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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629. 9. 9, 로테르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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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691. 3. 29, 암스테르담 |
국적 | 네덜란드 |
요약 네덜란드의 해군 제독.
마르텐 트롬프의 차남으로 영국·프랑스·스웨덴에 대한 일련의 작전을 지휘했다. 1645년 부친의 함대에서 대위로 복무했고 1649년 대령이 되었다. 지중해에서 북아프리카의 해적들을 소탕했고(1650), 제1차 영국 - 네덜란드 전쟁에서 영국과 싸웠다.
레크호른 전투(1653)에서 대(對) 영국전에 참전한 후 해군 소장이 되었다. 그는 언제나 독자적인 작전에 강한 의욕을 보였으며, 격렬한 전투에서 기쁨을 찾았다. 1654년 알제리인들과 싸웠으며, 1656년 스웨덴과 폴란드 사이에 벌어진 제1차 북방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발트 해로 항진했다. 1663년 지중해의 네덜란드 함대 사령관에 임명되었다. 몇 년간의 공백기를 거치고 제2차 영국 - 네덜란드 전쟁 때인 1665년 중장으로 함대에 되돌아왔다.
1666년 마스 해군본부의 대장대리로 승진되었으며, 네덜란드 함대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그러나 서인도 제도에서 미힐 데 로이테르 대장이 되돌아왔고, 이 나이들고 경력이 더 풍부한 장군이 트롬프의 직책을 대신하게 되자 트롬프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불만이 생겼다. 1666년 트롬프는 암스테르담 해군본부로 전임되어갔고, 곧 로이테르와 갈등을 빚게 되었다. 1666년 7월 로이테르가 트롬프의 지원을 받지 못해 영국에 패했다고 책임을 전가하자 갈등은 더욱 심각해졌다. 이 사건으로 트롬프는 대장대리의 직위에서 물러났고 그후 해군을 떠났다.
1673년 오라녜의 빌렘 3세가 오라녜 가문의 친근한 동조자인 트롬프와 로이테르를 화해시키는 데 성공했다. 트롬프는 암스테르담 해군본부의 대장대리로 복직되었으며 같은 해 스호네벨트와 케이크도인 전투에서 로이테르와 함께 싸웠다. 영국과 네덜란드가 웨스트민스터 조약(1674)을 맺은 뒤 프랑스 해안을 따라 순항하다가 하달된 지시를 어기고 지중해로 원정을 떠났다. 이 원정은 실패로 끝났는데 이때문에 그는 해군부로부터 질책을 받았다. 1676년 트롬프는 스웨덴에 대항하기 위해 구성된 덴마크 - 네덜란드 연합함대의 총사령관이 되어 1678년까지 덴마크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그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를 도와 스웨덴으로부터 뤼겐 섬을 되찾았다. 그후 네덜란드로 돌아와 1691년 공화국의 최고위 제독으로서 해군 총지휘권을 부여받았으나 병에 걸려 항해를 못하고 곧 사망했다. 그는 영국 왕 찰스 2세로부터 준남작작위를 받았고, 덴마크 왕에게서 백작작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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