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인구 | 4,527,961명 (2024년 추계) |
---|---|
수도 | 파나마시티 |
면적 | 75,320㎢ 세계면적순위 |
공식명칭 | 파나마 공화국 (Republic of Panama) |
기후 | 열대성기후 |
민족 구성 | 메스티소(70%), 아메리카 원주민혼혈(14%), 백인 |
언어 | 에스파냐어 |
정부/의회형태 | 공화제 / 다당제&단원제 |
종교 | 로마가톨릭(85%), 개신교(15%) |
화폐 | 발보아 (B/) |
국화 | 파나마초 |
대륙 | 중남미 |
국가번호 | 507 |
GDP | USD 66,711,000,000 |
전압 | 110V / 60Hz |
도메인 | .pa |
요약 중앙 아메리카에 있는 나라. 수도는 파나마시티이며, 국민의 70%는 메스티소이다. 화폐는 발보아이고 파나마 운하와 관련된 수송·통신·저장 서비스업, 국제금융, 관광업 등에 바탕을 두고 있는 시장경제이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중앙 아메리카의 다른 나라에 비하면 높은 편이다. 위생상태는 양호한 편이며 6학년 또는 15세까지의 의무교육을 실시한다. 1980년대 반정부 한거 이후 대중매체는 엄격한 검열을 받게 되었다.
목차
접기-
자연환경
-
국민
-
경제
-
정치와 사회
-
문화
-
역사
-
파나마와 한국과의 관계
- ┗ 외교
- ┗ 경제·통상·주요 협정
- ┗ 문화교류·교민 현황
남아메리카의 북서쪽 끝부분에 연결되는 파나마 지협의 남쪽 끝부분 연장 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수도는 파나마시티이며 긴 S자 모양의 나라이다. 북쪽 카리브 해 쪽으로 1,160km의 해안선이 형성되어 있으며, 동쪽으로 콜롬비아에 접해 있다. 남쪽 태평양 쪽으로 1,690km의 험준한 해안선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코스타리카에 접해 있다. 면적 74,979㎢, 인구 4,527,961(2024 추계).
자연환경
국토는 저지대·온대지대·고지대 등 뚜렷하게 3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발 700m 이하의 저지대는 열대지역으로 국토의 85% 이상을 차지한다. 해발 700∼1,500m 지역은 온대지대, 해발 1,500m 이상은 냉대지역인 고지대가 분포한다.
고지대에는 타바사라 산맥 중부에 있는 국내 최고봉인 사화산인 바루 화산(3,475m), 산블라스 산과 다리엔 산이 있는 활 모양의 북동부 산맥, 활 모양의 남동부 산맥, 남부 화산 산맥 등이 있다. 저지대는 파나마 만과 치리키 만 부근에 있는 평원, 바야노 강 유역과 추쿠나케 강 유역, 카리브 해 지역의 평원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륙붕에는 1,600개 이상의 섬이 분포한다. 해안은 크고 작은 만·반도·갑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파나마에는 투이라·바야노·식사올라·창기놀라·치리키비에호·산타마리아 등 500개가 넘는 강이 흐르는데 대부분 고지대에서 발원한다.
파나마는 대체로 비가 많이 오는 열대성기후에 속해 1년 내내 따뜻한 낮과 서늘한 밤이 계속된다. 태평양 해안의 대초원지역에만 한때 건기가 있다. 양쪽 해안에서 연평균기온은 약 27℃이며, 산악지대는 10∼19℃이다. 비가 가장 많이 오는 기간은 5∼12월이다. 연평균강우량은 카리브 해안에서 1,500∼3,500㎜이상이며, 태평양 해안에서 1,140∼2,290㎜ 이상이다. 파나마는 절반 이상이 대부분 열대우림으로 뒤덮여 있다. 홍수림·카티보·오레이 등을 비롯해 습지 삼림이 풍부하다. 습윤한 카리브 해안 삼림이 상록수인 반면에 건조한 태평양 해안의 삼림은 부분적으로 낙엽성이다.
국화인 홀리고스트 난초를 포함하여 적어도 2,000종(種) 이상의 꽃피는 식물이 있다. 동물로는 거대한 개미핥기, 부시 도그, 오셀롯, 재규어, 중앙 아메리카산(産) 맥, 미국산 악어 등이 서식한다. 대체로 천연자원이 빈약하지만 구리광석이 많이 매장되어 있다.
국민
16세기 스페인인들이 파나마 지협을 최초로 식민지화했을 때 이곳에는 쿠나족·과이미족·초코족 등 여러 인디언 부족들이 살고 있었다. 스페인인과 인디언의 통혼으로 메스티소가 생겨났다. 아프리카 흑인이 유입되면서 다른 혼혈인종도 발생했다.
19세기에 주로 미국 출신의 북아메리카인, 프랑스인, 중국인 등이 철도건설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도착했다. 파나마 운하를 건설하는 동안 카리브 섬들에서 온 흑인, 스페인인, 이탈리아인, 그리스인 외에 많은 미국인들이 이주했다. 전체 인디언 부족 가운데 상당수가 파나마 서부에 사는 과이미족이다. 이들은 '평원의 언어'로 불리는 '모베레'라는 언어를 사용한다.
쿠나족이 과이미족 다음으로 많다. 이들은 지협의 다른 부분인 투이라 강과 그 지류들의 기슭, 산블라스 제도와 부근에 있는 해안에 거주한다. 언어는 쿠나어를 사용한다. 초코족은 국토의 1/3을 차지하는 동부에 주로 산다. 파나마 남서부와 중부에는 메스티소가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앤틸리스 흑인은 파나마시티에 주로 사는 소수 인종이다.
파나마의 공용어는 스페인어이다. 국민의 80% 이상이 로마 가톨릭교를 믿지만 헌법상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중앙 아메리카에서 출생률이 가장 낮으며 사망률 또한 비교적 낮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입국 이민자들이 감소함에 따라 1960년대초부터 매년 인구증가율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2024년 기준 연간 인구증가율은 1.34%였으며, 2024년 추계인구는 452만 명이다. 전체 인구의 27%가 15세 이하이다.
경제
파나마는 파나마 운하와 관련된 수송·통신·저장 서비스업, 국제금융, 관광업 등에 바탕을 두고 있는 시장경제이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인구증가보다 느리나 중앙 아메리카의 다른 나라에 비하면 높은 편이다.
농업은 GNP의 1/10을 차지할 뿐이지만 노동력의 1/3이 종사하고 있다.
주로 벼·옥수수·콩 등이 재배된다. 밀을 제외하면 식량은 대부분 자급자족할 수 있다. 바나나·설탕·커피·카카오 등의 환금작물이 가장 중요한 수출품에 속한다. 전통적으로 목축의 비중이 크며, 어업은 성장산업으로 새우·바다가재·보리새우·어분 등이 주로 수출된다. 광업은 국가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파나마시티와 그 주변에서 식품·시멘트·건축자재·석유제품·의류·가구 등의 제조업이 주로 행해진다.
138km의 파나마 횡단송유관을 포함한 여러 가지 대규모 계획이 건설산업의 성장을 촉진시켰다. 전력은 주로 수력발전에 의존하며, 수입연료로도 소량 생산된다. 서비스업이 GNP의 3/4을 차지하며 노동력의 1/2이 종사하고 있다. 1960년대말부터 파나마는 유리한 금융법, 우수한 교통·통신 시설, 환(換)관리의 부재, 파나마 통화인 발보아의 미국 통화로의 자유로운 환 대체 등을 이용해 주요 국제금융 중심지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미국의 높은 이자율로 인해 1980년대말부터 상대적으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파나마 운하에서 나오는 서비스 수입액이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주요 무역상대국은 미국·일본·멕시코·독일 및 여러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다. 이들은 연료·윤활유·기계류·수송장비·염기제품·화학제품·식품 등을 파나마에 수출한다. 1953년에 세워진 콜론 자유무역지대는 세계 최대의 무역 중심지로 꼽히며 저장·조립·옮겨싣기 등의 서비스가 이루어진다.
서비스 수출이 제품 수출보다 비중이 크다. 파나마 운하, 자유무역지대, 국제금융, 관광업 등의 관련 서비스업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전통적으로 계속되는 거대한 무역적자를 상쇄한다.
정치와 사회
파나마는 1972년에 제정된 헌법에 따라 통치되는 시민공화국이다. 1983년에 승인된 일련의 헌법개정하에 단원제인 입법부는 5년 임기로 선출된 67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입법부에는 법률제정 발의권, 국제조약 결정권, 예산승인권, 정당창당권 등의 권한이 주어진다.
보통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은 각료와 다른 핵심 공직자를 직접 임명하며 임기는 5년이다. 사법부는 9명으로 구성된 대법원을 정점으로 한다. 주요정당으로 정부를 지지하는 우익 성향의 민주혁명당(PRD)과 구속력이 약한 동맹인 전국반대전선당(FNO)이 있다.
정부는 사회복지제도를 통해 노동자에게 질병·임신 수당을 제공하며, 노인·무능력자·유가족 등에게 연금을 지급한다. 결핵이 만연한 도시 빈민지역을 제외하면 위생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주민 대부분이 몇몇 종류의 의료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1인당 의사 비율이 중앙 아메리카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당히 높다. 유아사망률은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낮은 나라에 속한다. 평균수명은 남자 약 70세, 여자 약 74세로 라틴 아메리카의 평균에 비해 높은 편이다.
모든 아동은 6학년까지의 초등교육을 마치거나 15세까지 학교에 다녀야 한다. 초등교육 취학연령에 있는 아동 가운데 거의 90%가 학교에 다닌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등학교에 갈 수 있다. 중등학교는 다시 3년씩 두 과정으로 나뉜다. 그 가운데 상급과정에서 '바치예라토'라는 학위를 수여받으면 파나마대학교(1935)와 산타마리아라안티과대학교(1965) 같은 고등교육기관에 진학할 수 있다. 1980년대말 반정부 항거가 있고 나서 대중매체는 엄격한 검열을 받게 되었다.
문화
파나마의 음악과 춤은 아메리카에서 가장 다채로운 편이다. 드럼과 박수에 맞추어 추는 아프리카 춤인 탐보리토가 여전히 인기 있다. 가장 인기 있는 민요는 18세기 스페인에서 전래된 메호라나이다.
역사
1501년 스페인인이 도착했을 때 75만 명의 인디언이 파나마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약탈·질병·살인 등으로 전체 인디언의 1/10이 죽었다. 스페인 식민지는 1510∼14년에 바스코 누녜스 데 발보아에 의해 처음으로 성공적으로 세워졌다.
1514년에 페드로 아리아스 다빌라(일명 페드라리아스)가 발보아를 물리쳤다. 1519년 페드라리아스는 파나마시티를 세우고 태평양 쪽으로 행정부를 옮겼다. 파나마는 스페인과 식민지 사이에 물건을 옮기는 수송 중심지로 발전했다. 1748년까지 포르토벨로에서 열렸던 무역박람회에서는 1688년까지 파나마 해안을 약탈했던 영국 해적선이 관심을 끌었다. 1751년 파나마는 콜롬비아 산타페데보고타의 속령이 되었다. 시몬 볼리바르가 누에바그라나다(지금의 에콰도르·콜롬비아·파나마·베네수엘라)에서 스페인과 왕당파군을 격퇴한 후, 파나마는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몇 개월 후 자발적으로 콜롬비아 동맹과 결합했다. 1830년대에 콜롬비아에서 이탈하려고 3번 시도를 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1849년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로 파나마는 번영을 누렸다. 많은 탐광자들이 대륙을 횡단하는 험한 미국 철도 대신에 캘리포니아로 가는 파나마 노정을 택했다. 미국에서 자금을 조달하여 건설된 파나마 철도가 1855년 개통되었으며, 곧바로 콜론 시가 세워졌다.
페르디낭 드 레셉스가 경영하는 프랑스계 회사가 1879년 지협을 가로지르는 운하를 건설하는 이권을 정부로부터 얻어냈으나 1889년 공사가 중단되었다. 1850∼1900년에 40개의 행정부, 50번의 폭동, 5번의 분리 시도, 13번의 미국 간섭 등이 있었으며, 20세기초 운하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고조되었다. 콜롬비아 상원이 파나마 운하 조약의 비준을 연기했을 때 미국은 파나마 분리주의자의 운동을 지지했다. 그로 인해 1903년 11월 6일 파나마 폭동이 일어났으며, 11월 18일 헤이-뷔노-바리아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으로 미국은 파나마 운하지대의 영구 소유권을 얻어냈으며, 완공된 운하는 1914년 개통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파나마는 혼란에 빠졌다. 폭동이 자주 일어났으며 반미감정이 퍼져나갔다. 1968년 국민수비대가 오마르 토리호스 에레라 대령의 지휘 아래 쿠데타를 성공시켰고, 그는 1977년 파나마 운하 조약을 협상했다.
이 조약으로 파나마가 예전의 미국 운하지대에 대한 사법권을 맡게 되었으나, 운하 자체의 운용권은 1999년까지 미국에 남아 있다. 20세기말 경제침체와 심각한 정치변동은 1989년 12월 그 위기가 절정에 달했다. 미군은 파나마를 침공하여 국방부 총사령관이자 파나마의 실권자인 마누엘 안토니오 노리에가 장군을 물러나게 했다(→ 저스트코즈).
파나마와 한국과의 관계
외교
파나마는 1948년 12월에 한국을 승인했고, 1962년 9월 30일에 국교를 수립했다. 한국은 1973년 5월에 주 파나마 대사관을 개설했으며, 파나마는 1979년 3월에 주한 파나마 대사관을 개설했다. 1984년 7월 대통령 당선자 바를레타(N. A. Barletta)가 방한하여 우호를 다졌다. 이후 2001년 7월에 알레망(Aleman) 외교부장관이 방한했고, 이후 여러 부처 고위급 인사가 방한했다. 2010년 10월에는 마르티넬리(Martinellie) 파나마 대통령이 국빈 자격으로 방한하여 양국 공동관심사에 대해 논의했다. 한국은 2003년 11월에 한명숙이 대통령 특사로 방문한 이후 정관계 고위인사가 방문했으며, 2010년 6월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방문했다. 한편 북한과는 국교가 수립되지 않았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한국은 수교 이후 파나마의 농림수산 분야의 연수생을 초청하여 교육시키고, 차량 등을 무상으로 원조해왔다. 또한 파나마에는 KEB하나은행, 금호타이어, 한국타이어, 동부대우전자, 범한판토스, 삼성물산, LG전자, 삼성전자, 삼성SDS, 현대자동차, 효성, SK건설, 현대삼호중공업, 대우인터내셔널, 포스코건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무역관, 한국무역보험공사 등 국내 대기업과 공기업들이 진출해 있다.
2023년 기준 파나마의 대한국 수출액은 2억 9,016만 달러, 수입액은 3억 1,665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광 및 슬래그, 선박과 수상 구조물, 탱커 등이고 주요 수입품은 탱커, 선박과 수상 구조물, 자동차 등이다. 양국이 체결한 협정으로는 문화협정(1974년 6월), 항공협정(1979년 12월), 투자보장협정, 사증면제협정(2001년 7월), 봉사단파견협정(2006년 4월), 과학기술협력협정(2010년 6월), 이중과세방지협정(2010년 10월), 한-중미 FTA 서명(2018년 2월) 등이 있다. 1987년부터 2015년까지 유상 및 무상으로 총 2,970만 달러를 지원했다.
문화교류·교민 현황
2023년 기준 파나마에는 536명의 재외동포가 거주하고 있으며, 한국에는 2023년 기준 78명의 파나마 국적의 등록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 ・ 외교부
- ・ 주 파나마 대한민국 대사관
- ・ 한국무역협회 통계
- ・ 외교부 재외동포 현황(2023년 기준)
- ・ 법무부 등록외국인 국적별 현황(2023년 기준)
남아메리카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