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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가 주로 활동한 지역에 대해서만은 근대 학자들도 고대의 자료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고대인들이 제공한 정보 가운데 가장 유망한 것은 호메리다이, 즉 호메로스의 후예들이 이오니아의 키오스 섬에 살았다는 것이다. 물론 시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이오니아 방언은 서사시의 전통적 관례일 뿐이고 호메로스도 그 이유 때문에 이오니아 방언을 채택했다는 것도 이론적으로는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일리아스〉에 언급되어 있는 몇몇 지역적 환경은 이 시의 주요 저자가 에게 해 동부지역에서 살았음을 암시한다.
예를 들어 트로이 평원에서 사모트라케 섬을 보았을 때 그 사이에 있는 임브로스 섬 너머로 사모트라케 섬의 봉우리가 살짝 보이는 것, 에페소스 근처의 카이스터 강 어귀에 사는 새들, 이카리아 섬 앞바다의 폭풍과 트라키아에서 불어오는 북동풍이 그것이다.
주로 그리스 서부를 무대로 한 〈오디세이아〉에는 에게 해 동부지역의 색채가 희미하다. 그러나 이 시에서 이타카의 위치가 애매한 것은 그리스 세계의 반대쪽 끝에서 얻은 자료를 이오니아에 사는 시인이 공들여 다듬었다는 생각과 모순되지 않는다.
널리 인정되고 있는 바와 같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과연 동일 저자의 작품인지도 의심스럽다. 이런 의구심은 고대에 이미 시작되었고, 장르의 차이(〈일리아스〉는 전쟁을 주제로 한 영웅시이고, 〈오디세이아〉는 악한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으며 환상적인 경우가 많음)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휘의 미묘한 차이가 그런 의심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오디세이아〉를 호메로스가 노년에 쓴 작품으로 보았는데, 이런 견해도 결코 터무니없는 생각은 아니다. 그러나 두 작품 가운데 〈일리아스〉가 보다 앞선 작품이라면(〈일리아스〉의 구조가 보다 단순하고, 〈오디세이아〉에 비교적 후기의 언어 형태가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것은 충분히 있을 법한 일로 여겨짐), 〈오디세이아〉는 〈일리아스〉의 이미지를 본떠서 창조될 수 있었을 것이고, 일단 불멸의 역사적 가치를 지닌 방대한 작품이 본보기로 주어졌다면, 그것을 의식적으로 보완하는 작품이 창조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경우, 두 작품의 유사점은 부분적으로는 두 작품 뒤에 숨어 있는 영웅시의 전통이 일치하는 탓으로 돌릴 수 있다. 가능성은 여러 가지이나 적어도 오늘날에는 '상층 비평'과 옛날의 '호메로스 문제'의 미심쩍음을 피할 수 있다. 호메로스라는 이름의 대시인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그는 이오니아인이고, 실질적으로 〈일리아스〉의 저자이며, 그가 〈오디세이아〉를 직접 썼든 아니든지 간에 적어도 〈오디세이아〉에 영감을 주었다고 결론짓는 것은 합리적이다.
호메로스에 대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점, 즉 그가 오랜 옛날부터 키타라나 리라의 반주에 맞추어 시를 노래한 가수들이 거의 사라질 무렵에 살았던 '구송시인'이었고, 트로이 전쟁을 주로 다룬 방대한 영웅 서사시를 글로 쓰지 않고 말로 발전시켰다(그리스어). 이 작품의 내적 단서는 호메로스가 언제 살았는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의 시어는 말로는 결코 정확히 재현할 수 없는 인위적인 혼합물인데, 그 일부 요소는 2편의 서사시가 미케네 시대 이후(BC 1100년경의 청동기시대말 이후)에 창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오니아에 최초의 그리스 식민지가 세워진 BC 1000년경보다도 훨씬 나중에 창작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사실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인접한 단모음들이 함께 뒤섞이고 반모음인 디감마(초기 그리스 문자의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이것이 호메로스가 살았던 시간대의 상한선이라면, 그 하한선을 결정해주는 요소는 진정한 정관사의 발달이다. 진정한 정관사의 등장은 2편의 서사시가 BC 7세기 중엽과 말기 이전에 제작되었음을 나타낸다. 호메로스의 시는 문체나 운율로 볼 때 헤시오도스보다 앞선 시기의 작품인 듯한데, 학자들은 헤시오도스의 시를 BC 700년 직후의 작품으로 보고 있다.
이보다 좀더 명확한 또 하나의 판단 기준을 제공하는 것은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물품과 관습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시에 언급되어 있는 이런 물품과 관습 가운데, 아테네 사람들이 나중에 추가한 것으로 보이는 한두 가지를 빼고는 어떤 것도 BC 700년 이후의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한편 〈오디세이아〉에서 페니키아인들이 무역업자 역할을 맡고 있는 것과 그밖의 한두 가지 현상으로 미루어볼 때, 〈오디세이아〉의 창작 연대(적어도 관련이 있는 문맥의 창작 연대)는 BC 900년 이후임을 알 수 있다.
〈일리아스〉의 몇 구절은 밀집 대형으로 싸우는 새로운 전투 형태를 암시하고 있는데, 이런 전투 형태가 등장한 것은 BC 750년 이후 보병(장갑 보병)을 위한 특수한 갑옷이 발달한 결과였다. 장식적인 모티프로 고르곤 가면을 언급한 것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두 편의 시에 전통적 요소와 예스러운 요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고, 언어와 물질적 배경은 여러 시대에 생겨난 이질적인 요소들의 혼합물이다. 그러나 이 방대한 서사시들(이전에 제작된 그보다 훨씬 짧은 서사시들과는 달리)의 창작시기는 BC 9세기 또는 8세기이며, 몇몇 특징은 BC 8세기 쪽에 더 기울어져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오디세이아〉는 BC 8세기말에 가까운 작품이고, 〈일리아스〉는 BC 8세기 중엽에 더 가까운 작품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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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호메로스에 대한 근대 자료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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