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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바리

다른 표기 언어 aṭ-Ṭabar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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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839경, 타바리스탄(지금의 이란) 아몰
사망 923, 바그다드
국적 이슬람

요약 이슬람 학자.
정식 이름은 Abū Ja⁽far Muḥammad ibn Jarīr aṭ-Ṭabarī.

초기 이슬람역사와 〈코란〉 주석서에 대한 방대한 해설서를 쓴 사람이다. 9세기에 수니파 사상의 강화에 헌신적인 공헌을 했다. 이전 세대의 이슬람 학자들의 방대한 해석적·역사적 지식을 요약했고 코란학과 역사학의 토대를 세웠다. 그의 주요저작은 〈코란 해석서 Qur⁾ān Commen-tary〉·〈예언자들과 왕들의 역사 Ta⁾rῑkh ar-Rusūl wa al-Mulūk〉이다(→ 역사편찬).

어려서 조숙했던 그는 고향을 떠나 이라크·시리아·이집트의 학문 중심지로 학술 여행을 했다. 여러 해에 걸쳐 수많은 학자와 도서관에서 후에 저작에 사용할 구두 또는 문서로 된 자료를 모았다. 타바리는 재정적으로 충분히 자립할 수 있었던 덕분에 아바스 왕조의 수도 바그다드에서 가르침과 저술로 여생을 바치다가 923년에 죽었다.

그가 살던 시대는 정치적 무질서, 사회적 위기, 철학 및 신학적 논쟁으로 점철되었다. 여러 가지 요인과 상황으로 인해 생긴 불만 세력이 칼리프 제국의 중심부에서까지 공공연한 반란을 일으켰고, 중세 이슬람 시대의 사회적·경제적 원인으로 일어난 모든 운동이 그랬듯이 이 반란은 정통 수니파의 공식 신조에 반대하는 종교적 표현으로 그 합법성을 추구했다.

타바리는 이러한 반대운동의 극단적인 신학적 입장을 배격했으나 동시에 수도에서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던 극단적 정통 수니파인 한발리야(이슬람 법학파의 주요분파)도 수용하지 않았다. 정통파 대열에서 그는 독자적인 법학파를 세웠는데, 이 법학파는 그의 사후 곧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9세기에 수니파 사상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타바리가 역사와 〈코란〉 연구에서 이룩한 업적은 자료의 발견이나 기록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을 면밀히 조사하여 재편성한 데 있었다. 그의 업적은 그보다 이전 세대 이슬람교도 학자(그들의 저작은 대부분이 원래 형태로 보존되지 않았음)의 풍부한 해석과 역사적 지식을 요약하여 코란과 역사학의 토대를 세운 것이다.

주요저작

타바리의 일생의 노력은 〈코란 해석서〉저작에서 〈예언자들과 왕들의 역사〉로 이어졌다. 타바리의 이 역사서가 인기를 끌자 사만 왕조의 왕자 만수르 이븐 누흐는 그것을 페르시아어로 번역하게 했다(963경). 〈코란 해석서〉에서 타바리의 저술법은 코란의 구절마다 예언자 마호메트, 그의 교우들 및 그들의 추종자들로부터 전승으로 전해진 법상·사전편집상·역사상의 설명을 나란히 첨가하는 것이었다.

각 이야기는 전달자의 연결고리(isnād)가 첨부되어 있어 최초의 자료제공자까지 적혀 있다(→ 〈하디스〉). 한번 갈라져나간 이야기들은 거의 일치되지 않았다. 따라서 학자의 유일한 비평도구는 이스나드의 신빙성 여부에 관한 그의 판단이지, 하디스의 내용에 관한 것은 아니었다. 결국 여러 해석들이 원칙적으로 용인되었다.

〈예언자들과 왕들의 역사〉는 천지창조에서 시작되어 선지자들, 예언자들 및 고대 통치자에 관한 설명을 거쳐 사산 왕조 왕들의 역사로 이어졌다. 예언자가 살던 시대를 연구하려고 타바리는 8세기 메디나 학자들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를 행했다. 비록 이슬람 이전의 영향력이 그들의 저작에 분명히 남아 있다 하더라도 이슬람 역사에 대한 메디나의 시각이 마호메트의 생애에서 절정에 이른 신본주의적 보편 역사로서 전개되었으며 부족간의 전쟁과 부족시대 가치체계의 연장선상에서 전개된 것은 없었다.

마호메트의 죽음에서 우마이야 왕조(661~750)의 몰락까지를 다룬 이 책은 주요사건이나 중요인물이 죽을 당시의 상황을 다룬 단편적인 글들을 사료로 이용했다. 또한 이 자료에다 계보학, 시집, 부족의 상황에 대한 서적에 실려 전해오는 사실들을 보충했다.아바스 왕조 초기의 역사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칼리프들이 만든 몇몇 역사책을 통해 알 수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이 역사책들은 타바리가 보존하고 있던 일부만 현재 남아 있다.

대체로 이 모든 설명은 공동체에 대한 이라크인의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 이 책은 가끔 세속적인 '보편'사관을 갖고 있다는 평을 듣지만 이같은 시각과 타바리가 이집트, 북아프리카, 이슬람권 스페인을 소홀히 다룬 점등을 고려할 때 그러한 평가는 옳지 않다. 이 책은 이슬람력 원년(예언자 마호메트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히즈라]한 622년부터 시작됨)부터 915년까지 일련의 연대기로 짜여져 있다.

역사관

타바리가 예언자와 선임자(as-salaf) 들로 일컬어지는 초기 공동체의 독실한 학자들로부터 시작된 소문을 선호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어떤 소문의 신뢰성에 대한 그의 판단은 대체로 이론적 기준에 근거를 두었는데, 즉 소문은 목격자나 당대의 자료제공자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문제가 야기되었으나 타바리 자신도 실질적인 해결책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는 종종 해설논평 없이 한 사건에 대해 여러 가지 설명을 병행해 나열했는데, 그것은 그가 그 사건의 본질과 원인을 탐색하는 데 어떤 관련성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어떤 궁극적인 설명이 역사 그 자체로서는 이해할 수 없고 신만이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언자의 전승은 〈코란〉처럼 신으로부터 나온 절대적 계명과 명령을 제시했다. 역사는 신을 두려워하거나 무시할 때 발생하는 결과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타바리에게서 역사란 예를 들어가면서 신의 뜻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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