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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각공예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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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화각공예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당나라에서 대모의 뒷면에 그림을 그렸던 복채법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복채법은 고대 이집트에서 미라 관을 수정·호박·대모 등의 투명물질로 장식하던 것에서 유래되어 중국의 수·당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삼국사기〉 권13 잡지에 의하면, 진골들이 쓰던 상에 대모로 장식하는 것을 금지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대모공예는 왕족인 진골에만 국한하여 사용했던 고급 공예기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모는 우리나라에서는 희귀한 재료였기 때문에 발달하지 못했지만, 화각공예의 재료인 쇠뿔은 우리나라에서 흔한 재료였기 때문에 이른 시기부터 발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화각공예품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신라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보이는 바느질자[針尺]이며, 일본 쇼소인[正倉院]에 소장되어 있는 비파에서도 화각공예의 흔적이 발견된다. 고려시대의 공예품인 나전칠기 연주합 등에 부분적으로 복채기법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현존하는 유물들은 대부분 18세기 이후에 제작된 것들이다. 이것은 화각공예가 나전칠기와 마찬가지로 기후의 차가 심하고 습윤한 우리나라에서는 보존이 어려웠음을 뜻하는 것이다.

일제시대에는 이왕가미술품제작소를 세워 화각공예품의 생산과 그 기능의 전승을 도모했기 때문에 많은 작품들이 생산되었으며 오늘날까지 그 기능이 전승되고 있다(→ 이왕가미술관).

화각공예품은 주로 여성과 사대부들의 호사용품으로 사용되었는데, 안방가구로는 화각3층장·버선장·실함 등이 있으며, 침선도구로는 반짇고리·바느질자·실패·침통 등이 있고, 화장도구로는 경대·얼레빗·참빗이 있다. 사대부의 기호품이던 붓두껍·벼루집·필통·부채살·장도칼 등에도 사용되었다. 대략 19세기 작품으로 보이는 화각공예품의 문양은 일반 공예품과 마찬가지로 십장생이 가장 많았으며, 이밖에 수복을 기원하는 문자나 용봉·기린·봉황·사군자·화초 등이 있다. 이들 문양은 대개 치기가 있거나 익살과 해학이 넘쳐서 민속공예적인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색채는 백색·적색·황색·녹색·자색 등이 많고, 때로는 흑색과 금은박이 쓰인 예도 있다.

화각공예에 사용된 색채들은 원색이 많은 것 같지만 백색에 가까운 미색·연분홍색·수박색·연두색·배추색에 이르기까지 미묘한 색깔들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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