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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효 조선 말기의 문신·친일파한말의 정치가·개화사상가. 근대적 개혁을 추구한 갑신정변 및 갑오개혁의 주체로 참여했다. 당시 온건과 급진으로 나뉘어져 있었던 개화파에서 급진개화파에 속했으며다. 갑신정변 후 새 내각에서 전후영사 겸 우포장을 맡았지만 정변이 삼일천하로 끝나자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갑오개혁 때 김홍집 내각의 내무대신으...
- 출생 :
- 1861(철종 12), 경기 수원
- 사망 :
- 1939. 9. 21
- 국적 :
- 한말, 한국
- 본관 :
- 반남(潘南,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
- 자 :
- 자순(子純)
- 호 :
- 춘고(春皐), 현현거사(玄玄居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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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효 애국의 길과 친일의 길가장 불행한 한국인 중 한 사람 박영효(朴泳孝, 1861~1939), 영광과 오욕으로 점철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쳤다. 그의 생애는 그대로 비운의 대한제국 말기를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세계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내일의 운명을 점칠 수 없었던 역사의 흐름에 따라 그의 일생도 내일을 짐작하지 못하고, 영광과 고뇌와 ...
- 출생 :
- 1861년
- 사망 :
- 193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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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효 자순(子純), 朴泳孝일제강점기 내부대신, 후작, 일본제국의회 귀족원 칙선의원 등을 역임한 관료. 정치인, 친일반민족행위자. 개설 1861년 6월 12일 경기도 수원에서 출생했다. 본관은 반남(潘南), 초명은 박무량(朴無量), 자는 자순(子純), 호는 춘고(春皐), 필명은 현현거사(玄玄居士)이다. 일본에 망명했을 때 야마자키 에이하루[山崎...
- 시대 :
- 근대/일제강점기
- 출생 :
- 1861년(철종 12) 6월 12일
- 사망 :
- 1939년 9월 21일
- 경력 :
- 한성부판윤, 내부대신, 후작, 일본제국의회 귀족원 칙선의원
- 유형 :
- 인물
- 관련 사건 :
- 갑신정변, 갑오개혁, 박영효 쿠데타음모사건, 고종강제양위
- 직업 :
- 관료, 정치인, 친일반민족행위자
- 대표작 :
- 사화기략(使和記略)
- 성별 :
- 남
- 분야 :
- 역사/근대사
- 본관 :
- 반남(潘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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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효국왕폐위음모사건 朴泳孝國王廢位陰謀事件개설 갑오개혁 시기 내무대신으로 개혁을 이끌던 박영효(朴泳孝)는 궁중 호위병 교체 시도를 둘러싼 역모 혐의로 실각하고 1895년 7월 조선을 떠났다. 박영효는 1896년 5월 이후 일본에 체류하면서 일본에 있던 조선인 망명자들을 규합하고, 이들과 조선내 동조자들의 협력을 얻어 고종을 폐위하고 새로운 왕을 옹립...
- 시대 :
- 근대/개항기
- 발생 :
- 1898년 및 1900년
- 성격 :
- 역모사건
- 유형 :
- 사건
- 분야 :
- 역사/근대사
- 관련 인물/단체 :
- 박영효(朴泳孝), 의화군(義和君), 이규완(李圭完), 황철(黃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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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의 기원과 역사적 맥락 국기의 탄생, 태극기에 담긴 상징과 저항의 역사들제정을 둘러싼 의혹들 - 누가, 어떻게 국기를 만들었을까 태극기를 누가 만들었느냐에 대해 많은 사람이 궁금증을 지니고 있다. 이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박영효가 임오군란을 수습하기 위해 1882년 9월 일본에 가는 배 안에서 태극기를 만들었다는 ‘박영효 창안설’이다. 그러나 최근 여러 자료가 발굴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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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훈동 민씨 가옥 (구 부마도위박영효가옥)관훈동 30-1에 위치한 민씨 가옥은 조선 말기의 정치인이자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민영휘 일가가 거주한 곳이다. 민영휘는 일제강점기 판서, 한일은행 은행장 등을 역임한 관료로 막대한 부를 누렸으며 1895년 안국동으로부터 교동으로 이주하면서 관훈동 일대의 토지를 매입해 일가를 거주하게 했다. 1936년 기준으로...
- 위치 :
-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34길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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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太極旗그 제정에 관여하였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태극 · 팔괘도식의 국기제정문제가 조선정부에서 논의되었다는 것은 1882년 8월 9일 특명전권대신 겸 수신사 박영효(朴泳孝)가 메이지환(明治丸) 편으로 출항한 다음 영국인 선장과 상의하여 태극기 대 · 중 · 소 3본(本)을 만들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알 수 있다. 그...
- 유형 :
- 제도
- 분야 :
- 정치·법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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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효 무덤 터 朴泳孝 무덤 터[개설] 철종(哲宗)의 사위이며 개화파의 일원으로 갑신정변(甲申政變)의 주역이었던 박영효는 일제 강점기 중추원(中樞院) 고문과 귀족원(貴族院) 의원이 되었다. 박영효가 부산 해운대에 큰 별장을 만들고 지관들을 통해 찾은 명당이 다대포였다. 1939년 79세로 경성에서 사망하고 유언에 따라 1939년 9월 30일 영혜...
- 분야 :
- 역사
- 지역 :
- 부산광역시 사하구
출처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전 -
권동수 치영(致永), 權東壽구입차 러시아에 가는 길이라고 하며 경흥(慶興) 관문을 통과, 러시아와 비밀접촉을 가졌다고 한다. 1892년에는 갑신정변 이후 일본에 망명 중인 김옥균(金玉均) · 박영효(朴泳孝) 등을 암살할 목적으로, 이일직(李逸稙)과 아우 권재수(權在壽) 등과 함께 일본에 밀파되었다. 권동수는 친군장위영영관(親軍將衛營領官...
- 시대 :
- 근대
- 유형 :
- 인물/근현대 인물
- 분야 :
- 역사/근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