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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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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이탈리아의 작곡가 알레산드로 그란디가 <독창을 위한 칸타타와 아리아>에서 최초로 이 용어를 사용했다. 초기 칸타타는 이탈리아 작곡가들이 대부분 세속양식으로 작곡했지만 그중에는 종교양식으로 된 것도 있었다. 칸타타는 로마의 궁정과 유럽 여러 지역 귀족들의 음악 생활에 필수 요소가 되었다. 칸타타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바흐의 작품을 통해서였다. 1714년부터 바흐는 교회음악에 다 카포 아리아를 사용했다. 바흐 시대에는 세속 칸타타도 자주 연주되었고 빈 악파의 위대한 작곡가들도 특별한 행사를 위해 칸타타를 작곡했다. 1800년경부터 칸타타 양식은 점차 자유스러워져 이 용어는 독창·합창·관현악을 위한 규모가 큰 작품을 지칭하게 되었다. 멘델스존은 교향적 칸타타 <찬미의 노래>에서 교향곡과 칸타타를 결합했다.

원래는 기악 연주를 위해 작곡된 소나타에 대해 성악으로 연주되는 음악작품을 지칭하는 용어였으나, 지금은 성악과 기악을 위한 음악작품 전반을 포괄적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작곡가 알레산드로 그란디가 〈독창을 위한 칸타타와 아리아 Cantade et arie a voce sola〉(1620~29 출판)에서 최초로 이 용어를 사용했다. 칸타타의 선조적 형태는 스트로픽 아리아(지속적인 베이스 위에 가사의 각 연[strophe]의 선율이 다양하게 변화해가는 아리아)와 몬테베르디의 후기 마드리갈 같은 실내 성악곡이다. 그란디 이후 초기 칸타타는 이탈리아 작곡가에 의해 대부분 세속양식(실내 칸타타 cantata da camera)으로 작곡되었지만 그중에는 종교양식(교회 칸타타 cantata da chiesa)으로 된 것도 있었고 둘 다 라틴어가 아닌 이탈리아어 가사로 된 것도 있었다.

엄밀하게는 두 양식의 성격이 다른 것이지만 당시의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레치타티보-아리아의 구조를 가진 것이 특징이었다. 17세기 칸타타 작곡가들 가운데는 루이지 로시, 피에트로 안토니오 체스티와 특히 자코모 카라시미가 탁월했다. 다음 세대의 칸타타 작곡가들은 1~2명이 부르는 레치타티보와 다 카포 아리아(ABA의 구조인데, A부분은 보통 변주된 형태로 반복됨)의 연속으로 이 형식을 정형화했다.

카리시미 (Giacomo Carissimi)

17세기 이탈리아의 대작곡가

ⓒ Phrood ~ commonswiki / WIKIPEDIA | Public Domain

알렉산드로 스트라델라, 마리오 사비오니, 조반니 레그렌치 등의 작곡가와 그 제자들의 활동으로 칸타타는 로마의 궁정과 유럽 여러 지역 귀족들의 음악 생활에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는 이탈리아의 마지막 칸타타 작곡가들 가운데 중요한 인물이었으며, 그의 제자인 독일의 요한 하세는 이탈리아 실내 칸타타를 드레스덴으로 가져갔다.

하세 (Johann Adolph Hasse)

후기 바로크 오페라를 지배했던 오페라 작곡가

ⓒ Phrood / wikipedia | Public Domain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은 이탈리아의 기법으로 칸타타를 작곡했으며 루이 클레랑보, 장 바티스트 모랭, 장 필리프 라모 등 18세기 프랑스 작곡가들의 작품에서도 이와 유사한 조류를 엿볼 수 있다. 프랑스 칸타타는 대개 프랑스어를 사용했으며, 칸타타가 귀족적인 성향을 잃었던 독일에서는 독일어 대본을 사용했다. 루터 교회의 성직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에르드만 노이마이스터는 세속음악을 교회 예배의식에 흡수할 수 있도록 했다.

그들은 독일 프로테스탄트 작곡가들이 오페라의 아리아 형식에 기초한 교회 칸타타를 작곡할 수 있도록 대본집을 제공했다. 그 이전에 이미 루터 교회의 음악은 주로 성서에서 발췌한 가사를 붙인 12세기 음악에 기초를 두었다. 보다 세속화된 노이마이스터의 음악이 유입되면서 교회음악은 이탈리아 오페라 양식에 의해 변형되었는데 게오르크 필리프 텔레만의 주일과 교회축일에 연주되는 12개의 칸타타 연집은 바로 이러한 경향을 대변했다.

비록 바흐 자신은 자신의 칸타타를 옛날 용어인 모테토·콘체르토·오드라 부르며(바흐의 작품에 칸타타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19세기의 편집자들이었음) 이 천박한 양식을 거부했지만, 칸타타라는 말이 이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바로 그의 작품을 통해서였다.

1714년부터 바흐는 그의 교회음악에 다 카포 아리아를 사용했다. 초기 라이프치히 시대(1723~26)에 바흐는 코랄 칸타타를 발전시켰는데 이것은 찬송가의 제1연을 정교하게 변형시킨 코랄 판타지아로 시작하여, 그 찬송가의 마지막 연에 단순한 화성을 붙여 모든 회중들이 부를 수 있도록 한 코랄로 끝맺게 되어 있다. 성가의 중간 연들은 1명 이상의 독창자들이 부르는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로 변형되어 나타나며 그 가운데 여러 곡들이 예배 의식에 뒤섞이게 되었다.

바흐 시대에는 세속 칸타타(예를 들어 바흐의 커피 칸타타나 농부 칸타타 등)도 역시 자주 연주되었고 빈 악파의 위대한 작곡가들도 특별한 행사를 위해 칸타타를 작곡했지만(예를 들어 모차르트의 〈프리메이슨의 환희 Die Maurerfreude〉), 이 형식은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1800년경부터 칸타타 양식은 점차 자유스러워져 이 용어는 베토벤의 〈영광의 순간 Der glorreiche Augenblick〉 이후로는 독창·합창·관현악을 위한 규모가 큰 작품을 지칭하게 되었다.

멘델스존은 교향적 칸타타 〈찬미의 노래 Lobgesang〉(1840)에서 교향곡과 칸타타를 결합하기도 했다. 반면 20세기 영국의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은 그의 칸타타 작품에 〈봄의 교향곡 Spring Symphony〉(1949)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멘델스존 (Felix Mendelssohn)

독일의 작곡가, 피아니스트

ⓒ Dr. 91.41 / wikipedia | Public Domain

20세기에 와서 칸타타는 브리튼과 같이 옛 음악형식에 관심이 있는 작곡가들에 의해 작곡되고 있다. 그러나 원래 정의대로의 실내 칸타타는 이제 연가곡 등 시에 곡을 붙이는 노래 형식에 대한 현대 작곡가의 관심의 부산물로 가끔씩 나타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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