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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갑신정변 甲申政變
    갑신정변(甲申政變)은 1884년(고종 21) 급진개화파가 청나라의 내정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외교권 확보와 조선의 개화를 목표로 일으킨 정변이다. 1884년 12월 4일(양력)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서재필 등 급진개화파가 청나라로부터의 독립과 조선의 개화를 목표로 일으킨 정변이었으나, 청나라의 군사 ...
    시대 :
    근대/개항기
    유형 :
    사건/사회운동
    분야 :
    역사/근대사
  • 급진 개화파의 삼일 천하, 갑신정변 甲申政變
    임오군란 2년 뒤인 1884년, 20~30대 젊은 급진 개화파가 근대 자주 국가 수립을 목표로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것이 김옥균, 박영효 등이 주도한 갑신정변이다. 급진 개화파는 일본의 지원을 받아 일단 정변에는 성공했지만, 청나라의 신속한 개입과 일본군의 철수로 개혁 구상은 ‘삼일 천하’로 끝났다.|배경 1882년 ...
    시대 :
    1884년
  • 갑신정변 (관련어 갑신 정변) Gapsin Coup, 甲申政変
    정리 필요갑신정변(甲申政變)은 1884년 12월 4일(음력 10월 17일)에 김옥균·박영효·서재필·서광범·홍영식 등 개화당파들이 청나라에 의존하는 척족 중심의 수구당을 몰아내고 개화정권을 수립하려 하였다가 청나라군의 개입으로 실패한 쿠데타 사건이다. 진압 후 갑신난 또는 갑신전란 등으로 불렸고 대한민국 임시...
    도서 위키백과
  • 갑신정변 갑신혁명
    개화당이 개화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일본의 지원을 받아 1884년 일으킨 정변 임오군란 이후 청의 간섭이 강화되자 개화당의 김옥균·박영효 등은 민씨일파 축출과 대원군의 석방 요구 및 청에 대한 조공 폐지 등 혁신 강령 14개조를 요구하며 일본의 힘을 빌려 우정국에서 정변을 일으킨다. 그러나 청나라의 간섭으로 ...
  • 갑신정변 갑신혁명, 甲申政變
    1884년 개화파가 일으킨 정변. 1882년 임오군란을 계기로 조선은 민씨정권의 친청수구정책으로 인해 청의 간섭을 받기 시작했다. 이에 개화파는 민씨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정변을 계획했다. 개화파는 일본의 후원을 업고 1884년 12월 4일 우정국 개국 축하연을 기회로 정변을 일으켜 군사권·재정권을 장악한 후 정강...
  • 박영효 (관련어 갑신정변) 애국의 길과 친일의 길
    가장 불행한 한국인 중 한 사람 박영효(朴泳孝, 1861~1939), 영광과 오욕으로 점철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쳤다. 그의 생애는 그대로 비운의 대한제국 말기를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세계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내일의 운명을 점칠 수 없었던 역사의 흐름에 따라 그의 일생도 내일을 짐작하지 못하고, 영광과 고뇌와 ...
    출생 :
    1861년
    사망 :
    1939년
  • 위정척사운동과 갑신정변 甲申政變
    우정국을 설치하는 등 개화를 실시하였다. 하지만 민씨 일파를 중심으로 친청세력이 개화파의 정책에 제동을 걸자,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은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키며 권력을 잡았다. 이들은 청에 대한 사대관계 폐지, 인민평등권 확립, 내각 중심 정치 실시, 재정의 호조 관할, 토지와 조세에 관한 지조법의...
    시대 :
    19세기 후반
  • 갑신정변 발발
    10월 17일, 김옥균 ・ 박영효 ・ 서재필 ・ 서광범 ・ 홍영식 등이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이들은 일본과 손잡고, 우정국 낙성식 축하연장에 불을 지른 것을 신호로 민씨 정권의 주요 인물들을 살해했다. 김옥균 등은 고종과 명성황후의 신변을 확보한 후 새 정부 수립을 선포하고 14개조 정강을 발표했다. 정강에는 문벌...
    시대 :
    1884년 10월 17일
    국가/대륙 :
    한국
  • 청나라 시대, 조선을 둘러싼 청국과 일본의 대립
    임오군란 청국과 프랑스가 한창 전쟁을 벌이고 있을 무렵인 1884년 12월 조선에서는 ‘갑신정변(甲申政變)’이 일어났다. 갑신정변을 설명하자면 먼저 1882년에 있었던 ‘임오군란(壬午軍亂)’부터 설명해야 할 것이다. 조선조 25대 철종은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종친인 이하응(李昰應)의 아들 이희(李熙)를 맞아들여...
  • 갑신정변의 결과
    와 1885년 1월 한성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에 따라 조선은 일본에 사의를 표명하고 10만 원의 배상금을 지불하고 일본 공사관 수축비를 부담하게 되었다. 한편 갑신정변의 실패로 한반도를 둘러싼 청과의 경쟁 관계에서 다시 불리한 처지에 처한 일본은 정세를 만회하기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전권 대사로 청국에 파견...
  • 갑신정변의 배경
    실학의 북학 사상을 계승한 개화파는 김옥균·홍영식·박영효·서광범·서재필 등 젊은 양반계급 지식인들을 핵심으로 하나의 정치 세력을 형성해 가며 정부의 개화 정책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임오군란을 계기로 민씨 정권의 친청 수구 정책은 날로 횡포를 더해갔고, 청은 군대를 주둔시키며 조선의 식민지 지배를 획책...
  • 갑신정변의 전개
    개화파는 12월 4일 우정국 개국 축하연에 참석한 민영익에게 부상을 입힌 뒤 국왕과 왕비를 경우궁으로 옮겨 50여 명의 개화파 군사력과 200여 명의 일본군으로 호위케 하고 수구파 우두머리를 처단했다. 이어 개화파들은 군사권과 재정권을 장악하고 정강을 제정·발표했다. 정변의 실패로 정강이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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