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 개항 開港
    2월 26일[양력] 마침내 조일 수호 조약[일명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미 여러 차례 일본의 통상 요구를 거절해 왔던 조선 정부도 결국 일본의 군사적 압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우선 부산항의 개항이 결정되었다. 부산항의 개항은 강화도 조약 제4관에 따른 것으로 그 전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제...
    분야 :
    역사
    지역 :
    부산광역시
  • 한성외국어학교 漢城外國語學校
    설립 목적 정부는 1876년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1882년부터는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와도 조약을 맺고 통상관계를 맺게 되자, 그 나라의 말과 문화를 아는 외교관 혹은 통역관의 양성기관이 필요하게 되었다. 1883년에 동문학(同文學, 일명 통변학교), 1886년에 육영공원(育英公院)이 설립되었고, 뒤이어 1891...
    시대 :
    근대
    유형 :
    단체
    분야 :
    교육
  • 통상 수교 거부 정책 通商修交拒否政策
    폈다. 그러나 조선에서 흥선 대원군이 물러나고 고종의 친정이 시작된 틈을 타 일본은 1875년 운요호 사건을 도발하여 1876년에 강제로 조일 수호 조규(강화도 조약)를 체결했다. 이로써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은 종지부를 찍고 조선은 아무런 준비 없이 문호를 개방, 세계 자본주의 열강 앞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었다...
    도서 다음백과 | 태그 조선
  • 영사 재판권 領事裁判權
    교섭할 권리를 가졌다. 근대 영토 주권의 개념이 성립되면서 영사의 역할이 축소되었다가 19세기에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다시 중요해졌다. 우리나라는 강화도 조약(1876)으로 개항을 하게 되면서 영사 재판권이 허용되었다. 이는 개항장을 사실상 조선의 법과 주권이 통하지 않는 치외법권 지역으로 만든 것이었다...
    도서 다음백과
  • 김기수 계지, 金綺秀
    본관은 연안. 자는 계지, 호는 창산. 아버지는 준연이다. 1875년(고종 12)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응교가 되었다. 1876년(고종 13) 강화도조약 체결 후 예조참의로서 수신사가 되어 일본에 다녀옴으로써 근대 대일교섭의 시초가 되었다. 해외문명 견문기의 첫 예가 되는 〈일동기유 日東記游〉는 과거의 통신사...
    출생 :
    한양, 1832(순조 32)
    사망 :
    미상
    국적 :
    조선, 한국
  • 신사유람단 紳士遊覽團
    1876년에는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한 이후 2차례에 걸쳐 수신사(修信使)를 파견했으나 그것은 외교적인 교섭에 불과한 것이었으며, 1880년 12월 근대문물을 수용하기 위한 기구로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을 설치한 후 서구문물의 조사를 위해 신사유람단을 파견했다. 1881년 2월 통리기무아문은 조준영(趙準永...
    도서 다음백과 | 태그 조선
  • 운요호사건
    우리나라가 계속되는 통상 요구를 거절하자 일본이 운요호를 한강으로 침투시켜 강화도 사병과 충돌하게 하였다. 이후 사건에 대한 사죄와 함께 통상을 요구하면서 강화도조약을 체결하였다.
  • 통리기무아문 統理機務衙門
    역사적 배경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개항한 뒤, 주로 대외관계의 변화에 대응한다는 필요성에서 신설된 것이나 대외관계만을 전담하는 기구는 아니었다. 이 아문이 설치되는 직접적인 계기나 설치 이유 또는 설치 경위를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는 사료는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배경을 찾을 수...
    시대 :
    근대
    성격 :
    관청
    유형 :
    제도
    시행일 :
    1880년(고종 17) 12월 21일
    폐지일 :
    1895년(고종 32) 3월
    분야 :
    역사/근대사
  • 이만도 관필(觀必), 李晩燾
    높았다. 또한 시강(侍講) 및 빈대(賓對) 때에 이만도가 상주하는 말을 고종이 모두 기꺼이 받아들였다고 한다. 1876년 일본대사 구로다[黑田淸隆]가 와서 강화도조약을 체결할 때 최익현(崔益鉉)이 반대 상소를 올리자,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한목소리로 공격을 하였다. 그 때 집의로서 탄핵문의 문구가 사리에 맞지...
    시대 :
    근대
    출생 :
    1842년(헌종 8)
    사망 :
    1910년
    경력 :
    사간원정언, 교리, 응교, 사간, 집의
    유형 :
    인물
    직업 :
    학자, 독립운동가
    성별 :
    분야 :
    역사/근대사
    본관 :
    진성(眞城)
  • 의방유취 醫方類聚
    이는 임진왜란 당시 왜장 가토[加藤]가 다른 문화재와 함께 약탈하여 일본으로 가져갔으며, 다른 보관본은 불에 타 없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에 일본인 의사 기타무라[喜多村直寬]가 〈의방유취〉 복간본(覆刊本) 266권 2질을 선물용으로 보내오기 전까지는 국내에서 구입할 수 없었다...
    도서 다음백과 | 태그 조선
  • 김기수 계지(季芝), 金綺秀
    김준연(金駿淵)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75년(고종 12)에 급제하여 홍문관부교리에 임명되고 1876년 홍문관응교에 임명되었다. 이듬해인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후 음력 2월 22일 통정 대부에 올랐으며, 예조 참의로 수신사에 임명되니 근대 대일 교섭의 첫 사절이 되었다. 사절 단원 76명을 인솔하고 4월 4일...
    시대 :
    근대
    유형 :
    인물/근현대 인물
    분야 :
    역사/근대사
  • 항일의병전쟁의 전개
    조선을 침략한 열강 가운데 조선에게 가장 큰 저항을 받은 세력은 일본이었다. 일본은 과거 왜구에서부터 조일전쟁, 강화도조약, 을미사변 등을 통해 조선인들에게 악의 축으로 인식되었다. 특히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항일의병은 독립군과 광복군으로 이어져 항일단체의...
    시대 :
    19세기 후반~20세기 초

멀티미디어8건

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약)
강화도조약 묘사
▲ {강화도 조약 체결 장면}
강화도조약 관련 보고서
강화도 조약 체결 모습
운요호 사건과 강화도 조약
강화도 조약(江華島條約)
1876년 1월 강화도 수호조약 강요 무력 시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