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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서의 후손과 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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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서의 자손에 대해서는 정보가 확실하지 않다. 그와 필리파 사이에 두 아들과 두 딸이 있었던 것 같다. 아들 토머스 초서는 1434년에 죽었는데 넓은 토지와 노스 페서턴의 산림관리직을 포함하여 1420년대에 요직에 있었다. 그는 후에 웨스트민스터에 있는 초서의 집을 임대했고 2번 결혼했던 그의 딸 앨리스는 서퍽의 공작부인이 되었다.

1391년 초서는 그당시 10세이던 작은 아들 '어린 루이스'를 위한 〈애스트롤래브 소고 Treatise on the Astrolabe〉를 썼다. 시인의 딸로 짐작되는 엘리자베스 '초시'는 1381년 바킹에서 수녀가 되었다. 둘째 딸 애그네스 초서는 1399년 헨리 4세의 대관식 궁녀였다. 기록을 보면 곤트의 존이 이 아이들 중 1명 이상의 대부가 되었던 것 같다. 초서의 후손으로 15세기 이후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초서의 저술에 대해 후세의 기록은 점점 더 분명해졌다. 그의 동시대인들은 그의 기교를 찬양했고 15세기 초서 숭배자들은 그의 시를 모방했다. 16세기가 지나면서 그의 시, 특히 〈캔터베리 이야기〉는 널리 읽혀 근대영어로 번역되었고 19세기 중엽이래 그의 일생과 작품을 연구하고 학자와 비평가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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