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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이탈리아 남동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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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4,033,028명 (2018 추계) |
면적 | 19,540.9㎢ |
대륙 | 유럽 |
국가 | 이탈리아 |
요약
이탈리아 남동부에 있는 지방.
Apulia라고도 함.
북서쪽의 포르토레 강에서 살렌티노 반도(이탈리아의 '뒷굽'에 해당함) 끝에 있는 산타마리아디레우카 곶까지 뻗어 있으며, 포자·바리·타란토·브린디시·레체 주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지방을 세 부분으로 나누었을 때 북부에는 풀리아 고원을 중심으로 양쪽에 석회암 단층지괴인 가르가노 곶(이탈리아 반도의 '박차'에 해당됨)과 아펜니노나폴레타노 산맥(서쪽)이 있다.
가운데 부분은 야트막한 무르제 고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고원의 서쪽은 움푹 꺼진 저지대인 '포사 프레무르자나'와 맞닿아 있으며, 동쪽으로 갈수록 차츰 고도가 낮아져 아드리아 해 연안의 좁은 해안 평야까지 완만한 비탈을 이루고 있다. 가장 남쪽에 있는 살렌티노 반도는 레체·타란토·브린디시 주들의 저지대, 그리고 타란토 동쪽과 레체 남쪽의 나지막한 고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풀리아에 가장 많은 암석은 석회암이지만, 해안은 석회암이 거의 없으며 대체로 고도가 낮고 모래로 덮여 있다. 북부의 포르토레 강과 오판토 강이 유일한 강이며 샘은 해안선과 가까운 바다 밑에서 솟아나오는 것을 비롯하여 수없이 많다.
넓은 지역을 덮고 있는 지표수가 없기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알려진 풀리아 송수로(1906~39)를 건설하여, 아펜니노 산맥의 서쪽 비탈로 흘러내리는 셀레 강에서 물을 끌어다가 이 지역에 공급하고 있다.
고대 풀리아 지역과 고대 칼라브리아 지역의 일부로 이루어진 풀리아는 중세 초기에 고트족, 롬바르드족,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호엔슈타우펜 왕가에 속하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들의 지배를 받을 때 가장 큰 영화를 누렸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인 프리드리히 2세는 이곳을 무척 좋아했으며,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과 궁전들은 그당시 누렸던 번영을 말해주고 있다. 그후 오랜 쇠퇴기가 시작되었고, 멀리 떨어져 있는 통치자들(프랑스, 스페인, 오스트리아, 나폴리, 부르봉 왕가 등)이 이 지역을 소홀히 했을 뿐만 아니라 아랍 노예들이 해안 지방을 자주 습격하고 약탈하여 더욱 몰락해갔다. 1860년에 풀리아는 이탈리아 왕국의 일부로 포함되었다.
풀리아는 대체로 농업지역이다. 풀리아 고원과 비교적 비옥한 다른 고원지방에서는 밀과 귀리가 재배되고, 남부지방에서는 올리브·포도·아몬드·무화과·채소가 재배된다. 잎담배는 레체 평야의 특산품이다. 이탈리아 포도주 중에서 가장 알코올 도수가 높은 풀리아 포도주는 알코올 성분이 적은 음료들을 강화하는 데 쓴다.
많은 항구에서 어업이 이루어지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가르가노 곶에 있는 항구들과 바를레타·모노폴리·타란토가 중요한 어항이다. 지금까지도 유목생활을 하는 양치기의 중요성은 경작지가 늘어나면서 많이 줄어들었다. 포자 근처의 마르게리타디사보이아에서는 바닷물로 소금을 만들고, 가르가노에서는 보크사이트를 채광한다.
소규모의 식품가공 공장이 곳곳에 있으며, 상업과 공업은 대부분 풀리아 지방의 중심지인 바리(화학·석유화학 제품)·타란토(철·강철)·브린디시·바틀레타에 집중되어 있다. 포자는 이탈리아 반도의 모든 지역과 연결되는 간선철도의 중심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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