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민족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은 과거 여러 시기에 걸쳐 중동과 아프리카로부터 지중해를 건너오거나 중앙 아시아와 북유럽으로부터 유럽을 가로질러 이주해와 영구적으로 정착한 다양한 이민들의 후손이다.
이러한 이주 외에도 수세기에 걸쳐 수많은 전쟁과 장기간의 이민족 점령을 겪었으며, 특히 20세기에는 다른 대륙에서 유럽으로 몰려드는 이민들의 주요 목적지가 됨으로써 더욱 다양한 인종들이 모이게 되었다.
언어
국어인 프랑스어는 전국 어디에서나 쓰고 가르친다. 농촌지역에서는 여러 가지 방언이 널리 쓰인다. 동부와 북부에서는 독일어와 관련 있는 알자스어와 플랑드르어(네덜란드어)가 쓰이며, 남부에서는 라틴어의 영향을 받은 프로방스어·코르시카어·카탈루냐어가 쓰인다. 영국 서부의 일부 지역(특히 웨일스)에서 쓰이는 언어와 유사한 켈트계 언어인 브르타뉴어와 바스크어는 고유한 언어이다.
종교
전체국민의 3/4이 로마 가톨릭교도이지만 규칙적으로 성당에 다니는 신도는 소수에 불과하다. 그중에서 중산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예배에 참석한다. 약 10%로 추정되는 이슬람교도는 유럽국가 중 가장 많은 비중을 나타내고, 인구의 약 3%를 차지하는 개신교도는 여러 종파로 갈라져 있다. 그 외에 유대교도 일부와 노동자층과 청소년층이 주인 무신론자들이 있다.
인구
1801년까지만 해도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로서 유럽 대륙 전체인구의 1/6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인구증가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낮아졌으며, 1911년에 4,000만 명이던 인구가 1950년대까지도 늘지 않았다. 프랑스 혁명전쟁, 제1제국 전쟁, 프랑스-프로이센 전쟁(1870~71), 제1차 세계대전(1914~18), 제2차 세계대전(1939~45) 등 거듭된 전쟁으로 인구성장이 억제되었다. 1938년부터 프랑스는 인구감소를 막기 위한 조처를 취했다.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에게 수당과 그밖의 물질적인 혜택을 주기 위한 계획들의 입법화가 추진되었다.
그 결과 출생률이 증가하기 시작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까지 그 추세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1940년대 말부터 서서히 감소하기 시작한 출생률은 1974년경부터 현저하게 감소하여 1980년대까지 1/3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인구의 장기적인 현상유지가 어려운 선에 이르렀다. 출생률의 감소에는 많은 요인이 작용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피임약의 발명이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소가족을 선호해 아이갖기를 기피한 전후 프랑스인의 태도 변화였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출산과 육아는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사회적 의제로 삼아 꾸준한 복지와 보육 정책을 통해 1994년 1.66명이던 출산율이 2014년 2.08명까지 높아졌다. 인구는 2024년 기준 6,602만 2,449명이고, 인구밀도는 119명/㎢이다. 15세 이하 인구는 전체 인구의 18%이다. 국민 대부분인 82%가 도시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한편, 다른 인접국들과 달리 프랑스는 국제 이민의 주요 공급국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17세기에는 종교적인 박해 때문에 40만 명이 넘는 위그노 난민들이 프랑스를 탈출하여 주로 프로이센·영국·네덜란드·아메리카로 피난 갔다. 또한 17세기에 이민도 시작되었는데 비교적 소수였던 이민이 처음에는 북아메리카의 캐나다 동부(퀘벡)와 루이지애나에 정착했으며, 후에는 프랑스 식민지의 일부가 된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도 정착했다. 인구의 국외 이동은 비교적 적었던 반면 외국인의 국내 이주는 19세기 중반부터 상당히 활발했다.
1850~1914년에 약 430만 명의 외국인이 프랑스에 들어왔으며, 제1·2차 세계대전 사이에는 총인구의 6%에 달하는 300만 명 가량의 이민이 들어왔다. 프랑스는 20세기초까지도 유럽에서 이민들에게 가장 개방적인 나라였으나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아프리카인을 배척하는 경향이 높아졌다.
19세기초 이래 낮은 출생률로 인해 인구의 노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출생률이 증가하고 외국에서 젊은 근로자층 이민들이 들어와 인구의 전반적인 노령화가 어느 정도 억제되었지만, 1970년대부터의 출생률 감소는 또다시 노령화를 가속시켰다.
프랑스의 인구구조에서 또다른 특징은 전 연령층에서 남자보다 여자가 많고 노년층에서 특히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남녀 분포의 불균형은 전쟁과 선천적인 평균 수명의 차이 때문이다. 프랑스의 여성은 출생시 평균 수명이 세계 최고 수준인 반면 남성의 평균수명은 훨씬 낮다.
인구밀도가 특히 낮은 곳으로는 마시프상트랄, 남부 알프스, 피레네 산맥, 코르시카와 같은 산악지역을 꼽을 수 있으며, 저지 농촌지대 가운데도 파리 분지의 동부와 남부 및 아키텐의 대부분 지역에는 주민이 적다(인구분포). 인구가 가장 적은 4대지역인 코르시카·리무쟁·프랑슈콩테·오베르뉴의 면적은 전국토의 12%에 해당하지만 인구는 총인구의 6%에 불과하다.
반면 가장 인구가 많은 4대지역인 일드프랑스(파리 지방)·론알프·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노르파드칼레에는 총인구의 40% 이상이 몰려있는데 전국토에서 차지하는 면적은 18% 정도이다. 18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1세기 남짓한 기간에 농촌인구는 1/3 이상이 감소했다. 1980년대에는 인구의 3/4이 도시민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농촌 인구의 감소를 촉진한 것은 농업의 현대화였다. 영농기계화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남으로써 농촌인구가 노령화되고 그만큼 출산율도 떨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후 30년 동안 도시인구는 최소한 1,600만 명이 증가한 것으로 추산되었다. 도시 성장에 따른 교외주택화는 미국이나 영국보다 늦은 시기인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일어났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파리의 외곽 교외 인구가 일드프랑스 지역 총인구의 39%를 차지하게 됨으로써 감소하는 내곽 교외의 인구와 맞먹게 되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