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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 1996.12.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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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 국가무형문화재 제109호 (화각장) |
요약 우리나라 고유의 목칠공예 장식기법의 하나. 나전칠기와 함께 전승되어 온 우리나라의 특색있는 공예의장이다. 투명한 쇠뿔을 종잇장처럼 얇게 편 뒤, 오색 안료를 사용하여 문양을 그리는 이면 채색방법이다. 주로 안방가구나 치레용품을 장식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 쇠뿔 표면의 광택이 살아있으면서도 채색이 벗겨지지 않는 장점이 있다.
나무 위에 쇠뿔[牛角]을 이용해 문양을 나타내는 우리나라 고유의 목칠공예 장식기법의 하나. 나전칠기와 함께 전승되어온 우리나라의 특색 있는 공예의장으로서, 투명한 쇠뿔을 종잇장처럼 얇게 편 다음 그 뒷면에 오색 안료를 사용하여 문양을 그리는 일종의 이면 채색방법이다. 우리나라 목공예의 특징은 울긋불긋한 채색보다 질박한 나뭇결을 그대로 살리는 것이지만, 화각공예는 목공예품에 밝고 고운 색채로 문양을 시문한 것이기 때문에 질박함을 숭상하는 사랑방 가구보다는 안방가구나 치레용품을 장식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
일반적으로 쇠뿔 표면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뒷면에 채색으로 장식하기 때문에 쇠뿔 표면의 광택이 살아 있으면서도 채색이 잘 벗겨지지 않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재료가 매우 귀하고 공정이 까다로워 일부 귀족층의 애장품이었다. 1996년 화각장을 중요무형문화재(지금의 국가무형문화재) 제109호로 지정하였으며 기능보유자에 이재만(李在萬)이 있다.
역사
우리나라에서 화각공예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당나라에서 대모의 뒷면에 그림을 그렸던 복채법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복채법은 고대 이집트에서 미라 관을 수정·호박·대모 등의 투명물질로 장식하던 것에서 유래되어 중국의 수·당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삼국사기〉 권13 잡지에 의하면, 진골들이 쓰던 상에 대모로 장식하는 것을 금지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대모공예는 왕족인 진골에만 국한하여 사용했던 고급 공예기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모는 우리나라에서는 희귀한 재료였기 때문에 발달하지 못했지만, 화각공예의 재료인 쇠뿔은 우리나라에서 흔한 재료였기 때문에 이른 시기부터 발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화각공예품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신라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보이는 바느질자[針尺]이며, 일본 쇼소인[正倉院]에 소장되어 있는 비파에서도 화각공예의 흔적이 발견된다. 고려시대의 공예품인 나전칠기 연주합 등에 부분적으로 복채기법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현존하는 유물들은 대부분 18세기 이후에 제작된 것들이다. 이것은 화각공예가 나전칠기와 마찬가지로 기후의 차가 심하고 습윤한 우리나라에서는 보존이 어려웠음을 뜻하는 것이다.
일제시대에는 이왕가미술품제작소를 세워 화각공예품의 생산과 그 기능의 전승을 도모했기 때문에 많은 작품들이 생산되었으며 오늘날까지 그 기능이 전승되고 있다(→ 이왕가미술관).
화각공예품은 주로 여성과 사대부들의 호사용품으로 사용되었는데, 안방가구로는 화각3층장·버선장·실함 등이 있으며, 침선도구로는 반짇고리·바느질자·실패·침통 등이 있고, 화장도구로는 경대·얼레빗·참빗이 있다. 사대부의 기호품이던 붓두껍·벼루집·필통·부채살·장도칼 등에도 사용되었다. 대략 19세기 작품으로 보이는 화각공예품의 문양은 일반 공예품과 마찬가지로 십장생이 가장 많았으며, 이밖에 수복을 기원하는 문자나 용봉·기린·봉황·사군자·화초 등이 있다. 이들 문양은 대개 치기가 있거나 익살과 해학이 넘쳐서 민속공예적인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색채는 백색·적색·황색·녹색·자색 등이 많고, 때로는 흑색과 금은박이 쓰인 예도 있다.
화각공예에 사용된 색채들은 원색이 많은 것 같지만 백색에 가까운 미색·연분홍색·수박색·연두색·배추색에 이르기까지 미묘한 색깔들도 적지 않다.
재료 및 기법
가장 중요한 재료는 고추뿔이라고 불리는 쇠뿔로서, 주로 젊은 수소의 뿔인데 황해도에서 자란 황소뿔을 최상으로 여겼다. 즉 암소뿔은 가늘고 구부러지기 때문에 사용하기 어려운 데 비해 황소뿔은 통이 굵고 곧기 때문에 화각의 재료로 적당하다.
고추뿔 중에서도 어린 소의 뿔은 흰색 점이 있어서 안 되고, 늙은 소는 검은색의 심대가 있어 투명하지 않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 화각공예의 바탕나무[白骨]로는 옹이가 없고 완전히 잘 마른 홍송(또는 赤松)을 비롯해 오동나무·피나무·은행나무·호도나무 등을 사용했다.
제작과정에 관해서는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林園經濟志〉에 "쇠뿔을 종이 판대기처럼 얇게 만들어…… 오색의 염료로 뿔을 염색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제작과정은 우선 쇠뿔을 잘라낸 뒤 물에 삶고 뿔 안쪽에 붙은 두꺼운 연골을 저며낸 뒤 지져서 편평하게 편다. 이러한 쇠뿔 판대기를 앞뒤로 닦아서 얇게 만들고 광을 내면 투명하게 된다. 이 투명판을 필요한 크기로 마름질한 다음 아교풀에 갠 채색 안료로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린 화각 판대기를 이미 마련된 목공품 바탕에 접착제로 붙이면 그림이 목공품 표면에 투시되어 드러나게 된다. 화각을 붙이고 남은 백골부분은 식물성 기름으로 간단히 칠을 하고, 화각부분에 광택을 내기 위해서 사슴가죽[鹿皮]으로 문지른다. 이와 같이 화각공예는 다양한 재료로 여러 공정을 거쳐 제작되기 때문에 많이 생산된 공예품은 아니었으나 향토색 짙은 민속공예품으로서 조선 후기에 제작된 것이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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