 사례였다. 이 일이 있은 뒤 독일의 메르켈(Angela Merkel) 수상은 놀래서 러시아로 달려갔다.

독일 메르켈 수상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천연가스 문제로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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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천연가스는 단순한 에너지 자원이 아니라 한 나라의 정권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물론 국가 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국제정치의 중요한 요소가 됐다. 이와 관련, 미국의 군사 · 안보 · 에너지 전문가인 마이클 클레어(Michael Klare) 뉴햄프셔대학교 교수는 20세기가 석유 쟁탈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천연가스 쟁탈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20세기의 에너지인 석유는 점차 고갈되고 있는 반면, 천연가스는 상대적으로 풍부한 매장량이 남아 있다며 이에 따라 산업화된 국가들뿐 아니라 개발도상국들도 점차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러시아가 천연가스를 앞세워 응징하겠다는 나라는 우크라이나 이외에도 조지아가 있었다. 또 일찌감치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에 합류한 발트 3국, 최근 친서방 노선을 강화한 몰도바 등도 있다.

2004년 ‘장미혁명’으로 조지아에 친서방 정권이 들어서면서 틀어진 양국 관계는 2006년 들어 한결 위험한 방향으로 흘렀다. 러시아는 2006년 1월 22일의 두 곳에서 발생한 가스관 폭발을 이유로 천연가스 공급을 끊고 조지아의 주요 수출품인 포도주와 광천수 수입을 금지했다. 러시아는 이 사고를 단순사고라고 말했지만 미하일 사카슈빌리(Mikhail Nikolozovich Saakashvili) 조지아 대통령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고의로 폭발사고를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러시아가 조지아의 나토 가입 추진 등 친서방 노선에 대한 제재 성격이 짙었다. 특히 조지아가 미국에게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위한 기지를 제공한 것이 화근이었다.

게다가 조지아는 카프카스와 흑해에 걸쳐 있다. 즉 군사적으로는 러시아 서남부 지역에 직접 접경하고 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적으로 카스피 해의 석유 자원을 흑해로 연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즉, 미국과 유럽에게 조지아는 러시아 영토를 거치지 않고 카스피 해의 석유를 공급 받을 수 있는 통로였다. 이러한 조지아가 미국과 가까이 지내는 것이 러시아로서는 심기가 편치 않은 것이다.

러시아는 그 밖의 동구권과 서유럽 국가들에 대해서도 심심찮게 천연가스 공급 중단과 가격 인상이라는 공포의 무기를 쓸 수 있음을 은연중에 상기시키고 있다. 실제 2007년 겨울, 러시아 최대의 가스 생산업체인 가스프롬은 “국제 유가가 상승하고 있다”며 “그동안 유럽 각국에 1천 세제곱미터당 평균 250달러로 공급하던 가스 가격을 2008년부터 300~400달러 선으로 올리겠다”고 밝혔다. 또 “2015년까지 러시아 가스의 유럽 시장점유율을 33%까지 높이겠다”고 덧붙였다. 가스 소비량의 26%를 러시아산에 의존하는 유럽은 발칵 뒤집혔다. 각 국가별로 20~60%의 가격 인상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최근 몇 년 사이 이렇게 가격 인상과 주변국들에 대한 가스 공급을 수차례 중단해 ‘자원무기화’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2009년 1월 초에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가스 분쟁으로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이 2주간 중단되면서 한파 속 유럽 각국에 가스 대란이 벌어졌다. 때마침 불가리아 등 일부 유럽 지역은 영하 20도 이하까지 내려가는 한파가 몰아쳤다. 난방시설이 꺼지고 온수가 중단되자 동구권과 서유럽 사람들은 혹독한 추위 속에 러시아 무서운 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러시아 가스 공급 대폭 축소가 계속되면서 유럽연합 27개 회원국과 발칸반도 5개국 가운데 중남부 12개국은 공급이 완전히 끊겼고 루마니아 · 슬로바키아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러시아의 가스 감축으로 프랑스 · 이탈리아에 대한 공급량이 70~90%까지 주는 등 서유럽도 심한 타격을 받았다.

2006년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가스 문제가 대두되면서 유럽연합은 러시아를 거치지 않고 중앙아시아, 카스피 해안 가스를 터키, 불가리아, 루마니아, 헝가리를 거쳐 오스트리아로 실어 나르는 ‘나부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하지만 이는 러시아의 강한 견제로 인해 현재 중단된 상태다. 가스 분쟁을 통해 유럽연합은 LNG(액화천연가스) 수입량을 대폭 늘리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으나 이는 저장 탱크 건설 등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해 가스의 직접적인 해결책으로 보기 어렵다. 결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를 주축으로 해 ‘러시아 달래기’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유럽이 러시아의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러시아 천연가스의 93%를 생산하는 가스프롬은 세계 가스 부존량의 16%를 장악하고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Dmitry Medvedev) 대통령이 가스프롬 회장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러시아에서 가스프롬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러시아 정부가 가스프롬을 동원할 수 있는 것은 이 회사의 주식 51%를 정부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스프롬은 곧 러시아이자 정부였다.

일각에서 러시아가 에너지를 앞세워 신제국주의적 야망을 실현시키려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맞는 말이다. 냉전 이후 러시아는 에너지를 통해 세계의 패권국가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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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희 집필자 소개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 졸업. 1978년 KOTRA에 입사. 보고타, 상파울루, 마드리드 무역관을 거쳤다. 배재대학에서 유대인의 창의성과 서비스산업에 대해 가르친다. 지은 책으로는 《21세기..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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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다섯가지 상품 이야기 | 저자홍익희 | cp명행성비 도서 소개

소금, 모피, 보석, 향신료, 석유의 공통점은 의식주와 연관된 것으로, 대부분 살아가는 데 필수불가결한 것들이다. 인류의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지고 문명이 발달하는 데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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