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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에가

다른 표기 언어 Manuel Antonio Noriega Mor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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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38년 2월 11일, 파나마 파나마
사망 2017년 5월 29일
국적 파나마

요약 실질적으로 파나마를 통치한 파나마의 군부 지도자이며 군 사령관이었다. 군부 쿠데타에서 한 역할을 인정받아 중령이 된 그는 군정보부 총수로서 당시 미국의 닉슨 행정부에 긴밀하게 협력했는데 닉슨 행정부와 노리에가 사이에 마약밀매를 둘러싼 추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는 야당과 정적들을 잔인하게 탄압하면서 악명이 높아졌고, 결국 국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이후 마약밀매금의 세탁과 미국의 첨단기술 및 첩보를 공산권에 팔아넘긴 증거들이 속속 드러났으며 특히, 파나마 운하조약에 따른 조차지대의 반환에 즈음해 노리에가와 미국 정부 사이에 갈등이 깊어졌다. 1990년 미국에 생포되었으며 법원은 그에게 종신형을 언도했다.

민선대통령의 배후에서 사실상 파나마를 통치했다.

콜롬비아계 빈민가정에서 태어나 파나마의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장학생 자격으로 페루 리마에 있는 코리오스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파나마로 돌아온 후 국방경비대 중위로 콜론에서 복무했고 이즈음 오마르 토리호스 대령과 친분을 맺었다.

대위가 된 노리에가는 아르눌포 아리아스정부 전복 쿠데타와 토리호스의 제거를 위한 쿠데타에서 일익을 담당했고 충성심을 인정받아 중령으로 진급했다. 군정보부 부장으로 임명된 후에는 쿠바의 하바나로부터 미국 화물선 승무원을 구조하는 등 미국 정보기관과 접촉하며 닉슨 행정부에 협력했다. 닉슨 행정부와 노리에가의 관계는 마약밀매를 둘러싸고 추문이 끊이지 않았다.

정보기관의 총수였던 노리에가는 야당과 정적들에 대한 탄압으로 악명이 높았고 파나마 국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1981년 토리호스가 의문의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뒤 군부와 민간에서는 격심한 권력쟁탈전이 벌어졌다. 1983년 노리에가는 국방경비대를 방위군으로 통합시키고 스스로 장성급인 군사령관에 올랐다.

1980년대 중반 노리에가는 정적인 우고 스파다포라를 잔인하게 살해함으로써 물의를 빚었다. 마약밀매금의 세탁과 미국의 첨단기술 및 첩보를 공산권에 팔아넘긴 증거들이 속속 드러났으며 특히, 파나마 운하조약에 따른 조차지대의 반환에 즈음하여 노리에가와 미국 정부 사이에는 갈등이 심화되었다.

1989년의 반노리에가 군사쿠데타가 무위로 끝난 뒤, 미국 정부는 이른바 '저스트 코즈'(Just Cause) 작전을 개시했고 마침내 1990년 1월 3일 노리에가의 생포에 성공하여 자국 관할하의 재판에 회부했다. 노리에가 자신은 파나마로 돌아가 재판받을 것을 희망했으나, 파나마 정부에 의해 거절당했다. 1992년 7월 미국 법원에서 종신형을 언도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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