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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란의 침입
    고려는 송과 우호관계를 유지했지만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을 적대시했다. 942년 거란은 고려에 사신을 보내 교빙을 청했으나 태조는 이를 거절했다. 이후 거란은 993년 고려를 침략했다. 소손녕이 80만 군사를 이끌고 서북면으로 쳐들어오자 서희는 외교 담판을 벌여 거란군을 철수시키고 압록강 동쪽의 강동6주를 획득...
    도서 다음백과 | 태그 고려
  • 고려-거란 전쟁 (관련어 거란의 침입) Goryeo–Khitan War, 契丹の高麗侵攻
    다른 뜻 넘어옴전역상자 여요전쟁 고려-거란 전쟁은 993년, 1010년, 1018년(또는 1019년)에 고려와 거란의 요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던 고려와 요나라는 정치·경제·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교류가 빈번하게 행해졌다. 특히, 거란과 고려의 3차에 걸친 전쟁은 한국 역사에 큰 충격과 영향을 ...
    도서 위키백과
  • 거란의 고려침입
    거란의 침입과 강조의 절개 제1차 침입 후 계속해서 고려를 침입할 구실을 찾던 거란은 강조가 목종을 죽이고 현종을 세우자 이것을 빌미로 삼아 드디어 대군을 일으켰다. 거란의 성종은 이미 마음속으로 고려를 칠 계획을 세우고 신하들을 떠보았다. “고려의 강조라는 자가 임금을 죽이고 어린 임금을 내세워 제멋대로...
  • 거란의 2차 침입 발생, 현종 나주로 피란
    거란의 성종이 목종을 시해한 강조를 벌 주겠다며 직접 4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강조는 행영도통사가 되어 30만 군사로 맞서 싸우다 사로잡혔다. 강조는 거란 성종으로부터 거란의 신하가 되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끝내 거절하고 죽임을 당했다. 이로써 성종이 내건 정벌의 이유는 사라졌으나 성종의 진짜 속셈...
    시대 :
    1010년
    국가/대륙 :
    한국
  • 고려의 대외관계
    고구려의 옛 영토 회복이라는 태조 이래의 북진정책을 추구하며 발해를 멸망시킨 요와 대립했다. 그 결과 성종에서 현종에 이르는 시기에 3차례에 걸쳐 거란의 침입을 받았으나, 모두 격퇴하고 오히려 영토를 압록강까지 확장했다. 12세기초 여진의 등장으로 동북아시아의 질서는 변화했다. 1107년 윤관(尹瓘)이 정벌...
    도서 다음백과 | 태그 한국사 , 현대
  • 구주대첩 귀주대첩, 龜州大捷
    갖게 되었고, 송나라를 정복하기 전에 우선 배후에서 위협이 되는 고려를 정벌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이에 고려를 3차례에 걸쳐 침략했다. 거란의 제1차 침입은 993년(성종 12)에 있었는데, 서희의 외교적 담판으로 거란의 군대를 물리치고 압록강 이동의 강동6주를 소유하게 되었다. 제1차 침입 후에도 고려는...
    도서 다음백과 | 태그 고려
  • 거란 1차 침략 발생
    거란이 쳐들어왔다. 거란은 송나라와 다투고 있었는데, 고려가 송나라와 교류하며 거란을 멀리했기 때문이다. 거란 성종(聖宗)은 소손녕에게 80만 대군을 주어 남하하도록 했다. 거란이 지금의 황해북도 봉산군을 빼앗자 고려 조정에서는 항복하든지 서경 이북을 떼어 주자는 논의가 일어났다. 그러나 중군사 서희가 끝...
    시대 :
    993년
    국가/대륙 :
    한국
  • 송나라와 거란의 화친
    거란의 성종(재위 982년~1031년)이 대군을 이끌고 송나라에 침입해 황하 남쪽 전주(澶州)까지 진격했다. 전주는 송나라 수도 개봉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다. 송나라 3대 황제 진종은 어쩔 수 없이 이를 상대하러 나갔으나 이길 자신이 별로 없었다. 문신 우대 정책으로 군사력이 약화된 송나라가 거란에 승리...
    시대 :
    1004년
    국가/대륙 :
    아시아
  • 거란 3차 침략 감행
    12월, 거란 장수 소배압이 10만의 정예 병력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2차 침략 때의 약속을 현종이 지키지 않은 데다 1013년에는 고려가 거란과의 국교를 끊고 송나라와 외교 관계를 다시 맺었기 때문이다. 이때 상원수 강감찬이 이끄는 고려군은 20만의 병력으로 거란군을 압도했다. 거란군은 1019년 정월 개경에 접근...
    시대 :
    1018년
    국가/대륙 :
    한국
  • 거란 요(遼), 契丹
    들어 반박하였다. 또한 송과의 교류 문제도 여진이 압록강 주변을 차지하고 있어 거란과의 교류를 방해했기 때문임을 거론하며 거란 침입의 명분에 조목조목 대응하였다. 이는 거란이 고려를 침입한 이유가 송과의 교류를 끊고 거란 자신들과의 교류로 대치하려는 의도를 서희가 간파하였기 때문이었다. 고려는 송과의...
    시대 :
    고려
    유형 :
    지명/고지명
    분야 :
    역사/고려시대사
  • 고려 태조는 거란을 적대시하여 942년에 요나라 태종이 보내온 낙타 50필을 만부교(萬夫橋) 아래에서 굶겨 죽이고 사신 30명을 유배보냈다. 광종은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여 광군사(光軍司)를 설치했다. 요나라 성종은 정국의 안정을 이룩한 후 송이 고려에게 거란을 협공하자고 제의한 것과 발해유민이 세운 정안국(定安...
    도서 다음백과 | 태그 세계사
  • 강동6주 江東六州
    국교단절과 국왕의 친조(親朝), 강동6주의 반환을 요구했다. 고려가 이에 응하지 않자 거란은 1010년(현종 1)과 1018년 2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입했다. 1010년에는 거란의 성종(聖宗)이 직접 40만 군을 이끌고 강조의 죄를 묻는다는 구실로 침입했으나, 고려와 거란 양측에 큰 피해만 입힌 채 끝났다. 1018년 침입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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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의 침입 상황도
거란 3차 침입
거란 1차 침입
거란 2차 침입 지도
거란의 3차 침입(1018년)
거란의 2차 침입(1010년)
거란의 1차 침입(993년)
거란의 1차 침입과 강동 6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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