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요약
사도 토마에 의해 그리스도교도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인도 남서지역의 그리스도교 집단.
Malabar Christians라고도 함.
말라바 해변에 있는 케랄라 주에서 사는 4개의 집단(시리아-말라바, 시리아-말란카라, 시리아 야코부스파, 마르 토미테)이 있다. 비록 6세기 이전부터 존재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이들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으며, 크테시폰을 중심으로 한 동방 시리아 교회(네스토리우스 교회,그리스도의 2가지 본성은 사실상 두 인격이며 이 둘은 결합하여 도덕적 통일체를 이룬다고 주장한 교회)의 선교활동으로 생겨난 것 같다. 비록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었지만 칼데아 전례(典禮)와 시리아어를 사용했으며, 바빌로니아(바그다드) 총대주교구와 형제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의 예배의식에는 원래 그들이 믿던 종교유산, 즉 힌두교의 종교적인 상징성도 포함되어 있었다. 시리아 그리스도교도들이 말라바 해변으로 몇 차례 대규모로 이주하면서(9세기) 그들과 중동지역의 유대가 강화되었다.
16세기초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로마 교회와 접촉하는 일이 매우 드물었다. 포르투갈 선교사들은 처음에는 형제애를 내세웠지만 곧 그 지역 주교를 포르투갈인으로 바꾸고 말라바 전례를 라틴식으로 바꾸었다. 즉 말라바 교회를 일관되게 로마 교회에 예속시키려 했다.
포르투갈의 대주교 알레익소 데 메네세스가 소집한 1599년의 디암페르 교회회의는 말라바 교회에 대한 관할권을 인도에 있는 칼데아(네스토리아) 총대주교로부터 라틴 전례를 갖춘 포르투갈인들에게로 옮기도록 했다. 또한 전례를 라틴식으로 바꾸고 사제의 독신생활을 교리로 확정하고 종교재판을 도입했다. 그 결과 1653년에는 토마교의 대다수 그리스도교도들이 다시는 포르투갈인의 지배에 따르지 않겠다고 맹세하면서 로마 가톨릭 교회를 떠났다. 이러한 반란 소식이 로마에 전해지자 교황 알렉산데르 7세는 1661년 시리아의 주교 세바스티아니를 대표로 하는 카르멜 파견단을 말라바에 보냈으며, 칼데아 전례 교회를 로마에 예속시켰다. 1662년 토마교 대부분은(116개 공동체 중에서 84개) 다시 로마에 복종하게 되었으며(시리아-말라바), 나머지는 그레고리오스 주교가 1665년에 예루살렘에서 말라바로 들여온 시리아 야코부스파 교회에 합류했다. 야코부스파 교회는 서부 시리아어와 안티오크 예배의식을 채택했고, 18세기말에는 그들 중 소수가 영국 성공회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아 교리와 전례에서 서구 개신교의 특징을 받아들인 마르토미테 교회를 세웠다. 1930년 대주교 마르 이바니오스를 따르는 야코부스파 교회의 대집단이 로마 교회와 재결합했을 때 시리아말란카라 교회는 가톨릭 교회의 동방 전례를 갖추게 되었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안티오크 전례를 유지하도록 허락받았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세계사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