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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버렸다. 이 같은 만행으로 이날 제암리일대에서는 사람과 가옥, 가축, 의류, 곡식 등이 타는 냄새와 연기가 10여㎞ 밖까지 퍼져 나갔다고 전한다. 제암리교회 학살 사건이 일어난 후 신자나 일반인들은 일본의 감시 때문에 사건 현장에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결국 사건을 전해 들은 캐나다 의료선교사 스코필드...
- 위치 :
-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길 50
- 문화재 지정 :
-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 사적 제299호(1982.12.21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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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주민들을 모이게 한 뒤 모든 문을 폐쇄하여 감금시키고 교회에 불을 지른 후, 교회를 향하여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23명을 학살하고 30여채의 가옥을 불태워버린 사건이다. 제암리 학살사건이 있은 지 63년이 지나서야 마을에서 4km 떨어진 도이리 공동묘지에 평토장으로 안장되었던 유해를 발굴하여 제암교회 뒷동산...
- 위치 :
-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길 50
- 문화재 지정 :
-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 사적 제299호(1982.12.21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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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제암리참변 水原堤岩里慘變齋藤勇]는 『복음신보(福音新報)』에 「어떤 살륙사건」이라는 장편시를 발표하여 일본 군경의 만행에 대한 지식인의 통분을 읊기도 하였다. 한편 제암리 학살사건의 현장 지휘책임자인 보병 제79연대소속 아리다 중위에 대한 처벌은 행위가 직무 집행상 온당하였다는 이유로 덮어두려고 하였다가, 세계 여론의 지탄을...
- 시대 :
- 근대
- 유형 :
- 사건
- 분야 :
- 역사/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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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 華城 堤岩里 三一運動 殉國 遺蹟13일 발안에 도착한 일본군은 지역 일본 경찰에게 상황을 보고받았다. 15일 제암리에 도착한 일본군은 강연이 있다고 속여 기독교와 천도교 남자 신자 20여 명을...모이게 하였다. 돌연 출입문과 창문을 잠그고 안에 있는 사람들을 총칼로 학살한 뒤,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교회당에 불을 질렀다. 이때 불속에서 뛰쳐...
- 시대 :
- 근대/일제강점기
- 유형 :
- 유적
- 분야 :
- 역사/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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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전동례의 증언으로 이 지역을 발굴 조사하였다. 그 결과 23위의 유해와 희생자들의 조끼단추, 동전, 못, 병들이 함께 출토되어 이곳에 표석을 세우고 합동장례식을 거행하였다. 불탄 예배당터에는 순국기념탑을 세우고, 국·내외 관계자료를 모아 기념관에 전시해 국민 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제암리 학살 사건도서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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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열 金聖烈23명을 제암리교회에 모이게 했다. 주민들이 지시에 따라 교회 안으로 들어가자 아리타는 출입문과 창문을 모두 잠그고 집중사격을 명령하는 동시에 불을 놓아 교회를 태워버렸다. 이때 주민들 23명이 교회 안에서 무고하게 학살되었으나 유해는 군경의 방해로 가족조차 접근할 수 없었다. 고주리로 이동한 일본 군경은...
- 시대 :
- 근대/일제강점기
- 유형 :
- 인물/근현대 인물
- 분야 :
- 역사/근대사
도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김세열 金世烈주민들에게 전달할 사항이 있다고 속이고 주민들을 제암리교회에 모이게 하였다. 주민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가자 아리타는 출입문과 창문을 모두 잠그고 집중...불을 놓아 교회를 태워버렸다. 이때 주민들 23명이 교회 안에서 무고하게 학살, 희생되었으나 유해는 군경의 방해로 가족조차 접근할 수 없었다. 이어 고주리...
- 시대 :
- 근대/일제강점기
- 유형 :
- 인물/근현대 인물
- 분야 :
- 역사/근대사
도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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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업 金周業俊夫] 중위가 이끄는 보병 13명은 발안에 도착하였다. 수비대는 순사보 조희창(趙熙彰)과 일본인 사사카[佐坂] 등의 안내를 받아 4월 15일에 제암리 학살사건을 저질렀다. 학살을 자행한 수비대는 옆마을인 고주리로 이동하였다. 일본군은 김주업 일가족 6명을 끌고 가 살해한 후, 시신마저 불태웠다. 3일이 지난 뒤에...
- 시대 :
- 근대/일제강점기
- 유형 :
- 인물/근현대 인물
- 분야 :
- 역사/근대사
도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