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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르족의 기원과 사회발전한 부분으로부터 전해 내려왔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 『다우르족연구』에 기재된 많은 문장은 모두 거란설을 주장하고 있다. 주요 논거로는 거란족의 역사 변천과 다우르족의 역사 전설이 일치한다는 점과 거란어와 다우르족어의 많은 부분이 비슷하고 생활방식도 비교적 근접하다는 점, 즉 거란족과 다우르족이 정주...
- 분류 :
- 만-퉁구스어족 민족 > 다우르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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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의 침략과 격퇴보내어 거란과 협상을 시작했다. 서희는 고려가 진정한 고구려의 후계자임을 강조하며, 양국간의 교류가 적은 것은 양국 사이에 있는 여진족 때문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거란으로부터 압록강 동쪽 280리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았다. 고려는 여진족을 몰아내고 이곳에 강동 6주라고 불리는 6개의 성을 쌓아 영토를 넓혔다...
- 시대 :
- 993년~1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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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구트족 고유 문자를 발명한 송나라의 숙적전쟁 포로들로 구성된 특수 부대인 ‘금생(擒生)’도 있었는데, 이들의 총 인원수는 10만이었다. 대개는 송과의 전투에서 생포한 한족 포로였고, 간혹 거란족이나 토번족도 있었다. 서하군에는 사람과 말이 모두 갑옷을 입은 중무장 기병, 즉 철기(鐵騎) 부대도 있었다. 서하인들은 이를 철요자(鐵鷂子)라 불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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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족의 기원과 사회발전고사(乌古斯) 등의 부락과 오손의 부락은 한층 더 융합되었다. 12세기에 7하 유역은 서요 정권(1128~1192년)에 의해 통치되었다. 지금까지도 카자흐족 가운데는 여전히 거란이라 부르는 부족이 남아 있다. 13세기에 몽골인이 중앙아시아를 정복하였고, 중앙아시아에 들어간 몽골인들은 후일 점차 돌궐화되었다. 몽골인...
- 분류 :
- 돌궐어족 민족 > 카자흐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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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 여직(女直), 女眞로 불렸으며, 10세기 초의 송나라 때 처음으로 여진이라 했고, 청나라 때에는 만주족이라 칭하였다. 연원 및 변천 1) 고려시대 여진족은 발해 멸망 이후 그 터에...말갈족의 흑수부(黑水部)를 여진으로 불렀던 것이다. 흑수말갈은 거란의 통치 아래 두만강 유역에서 함경남북도 지역으로 이동해 살면서 고려에 조공을...
- 유형 :
- 개념용어
- 분야 :
- 역사/고려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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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과 9성되었다. 고려는 이곳을 직접 통치하기로 결정하고 약 7만 호를 이주시켰다. 하지만 농민이 대부분이었던 이주민들은 새로운 지역에 쉽게 정착하지 못했다. 게다가 여진족의 침입이 계속되자 정착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고려는 거란의 위협이 상존한 상태에서 9성 방어에 과도한 힘을 기울일 수 없었다. 결국 매년 조공...
- 시대 :
- 1107년~112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