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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상 개화론자 通商開化論者
    중인 출신인 두 사람은 명문가 자제인 김홍집·김옥균·박영효·서재필 등을 설득하여 함께 신서를 읽으며 개화 사상을 형성해 나갔다.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이 되자 이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개화를 추진하면서 정치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나중에 이들은 청과 일본에 사절단을 파견하여 개화 문명을 배워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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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의 대외관계
    일본의 국세성장과 더불어 서양 문화를 수입하게 된 그들은 1811년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통신사의 입국를 거절했고 그후 통신사는 폐지되었다. 1876년 강화도조약을 계기로 일본의 군사적·경제적 침략이 다시 개시되었고, 조선은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에 직면하게 되면서 한·일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도서 다음백과 | 태그 조선
  • 왜관 倭館
    소실된 왜관(자성대 부근)을 두모포(豆毛浦)에 새로 지었다. 이후 1678년(숙종 4)에 초량(草粱)으로 옮긴 뒤 한말까지 계속되었다. 1876년(고종 13) 강화도조약에 따라 초량왜관을 거점으로 일본 공사관이 설치되고 거류지가 설치되어, 대소 일본상인들이 지역에 제한받지 않고 상업활동을 전개하면서 거류민과의 상업...
    도서 다음백과 | 태그 조선
  • 박규수 조선 말기의 문신·실학자
    및 중국을 왕래하는 사신·역관들이 전하는 새로운 사상을 강의하여, 세계의 대세를 살피도록 하고 개화사상을 계발시켰다. 1875년 9월 운양호사건으로 일본이 수교를 요구해오자 최익현(崔益鉉) 등의 척화(斥和) 주장을 물리치고 수교를 주장하여 강화도조약이 체결되도록 했다. 1876년 1월 수원유수로 있다가 죽었다...
    출생 :
    1807(순조 7)
    사망 :
    1876(고종 13)
    국적 :
    조선, 한국
    본관 :
    반남(潘南,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
  • 김옥균 고균, 金玉均
    유대치와 교류하다가 그의 소개로 김옥균을 알게 되었다. 1879년에는 김옥균의 주선으로 일본을 여행하며 신문물을 직접 살펴보기도 했다. 일본과 강화도조약이 체결되면서 문호가 개방되자 김옥균은 사회 각층의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아 ‘충의계(忠義契)’라는 비밀 조직을 만들었다. 그리고 국왕과 측근들을...
    출생 :
    1851년
    사망 :
    1894년
  • 최익현 조선 후기의 문신
    倡義討賊疏〉를 올려 의거의 심정을 피력했으며, 격문을 열읍(列邑)에 보내 호응을 촉구했다. 일본정부에 대한 문죄서인 〈기일본정부 奇日本政府〉에서는 강화도조약 이래 일본이 저지른 기만적 배신행위를 16조목에 걸쳐 열거하면서 조선과 일본, 나아가 동양 전체의 평화를 위해 하루 속히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출생 :
    1833(순조 33). 12. 5, 경기 포천
    사망 :
    1907. 1. 1
    국적 :
    한말, 한국
    본관 :
    경주(慶州)
    호 :
    면암(勉菴)
    자녀 :
    장남 : 최영조(崔永朝), 차남 : 최영학(崔永學), 삼남 : 최영복(崔永福)
    도서 다음백과 | 태그 학자
  • 조선 최고의 갑부, 변승업과 그 후손
    조부와 양부가 모두 의원인데, 변원규는 19세 되던 1855년에 역과에 장원으로 급제하면서 역관으로 나섰다. 조선은 1876년에 강화도조약을 맺으면서 청나라가 아닌 외국과 근대적인 조약을 맺기 시작했는데, 미국 · 영국 · 프랑스 등의 외국으로부터 조선을 지키려면 자체적으로 무력을 갖춰야 했다. 조선 정부는 구체...
    도서 조선의 중인들 | 태그 조선
  • 강화전적지
    전적지이다. 몽고와의 항쟁을 비롯하여 조선 인조 때 병자호란 및 정묘호란을 피했던 곳으로, 개화기에는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겪었으며,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은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서울 방위를 위한 중요한 국방 요지이며, 1977년 복원 및 보수작업을 마무리하여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참고문헌...
    위치 :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해안동로1366번길 18
  • 1876년~1880년, 1870년대 서세동점의 물결이 밀려오고, 조선이 개항하다
    일본이었다. 군함을 앞세운 미국의 힘에 밀려 개항했던 일본은 똑같은 방법으로 조선의 문을 열었다. 일본은 운요호 사건을 일으킨 후 불평등조약인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를 조선에 강제했다. 조선은 그렇게 일본의 힘에 밀려 개항하고, 이를 계기로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끌려들어 갔다. 한편 이 시기 유럽과 미국...
  • 고영희 자중(子中), 高永喜
    합병조약’ 체결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49년 한성에서 출생했다. 1867년(고종 4) 과거시험에 응시하여 역과에 합격하였다. 1876년 강화도조약이 체결되자 수신사로 파견된 김기수를 수행하여 일본 물정을 시찰하고 돌아왔다. 이때부터 친일 개화파의 한 사람으로 대일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
    시대 :
    근대/개항기 , 근대/일제강점기
    유형 :
    인물/근현대 인물
    분야 :
    정치·법제/정치
  • 쇄국정책 鎖國政策
    더욱 심화시켰다. 한편 일본은 마침 조선에서 대원군이 물러나고 고종의 친정이 시작된 틈을 타 1875년 운요 호[雲揚號] 사건을 도발하여 1876년에 강제로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를 체결했다. 이로써 쇄국정책은 종지부를 찍고 조선은 아무런 준비없이 문호를 개방, 세계자본주의 열강 앞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었다...
    도서 다음백과 | 태그 한국사 , 조선
  • 임시사료편찬회 사료조사편찬회, 臨時史料編纂會
    인쇄를 거쳐 9월 23일 『한일관계사료집』전 4권(총 739면, 100질)을 간행하고 업무를 종결하였다. 책의 내용은, 제1권은 삼국시대부터 강화도조약까지의 한일관계, 제2권은 강화도조약부터 한일합병까지, 제3권은 한일합병부터 1919년 2월까지 일본의 대한(對韓)정책, 제4권은 3 · 1운동 이후에 관한 사항을 수록하여...
    시대 :
    근대
    유형 :
    단체
    분야 :
    역사/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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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약)
강화도조약 묘사
▲ {강화도 조약 체결 장면}
강화도조약 관련 보고서
강화도 조약 체결 모습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 조약
강화도 조약(江華島條約)
1876년 1월 강화도 수호조약 강요 무력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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