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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193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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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유럽에선 이른바 ‘자동차 파시즘’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는 1933년 “이제 국력은 철도의 길이가 아닌 고속도로의 길이에 의해 평가받는다”라며, 전 국토에 대규모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아우토반 건설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1934년엔 자동차가 특권 계급의 독점물인 현실을 지적하면서 국민이라면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국민차(폭스바겐)’ 생산을 선언했다. 1938년 최초의 국민차인 폭스바겐 38(비틀)이 출시되자, 히틀러는 ‘강함과 기쁨의 차’ 저축 운동을 통해 모든 노동자가 자동차를 소유할 수 있게끔 하겠다고 장담했다. 이 운동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중단되고 말았지만, 당시 독일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히틀러가 아우토반으로 재미를 보았다면,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는 자동차 경주 대회를 선전에 이용했다. 무솔리니의 선전은 큰 성공을 거둬 이후 이탈리아는 자동차 경주 대회에서 세계의 정상권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스페인을 40년 동안 통치한 프란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는 중산층에게 자동차를 제공함으로써 ‘소형차 파시즘’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만들었다.
파시즘까지는 아니었지만, 유럽의 파시즘과 비슷한 일들이 미국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헨리 포드는 1930년대 말 보수주의, 고립주의, 반유대주의를 외치는 전사로 맹활약했다. 이미 1920년부터 반유대주의 운동을 펼친 포드는 디트로이트에서 발간한 주간지 『디어본 인디펜던트(Dearborn Independent)』를 통해 유대인을 사회악의 근원으로 몰고 유대계 금융인을 흡혈귀에 비유하는 등 유대인을 비난하는 특집을 100여 회 연재했다. 그는 이 기사들을 묶어 『따로 노는 유대인』이란 단행본을 출간해 대량 유포시켰다. 반유대주의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시온 장로의 의정서(The Protocols of the Learned Elders of Zion)』가 제정 러시아 장교에 의해 미국으로 반입된 시기는 1920년대였다. 이 책은 제정 러시아의 비밀경찰이 20세기 초에 날조한 가짜였지만, 포드는 이를 진짜로 받아들여 널리 퍼뜨렸다.
왜 포드는 반유대주의를 갖게 되었을까? 유대인들이 ‘생산’을 하는 직종에 종사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불만 가운데 하나였다. 포드가 혐오하는 과격 좌익 노조 간부의 대부분이 유대인이라는 점도 반유대 성향을 부추긴 주요 원인이었다.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Richard Hofstadter)는 포드의 반유대주의는 집안에서 물려받은 게 아니라 젊은 시절 경험을 통해 얻어진 ‘포퓰리스트 반유대주의(Populist anti-Semitism)’라고 분석했다.
포드는 히틀러의 『나의 투쟁(Mein Kampf)』에서 격찬받은 유일한 미국인이었는데, 히틀러는 포드에게 존경을 표하기 위해 1938년 7월 그의 75세 생일 때 감사의 말과 함께 제3제국 최고의 훈장인 독일독수리최고대십자장을 보냈고, 포드는 두 가지 모두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유대인 저널리스트로 유대인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치는 에드윈 블랙(Edwin Black)은 「히틀러의 자동차 생산자(Hitler’s Carmaker: The Inside Story of How General Motors Helped Mobilize the Third Reich)」라는 글에서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 지엠의 앨프리드 슬론은 히틀러의 협력자였다고 주장했다. 지엠의 이익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루스벨트를 마땅치 않게 여기고 히틀러를 높게 평가한 정치적 동기도 있었다는 것이다. 지엠사는 나치 독일 투자, 자동차 안전 무시, 트러스트 등이 담긴 슬론 관련 파일을 파괴해 진실을 알 길은 없지만, 그런 파일 파괴는 의혹을 증폭시켰다.
자동차 파시즘은 단지 파시스트 국가들에서만 일어난 일일까? 그렇게 보긴 어려웠다. 미국인의 ‘자동차 종교’를 비판한 루이스 멈퍼드는 『기술과 문명(Technics and Civilization)』(1934), 『도시의 문화(The Culture of Cities)』(1938), 『도시의 역사(The City in History)』(1961) 등의 저서를 통해 자동차 중심의 미국 도시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루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여론의 지지를 받은 것 같지는 않다. 1938년 잡지 『포춘』이 미국인들은 어떤 산업이 대중적인 욕구에 가장 잘 부합한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를 조사한 결과, 4위는 영화 산업으로 9.5퍼센트, 3위는 항공 산업으로 9.8퍼센트, 2위는 라디오로 29.2퍼센트였다. 1위는 물론 자동차로 43.1퍼센트였다.
1950년대 뉴욕에서 로버트 모제스의 진두지휘 아래 고속도로가 대대적으로 건설되자, 멈퍼드는 여성 도시학자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와 더불어 이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지만 별 호응을 얻지 못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도 고속도로를 건설할 땐 도시 외곽으로 길을 냈지만, 모제스는 대담하게도 도시 한복판을 파고들었다.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땅을 수용하면서 제 된 집에 살던 25만 명의 주민들이 내쫓겨났다.
이런 일은 비단 뉴욕에서만 일어난 건 아니었지만,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이미 자동차를 신앙으로 삼은 대중은, 환호하진 못하더라도, 암묵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리하여 1960년대에 이르면, 대도시엔 땅이 모자라 고속도로가 이중 삼중으로 하늘로 치솟아 이를 가리켜 ‘도시를 장식하는 콘크리트 리본’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된다.
좀 더 빨리 달리고 싶어 하는 대중적인 욕구에 대한 비용은 만만치 않았다. 우선 자동차로 인한 사망자가 급증했다. 이미 1924년 미국에서만 2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70만 명이 부상을 당했는데, 사망자의 거의 절반이 아동이었다. 1930년 자동차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3만 2000명 이상이었으며, 이 수치는 1940년대 후반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미국인들에게 그건 통계 수치일 뿐 별 의미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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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유럽의 자동차 파시즘 – 자동차와 민주주의,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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