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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 작품의 텍스트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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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호메로스의 텍스트는 얼마나 정확한 것인가(원문 비평). 그 정확성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는 2편의 서사시가 실제로 '확정'된 연대가 언제인가 하는 것이다.

구전은 항상 어느 정도는 유동적이기 때문에, 텍스트가 확정된다는 것은 권위 있는 문자 형태로 변형된 것을 의미한다. 알파벳 표기체계가 그리스에 도입된 것은 BC 9세기 또는 BC 8세기초였다(그리스 문자). 미케네 문명이 붕괴되면서 선문자 B(각 기호가 대체로 하나의 음절을 나타내는 표기체계)가 사라진 뒤, 알파벳 표기체계가 도입될 때까지는 200~300년의 공백이 있었다.

그동안 그리스에는 문자가 없었던 것 같고, 구전 서사시는 대부분 이 공백기간에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 된 알파벳 비문은 BC 730년경의 것인데, 그중 일부에는 6보격 시행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호메로스가 BC 750년 이후에 〈일리아스〉를 창작했다면, 그는 아마 문자를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그가 문자의 도움을 받았다고 믿는다.

반면에 다른 학자들은 그가 끝내 문자를 배우지는 못했지만 문자를 읽고 쓰는 능력은 구송의 창조성과는 대개 결부되지 않기 때문에, 글을 아는 조수에게 시를 받아쓰게 했을지도 모른다고 믿는다. 또다른 학자들은 적어도 BC 7세기 중엽에 엄밀한 의미의 '문학'이 아르킬로코스의 시에 나타날 때까지 거의 100년 동안, 호메로스의 시는 구전으로 비교적 정확하게 보존되었을 거라고 믿고 있다. 이 3가지 가설에는 각각 반대 의견이 있지만, 문자 사용은 어쨌든 보조적이고, 호메로스가 대개는 전통적인 구송시인으로 처신했다는 점에는 대체로 동의할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호메로스의 시에 나타난 미묘한 효과와 상호 참조로 미루어볼 때 그가 적어도 글로 쓴 원문을 참고할 능력은 갖추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의심스럽다. 평범한 구송시인이라 할지라도, 이 점에서는 글에 익숙한 사람이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메리다이와 음유시인(이들은 더이상 창조적이 아니었고, 리라도 더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었음)으로 알려진 직업적 암송가들은 늦어도 BC 7세기 후반부터는 서사시의 텍스트를 부분적으로 이용했을 것이다.

적어도 이것만은 사실로 인정할 수 있다. 최초의 '완성판'은 BC 6세기에 아테네에서 4년마다 1번씩 열린 판아테나이아 대축제에서 서사시 경연대회의 기준으로 확립된 판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텍스트를 항구적으로 확정하지 못했고, 그때부터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주기적으로 왜곡된 뒤 점점 더 효과적으로 확정되는 과정을 되풀이했다.

가장 중요한 확정화는 BC 5세기에 아테네의 출판업이 크게 성장한 뒤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널리 보급된 것과 BC 4세기 이후에 도서관이 급속도로 늘어난 것을 제외하면, BC 2세기에 알렉산드리아 학파에 속하는 사모트라케의 아리스타르코스가 추진한 비평 작업, 그보다 훨씬 뒤인 중세의 비잔틴 세계에서 그리스·로마 학문이 낳은 최고의 성과들을 통합해 정확한 필사본을 널리 보급한 결과였다.

그후로는 두 작품에 추가된 부분이 거의 없었지만, 오래지 않아 주요한 창작 행위가 이루어졌다. 〈일리아스〉 제10권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야간 원정, 그리고 그결과인 트로이 첩자 돌론의 체포, 〈오디세이아〉 제11권에 나오는 지하 세계의 장면들 가운데 일부, 〈오디세이아〉 제23권 296행(아리스타르코스는 이 행을 본디 텍스트의 결말로 보았음)부터 끝까지의 대부분은 구조나 언어, 문체의 견지에서 볼 때, 나중에 창작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큰 부분들이다.

중간 규모의 다듬기 작업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은 제쳐놓더라도,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모든 구송시가 갖고 있는 사소한 모순들을 보여준다.

때로는 작가가 전통적 재료를 대규모 구조 속에 융합시킨 것이 빤히 들여다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압도적인 인상은 강력한 통일성이다.

〈일리아스〉

오랫동안 계속된 트로이 전쟁 전반을 농축했을 뿐만 아니라, 온갖 형태의 모순, 무모하고 탐욕스러운 자만심, 웅장하지만 동물적인 힘, 둔감하지만 궁극적인 인간애 속에서 영웅의 전형을 탐구한 작품이기도 하다(영웅시). 사실 이 시는 〈일리아스〉의 첫부분에 선언되어 있듯이, 가장 위대한 전사 아킬레우스의 분노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후 수천 행에 걸쳐 아킬레우스는 부하인 미르미돈족 틈에서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 그의 소망이 이루어지리라는 제우스의 약속, 즉 트로이인들이 아카이아의 배들을 불태울 것이며, 아가멤논 왕은 그에게 전쟁터로 돌아와 달라고 애원하지 않을 수 없게 되리라는 약속을 기다리며, 눈에 보이지 않고 언급되지도 않는 존재로 남아 있다. 말다툼이 일어난 제1권부터 아킬레우스가 중대한 양보를 하여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그 대신 싸우는 것을 허락하는 제16권까지, 시의 대부분은 길지만 미묘하게 다른 전투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일화들과 군사 전략이 조심스럽게 섞여 있다. 분견대의 목록, 파리스와 메넬라오스 및 아이아스와 헥토르의 결투, 헬레네가 아카이아 군주들의 신원을 확인하는 장면, 아가멤논의 부대 사열, 디오메데스의 승리, 헥토르가 트로이에서 아내 안드로마케를 만나는 장면, 아카이아 방벽 축조, 아킬레우스에게 사절을 보냈지만 실패하는 장면, 야간 원정, 헤라가 제우스를 유혹하고 그후 포세이돈이 아카이아인들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장면 등이 그것이다.

시가 2/3 정도 진행되었을 때 파트로클로스가 죽음으로써 아킬레우스는 싸움터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그가 싸움터로 되돌아간 것은 우선 파트로클로스의 시체가 회수되고, 아킬레우스를 위해 신성한 새 갑옷이 만들어지고,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가 정식으로 화해한 뒤였다. 제22권에서 그는 판단력을 잃은 헥토르를 죽인다.

이어서 그는 파트로클로스를 위한 장례식 겸 경기대회를 벌여, 영웅의 지위를 더욱 강화한다. 그리고 마지막 권에서 아킬레우스는 신들의 강요로 헥토르의 시체를 프리아모스 왕에게 돌려줌으로써, 문화적인 가치관과 그 자신의 관대함을 되찾는다.

〈오디세이아〉

표현이 〈일리아스〉만큼 활기차거나 행동이 힘차게 진행되지 못하는 경향이 있지만, 〈일리아스〉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조화로운 구조를 보여준다.

이 작품의 주요 요소는 다음과 같다. 이타카에 있는 페넬로페와 젊은 텔레마코스는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체념하고, 페넬로페에게 구혼하는 거만한 구혼자들 앞에서 무력해진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 소식을 알기 위해 몰래 펠로폰네소스로 가서, 네스토르와 메넬라오스 및 헬레네를 만난다.

오디세우스는 칼립소의 섬에서 페니키아인들의 섬으로 위험한 항해를 하고, 그곳에서 트로이를 떠난 뒤에 겪은 모험을 이야기한다(제9~12권). 시가 절반쯤 진행되었을 때 오디세우스는 이타카로 돌아와 교묘히 변장을 하고, 충직한 돼지치기인 에우마이오스와 텔레마코스에게만 자신을 드러낸다. 이들은 구혼자들을 처치하기 위해 복잡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잔인하게 실천한다. 마지막으로 충실한 아내 페넬로페가 그를 알아본다.

호메로스의 영향은 2편의 서사시를 이루고 있는 가장 두드러진 형식적 구성 요소에 가장 강하게 작용한 것 같다.

신들이 인간사에 참여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 쾌활함이나 엄격함이나 보편성을 준다. 이것은 오랫동안 영웅 서사시 전통의 일부를 이루었다. 그러나 〈일리아스〉에는 신들의 집회가 자주 화려하게 등장하고, 〈오디세이아〉에서는 오디세우스와 아테나 여신 사이에 유난히 개인적이고 양면적인 관계가 이루어지는데, 이것은 아마 작가의 취향과 능력을 반영하고 있을 것이다. 전투의 다면성, 즉 수많은 형태의 죽음을 묘사하는 애매모호한 사실주의는 호메로스의 선배 시인들이 발달시킨 것이 분명하지만, 그 전에는 결코 그처럼 강력하고 복잡한 효과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확대된 직유법은 직접 관련이 있는 비유 시점을 뛰어넘어 전혀 다른 세계의 이미지를 얼마 동안 갈망하듯 전개한다. 완전히 이질적이고 평화로운 당시의 세계를 설명하는 이런 이미지는 불필요한 침입처럼 여겨지지만, 주인공의 행동이 초래한 긴장을 완화시킨다. 이런 직유법은 작가의 뜻에 따라 결정된다. 적어도 그런 직유법을 어느 위치에 집어넣고 얼마나 많이 사용할 것인지는 작가에게 달려 있다.

그러나 이런 개괄적인 통찰을 넘어서서, 작가가 특별히 이바지한 부분을 고립시키려는 시도는 자멸 행위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그런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전통과 작가의 의도,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 신처럼 뛰어나거나 영웅적인 면과 지극히 인간적인 면, 상투적 문체의 딱딱한 불변성과 화려한 개인적 상상력의 유연한 자연스러움이 거의 초자연적으로 합류하고, 따라서 결코 해부할 수 없는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호메로스'는 무엇보다도 이런 융합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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