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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년 6월 튀링겐의 뮐하우젠에 있는 블라지우스 교회에 일자리를 얻었으며 그해 10월 17일 도른하임에서 사촌인 마리아 바르바라 바흐와 결혼했다. 뮐하우젠에서는 한동안 모든 일이 순로로운 듯했다. 이때 작곡한 칸타타들은 성서 혹은 코랄 가사를 기초로 한 보수적인 틀을 고수하고 있으며, 훗날 그의 칸타타에 나타나는 '근대' 이탈리아 오페라 형식의 영향은 보이지 않는다.
오르간을 위한 〈파시칼리아 C단조〉(BWV 582), 역시 오르간을 위한 〈토카타와 푸가 D단조〉(BWV 565), 〈전주곡과 푸가 D장조〉(BWV 532) 등이 당시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칸타타 71번 〈하느님은 나의 왕이시도다〉(1708. 2)는 시의회가 비용을 부담하여 출판된 작품이다.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바흐는 블라지우스 교회를 사임하고 곧바로 바이마르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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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바흐의 뮐하우젠 시대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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