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최소한 4세대에 걸쳐 초서의 선조들은 영국의 중산층으로 런던이나 궁정과의 관계를 점차 증진시켰다.
런던의 중요한 포도주 상인으로 왕의 부집사였던 아버지 존 초서는 1338년 에드워드 3세가 지금의 벨기에 일부인 플랑드르의 안트웨르펜을 공략할 때 참여했고, 입스위치·서퍽 지방과 런던에 부동산을 마련했으며 53세의 나이로 1366(또는 1367)년에 죽었다. 초서라는 이름은 신발 제조업자라는 뜻의 프랑스어 '소시에르'(chaussier)에서 유래되었다. 가족의 경제적 성공은 술과 가죽 때문에 생겼다고 할 수 있다. 흔히 1340년에 초서가 태어났다고 하지만 1342년이나 1343년이 아마 더 옳을 것이다.
그가 그당시의 중세영어뿐만 아니라 프랑스어도 유창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확실하지만 유년기 교육에 대해 알려진 것은 전혀 없다. 또한 라틴어와 이탈리아어에도 능숙했다. 그의 작품을 보면 그가 당시나 그 이전의 중요 서적들과 상당히 친숙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초서는 1357년 에드워드 3세의 셋째 아들 라이오넬의 부인인 얼스터 백작 부인 엘리자베스의 가족 중 한 사람으로 처음 기록에 나타난다.
제프리의 아버지가 아마도 왕가에 봉사하는 젊은 남녀집단에 아들을 가입시킬 수 있었던 것 같으며, 이것은 자녀들에게 필요한 왕실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출세할 수 있는 인연을 만들어 주었다. 1359년 초서는 프랑스에서 에드워드 3세의 군대에서 복무하다 르앙 전투에서 체포되었다. 왕이 그의 몸값을 지불했고 1360년 평화협정 동안 초서는 칼레에서 영국까지 메신저로서 활동했다.
초서는 1361~65년의 기록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 왕을 보필했던 것 같으나, 당시 공직에 대비하는 흔한 방법인 법률을 공부했을 수도 있는데, 그것은 16세기 기록에 따르면 그 일에 열중하고 있는 동안 런던 거리에서 그가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수도승을 때린 것 때문에 벌금을 징수당했다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1366년 2월 22일 나바르 왕은 초서와 3명의 동행인 및 그들의 시종이 스페인에 들어와도 좋다는 신변안전보증서를 발급해주었다. 이 사건이 다음 10년 이상 유럽 대륙에 외교적 임무를 띠고 떠났던 일의 시초가 되었고, 그 문서의 기록에 따르면 초서는 '사절단장'으로 일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초서는 1366년경 결혼했다.
아내는 필리파 팬으로 얼스터 백작 부인을 모시다가 1363년 엘리자베스가 죽자 에드워드 3세의 왕비인 하이노트의 필리파를 모시기 시작했다. 1366년 필리파 초서는 연금을 받았고 후의 연금들은 그녀의 남편을 통해 그녀에게 지불되었다. 이런저런 사실로 미루어 보면 초서는 결혼을 잘했던 것 같다. 1367년 초서는 왕의 시종으로서 종신연금을 받았으며 다음 해 그는 왕의 기사로 등록되었다. 그러한 직위를 가진 사람은 궁정에 살면서 상당히 중요한 관직의 임무를 수행했다. 1368년 초서는 외교상 임무로 국외로 나갔고, 1369년 프랑스에서 군복무를 했다.
또한 1369년 그와 아내는 필리파 왕비의 죽음에 공식 조문객이었다. 분명히 초서의 경력은 화려했고 그의 최초의 중요한 시 〈공작부인의 책 Book of the Duchess〉은 고위직 인사들과 그의 관계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1369년 후반이나 1370년초에 씌어진 1,300행이 넘는 이 시는 곤트의 존의 첫 부인인 랭카스터 공작부인 블랑시를 위한 애가였다. 블랑시는 1369년 9월 역병으로 죽었다. 초서와 존의 친밀한 관계는 평생 동안 지속되었으며, 대강 나이가 비슷했던 그들이 일찍이 요크셔에 있는 얼스터 백작부인의 저택에 머물렀던 1357년 크리스마스부터 교제가 시작되었던 듯싶다.
중요한 시로서는 첫 작품인 이 글에서 초서는 13세기의 매우 영향력 있던 프랑스의 궁정 연애시 〈장미 이야기 Roman de la rose〉 때문에 널리 퍼지게 된 꿈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는 몽상형식(dreamvision)을 따르고 있다.
초서는 최초의 문학작업으로 최소한의 부분이긴 하지만 〈장미 이야기〉를 영역했으며 자신의 모든 작품에 이것을 차용했다. 〈공작부인의 책〉은 또한 당대 프랑스 시와 초서가 애독했던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이렇게 차용했다고 해서 존에 대한 위로와 블랑시를 위한 애가 및 찬가를 몽상형식으로 엮어낸 그의 독창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뜻은 아니다. 또한 여기에서 시인 자신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아닐 수도 있는 1인칭 화자를 기교있고 미묘하게 사용하는 것에 주목할 만한데, 이는 후기 시로 갈수록 점점 더 뚜렷해지는 기법이다(시점). 이 기법을 사용하면 하급 궁정대신으로서 이런 작품을 고위 귀족들 앞에서 낭독하는 경우에 도움이 되었으리라는 것이 분명하다.
이에 덧붙여 〈공작부인의 책〉은 중세 영어 운문의 한계 내에서 자연스런 대화의 리듬을 제시하고 궁정시의 관습 내에서 사실적인 인물을 창출해내는 초서의 재능을 드러내 보여준다. 또한 여기에서 초서는 굿 페어 화이트에 대한 블랙 나이트의 사랑을 이야기함으로써 연애시인으로서의 그의 작품활동을 시작하면서, 사랑의 일시적인 면과 영원한 면 둘다와 관련이 있는 인간 상황에 대한 중요한 철학적·종교적 질문을 중세 후기 방식으로 탐색해나갔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작가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