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니움 시대, 로마 시대, 중세를 거치면서 복구·증축되었으며 지금도 그 잔해가 이 시를 에워싸고 있다. 15세기의 산미켈레 교회와 산안드레아 교회에는 마니에리스모 미술가로서 카발리에르 다르피노로 통용되는 주세페 체사리가 그린 그림들이 소장되어 있다. 농업, 모직물 제조업, 천연대리석 채석업 등이 주요경제...
조국을 떠나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는데, 당시에는 조각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 피렌체에서 당대의 주요한 이탈리아 마니에리스모 조각가인 잠볼로냐 밑에서 공부했다. 한동안 로마에서 살다가 그뒤 사보이의 공작인 샤를 엠마누엘 밑에서 일했으며, 1601년부터 프라하에서 황제 루돌프 2세의 궁정 조각가로 일했다. 가장...
초상화와 종교화로 가장 잘 알려졌으며 그의 양식은 초기 르네상스 양식과 성기 르네상스 양식, 초기 마니에리스모 양식의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초기 양식은 움직임과 섬세한 세부 묘사로 가득 차 있으며 15세기의 이탈리아 회화를 연상시킨다. 뒤에 그는 〈포초의 성모 Madonna del Pozzo〉(1508경, 피렌체...
1560. 11.3~1609. 7. 15 로마)와 그들의 사촌 로도비코(1555. 4. 21 세례받음~1619. 11. 3 볼로냐)인데 이들이 1582년 볼로냐에 세운 미술학교는 마니에리스모의 영향에서 벗어나 고전양식에 따른 전성기 르네상스의 전통을 되찾고 고전주의적 바로크 양식을 창조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연장자인 로도비코는 사촌...
찬장, 기타 표면에 이용되었으며, 사람의 귀를 연상시킨다 하여 아우리쿨라(귀 모양) 양식이라 이름지어졌다. 이 흐느적거리는 살과 같은 형태는 가끔 일그러진 가면으로 변형되는데 그러한 형태가 프랑크푸르트암마인의 마니에리스모 디자이너 프리드리히 운토이치의 〈새로운 장식 책 Neues Zieratenbuch〉에 나와...
피렌체에 있는 팔라초 메디치리카르디와 팔라초 스트로치의 코르틸레로, 모두 15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이다. 피티 궁전(1560)의 코르틸레는 피렌체의 마니에리스모 건축 가운데 가장 중요한 보기로 꼽힌다. 코르틸레는 로마에서 최고도로 발달했다. 로마의 순수한 르네상스식 코르틸레로서 가장 초기의 것은 도나토...
16세기 후반과 17세기초 로마에서 가장 인기 있는 풍경화가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숲을 그린 초기의 풍경화들은 양식면에서는 부분적으로 마니에리스모의 영향을 받았지만, 1600년 이후로는 독일 화가인 아담 엘스하이머의 영향을 받아 구도가 단순해졌다. 그의 말기 작품은 고전주의적 성격을 띠었다. 패널과 캔버스에...
추측된다. 이 초기 시절의 작품은 단 1점밖에 남아 있지 않다. 〈십자가에 못박히는 예수 Nailing to the Cross〉(1582)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평범한 마니에리스모 작품이다. 1598년 발렌시아로 간 그는 후안 데 리베라 대주교의 후원으로 커다란 화실을 마련했다. 이 시기에 그가 그린 그림, 특히 알헤메시 교회에...
구별하기가 어렵다. 현존하는 가장 중요한 작품은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최후의 심판 Last Judgment〉으로 인생무상을 표현하고 있으며 피렌체의 마니에리스모 양식과 플랑드르파의 영향을 모두 반영하고 있다. 쿠쟁은 또한 소묘의 독특한 화풍으로도 유명한데, 그것은 상징이 풍부한 〈역서 Livre de Fortune...
안드레아 팔라디오, 줄리오 로마노와 함께 이탈리아 마니에리스모 건축의 거장으로 꼽히며 바로크 양식을 예견했다. 볼로냐에서 공부한 뒤 1530년대에 로마로 가서 비트루비우스의 건축서에 실을 고대 건물 그림을 그렸다. 1541~43년 프랑스 퐁텐블로에 있는 프랑수아 1세의 궁정에서 18개월 동안 지냈으며 이때 파리...
17세기 로마의 주요건축가로 꼽히며 특히 극적이고 웅장한 설계로 유명하다. 펠레그리노 티발디의 북부 이탈리아 마니에리스모 전통을 로마에 도입한 뛰어난 건축가인 아버지 지롤라모 라이날디와 함께 일했다. 아버지가 죽은 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영향을 일부분 이어가면서도 나름대로 웅장한 기념비적 양식을...
1526~50년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로 메디치가(家)의 총애를 받은 피렌체의 마니에리스모 조각가이다.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았던 아버지 미켈레 디 비비아노 데 브란디니는 그를 금세공인으로 키웠지만 조각을 무척 좋아해서 조각가 조반니 프란체스코 루스티치 밑에서 일했다. 토스카나의 대공인, 메디치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