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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경상남도 북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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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57,003 (2024) |
면적 | 532.87㎢ |
행정구역 | 2개읍 12개면 285개리 |
사이트 | http://www.cng.go.kr/ |
요약 경상남도 북부에 있는 군. 대구광역시 남쪽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밀양시와 접하여 도계를 이루고 있다. 전형적인 농촌지역으로 낙동강과 소하천들을 따라 취락이 분포한다. 4개 산업단지와, 5개 농공단지가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주고 있다. 부곡온천·비화가야·남산·작약산을 중심으로 관광지가 형성되어 있다. 면적 532.87㎢, 인구 57,003(2024).
대한민국 경상남도 북부 중앙에 있는 군. 낙동강 유역에 위치하여 일찍부터 농경문화가 이루어진 지역으로 전형적인 쌀농사지대이다. 비화가야가 있었으며,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방어 요충지로 이와 관련된 유물·유적이 많다. 부곡온천이 있다. 행정구역은 창녕읍·남지읍·고암면·성산면·대합면·이방면·유어면·대지면·계성면·영산면·장마면·도천면·길곡면·부곡면 등 2개읍 12개면 139개리가 있다(법정리 기준, 행정리 기준 285개리). 군청소재지는 창녕군 창녕읍 군청길이다. 면적 532.87㎢, 인구 57,003(2024).
연혁
지금의 창녕군은 옛 창녕현(昌寧縣)과 영산현(靈山縣)이 합하여 이루어진 곳이다. 옛 창녕현 지역은 삼한시대의 불사국(不斯國)으로 비정되기도 한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가야의 영역이었음을 이곳에 분포·출토되고 있는 가야의 고분과 유물들이 말해주고 있다. 신라의 세력확장에 따라 6세기 중엽인 555년(진흥왕 16)에 신라가 이곳을 점령하고 하주(下州)를 설치했다.
영산현은 삼국시대에 서화현(西火縣)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창녕지역은 화왕군(火王郡)으로 개칭되었고, 영산은 상약현(尙藥縣)이 되었다.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각각 창녕군과 영산현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1018년(현종 9)에 2곳 모두 밀성군(密城郡, 密陽)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 1172년(명종 2)에 창녕군, 1274년(원종 15)에 영산현에 감무가 파견됨으로써 독립했다.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으로 1413년에 창녕현과 영산현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631~37년(인조 9~15)에 창녕현이 영산현에 합병되기도 했다. 창녕의 별호는 창산(昌山)·하성(夏城)이었으며, 영산의 별호는 취산(鷲山) 취성(鷲城)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대구부 창녕군·영산군, 1896년에 경상남도 창녕군·영산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영산군이 창녕군에 합병되어, 15개면으로 개편되었다. 1918년에 읍내면을 창녕면으로, 1936년에 남곡면을 남지면으로 개칭했다. 1955년 창락면이 창녕면에 병합되고, 1960년에 창녕면이, 1962년에 남지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71년 남지읍 고곡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98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고곡출장소가 폐지되었다.
한편 국내 최대의 자연늪으로 알려진 우포늪은 1998년 3월 람사르 협약 등록 습지가 되었다. 2011년 1월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가, 국가지정 문화재 천연기념물 제524호로 재지정되었다.
인구·취락
대도시의 인구이동으로 인구수가 계속 감소되고 있다. 2000년 이후 2008년에는 6만 2,381명, 2010년 6만 2,751명, 2024년 5만 7,003명으로 미약하게나마 증가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창녕읍(1만 5,711명)·남지읍(1만 1,686명)·영산면(4,971명) 등의 취락은 마을당 인구수가 400명 이상으로 비교적 규모가 크며, 반면 길곡면(1,474명)·성산면(1,528명) 등은 비교적 소규모 촌락이 입지하고 있다(2024).
혈연을 바탕으로 형성된 동족마을이 많은데, 창녕읍 교하리의 창녕성씨 마을, 남지읍 남지리의 영산신씨 마을, 고암면 원촌리의 창성조씨 마을 등은 창녕에 시조를 둔 성씨에 의해 형성된 대표적인 마을이다. 낙동강에 연해 있어 과거 수운이 활발할 때 임해진·남지·송진·마수원 등의 하안취락이 발달했고, 나루터를 중심으로 도진취락이 형성되기도 했다. 동부 산지에는 산지촌이 나타나고 있다.
연혁
지금의 창녕군은 옛 창녕현(昌寧縣)과 영산현(靈山縣)이 합하여 이루어진 곳이다. 옛 창녕현 지역은 삼한시대의 불사국(不斯國)으로 비정되기도 한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가야의 영역이었음을 이곳에 분포·출토되고 있는 가야의 고분과 유물들이 말해주고 있다. 신라의 세력확장에 따라 6세기 중엽인 555년(진흥왕 16)에 신라가 이곳을 점령하고 하주(下州)를 설치했다.
565년에 하주를 폐지하고 비자화군(比自火郡) 또는 비사벌군(比斯伐郡)을 두었다. 영산현은 삼국시대에 서화현(西火縣)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창녕지역은 화왕군(火王郡)으로 개칭되고 현효현(玄驍縣:玄風)·유산현(幽山縣:청도군 풍각면)·계성현(桂城縣:창녕군 계성면)을 영현으로 관할했으며, 영산은 상약현(尙藥縣)으로 개칭되어 밀성군(密城郡:밀양)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각각 창녕군과 영산현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1018년(현종 9)에 2곳 모두 밀성군(密城郡:密陽)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 1172년(명종 2)에 창녕군, 1274년(원종 15)에 영산현에 감무가 파견됨으로써 독립했다.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으로 1413년에 창녕현과 영산현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631~37년(인조 9~15)에 창녕현이 영산현에 합병되기도 했다. 창녕의 별호는 창산(昌山)·하성(夏城)이었으며, 영산의 별호는 취산(鷲山) 취성(鷲城)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대구부 창녕군·영산군, 1896년에 경상남도 창녕군·영산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영산군이 폐지되고 영산군 부곡면·길곡면·도천면·계성면은 그대로, 읍내면이 영산면으로, 장가면·마고면이 장마면으로 통합되어 창녕군에 편입됨으로써 면적이 크게 넓어졌다. 이때 면의 폐합도 이루어져 창녕군의 창락면은 그대로, 읍내면·고암면(일부)이 읍내면으로, 월말면·고암면(일부)이 고암면으로, 성상면·성하면이 성산면으로, 합산면·개복면·대곡면이 대합면으로, 오야면·이방면이 이방면으로, 유장면·어촌면이 유어면으로, 대초면·지포면이 대지면으로, 남곡면과 영산군 도사면이 남곡면으로 통합되었다. 1918년에 읍내면을 창녕면으로, 1936년에 남곡면을 남지면으로 개칭했다. 1955년 창락면이 창녕면에 병합되고, 1960년에 창녕면이, 1962년에 남지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자연환경
전체적인 지세는 동부에서 서남쪽으로 열린 형태이다. 군의 북동부는 천왕산(619m)·묘봉산(513m)·수봉산(593m) 등이 경상북도와 경계를 이루며 솟아 있고, 영취산(737m)과 열왕산(663m)이 동쪽 밀양군과 경계를 이룬다.
동부지역에 위치한 화왕산(757m)은 군내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창녕의 진산이며, 영취산(일명 영축산)은 영산현의 진산이었다. 북서부와 서부에는 구룡산(208m)·구진산(300m)·고운봉(241m) 등 높이 2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가 분포한다. 낙동강이 군의 서쪽과 남쪽을 흐르면서 합천군·의령군·함안군 등과 경계를 이루며, 이방면과 남지읍에서 황강과 남강을 각각 합류한다.
그밖에 계성천·청도천·온정천·길곡천 등 북동부 산지에서 발원한 소하천들도 낙동강에 유입한다. 낙동강의 배후와 소지류의 계곡을 따라 넓은 배후습지가 형성되어 늪과 못이 많다. 이는 빙기 때 본류 및 지류의 하곡이 침식을 받아 깊은 개석곡이 형성되고, 그후 해수면 상승과 더불어 본류에서의 운반퇴적물이 지류에 비해 많아 범람시 지류의 입구가 먼저 막혀 자연제방의 형성과 함께 배후에 형성된 것이다.
영산면의 장척늪(장척호), 계성면의 번개늪(번개호), 유어면·이방면 경계의 우포가 대표적인 배후습지이다. 홍수 때 범람을 막기 위하여 대규모 인공제방이 축조되어 있으며, 남지읍에는 피수대 기능을 하는 제방이 축조되어 있다. 지질은 화왕산 일대의 화강암지역을 제외하고 대부분 중생대 경상계의 신라통지층이 분포한다.
연평균기온이 13.1℃ 내외로 비교적 온난하며, 8월평균기온 26.3℃ 내외, 1월평균기온 -1.3℃ 내외로 기온의 연교차가 크다. 연평균강수량은 1,053㎜로 비교적 적고, 계절적으로 강수가 6, 7월에 편중되어 한발과 홍수의 피해를 자주 입는다.
인구
대도시의 인구이동으로 인구수가 계속 감소되고 있다. 주로 청장년층이 이출함에 따라 가임연령층이 줄어들어 연간 출생자수도 5년 전인 1991년의 1,018명에 비해 2.2% 감소한 996명에 불과하다. 2024년 기준 행정구역별 인구분포는 창녕읍(1만 5,711명)이 가장 많고 길곡면(1,474명)이 가장 적다.
평야지역에서의 취락은 배산임수의 입지이며, 전형적인 농촌지역으로 집촌을 이룬다. 배후습지에서는 자연제방 위에 취락이 열상으로 입지하고 있다. 취락의 밀도는 남지읍·대합면 등 평야지역이 비교적 높다. 창녕읍·남지읍·영산면 등의 취락은 마을당 인구수가 400명 이상으로 비교적 규모가 크며, 반면 성산면·대지면·장마면·길곡면 등은 300명 이하로 비교적 소규모 촌락이 입지하고 있다.
혈연을 바탕으로 형성된 동족마을이 많은데, 창녕읍 교하리의 창녕성씨 마을, 남지읍 남지리의 영산신씨 마을, 고암면 원촌리의 창성조씨 마을 등은 창녕에 시조를 둔 성씨에 의해 형성된 대표적인 마을이다. 낙동강에 연해 있어 과거 수운이 활발할 때 임해진·남지·송진·마수원 등의 하안취락이 발달했고, 나루터를 중심으로 도진취락이 형성되기도 했다. 동부 산지에는 산지촌이 나타나고 있다.
가옥의 평면구조는 중부 이남에서 분포하는 정면 4칸(방-대청-방-부엌), 측면 1칸의 일(一)자형 홑집을 기본구조로 한다. 홍수시 침수를 막기 위해 높이 0.5~1m 정도의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집을 짓고 있다. 지금은 주택개량사업 등으로 전통적인 가옥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창녕읍 술정리에 전통가옥인 하병수씨가옥(중요민속자료 제10호)이 보존되어 있다.
산업과 교통
논농사가 지역경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 경지면적 110.19㎢(경지율 20.6%) 가운데 논이 76.92㎢, 밭이 33.22㎢를 구성한다(2013). 농경지는 주로 서부의 낙동강 유역에 분포한다. 낙동강과 남강의 합류지점에 형성된 영산평야는 수리시설이 완비된 경상남도의 대표적인 농업지역이다. 이 지역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늪과 저습지가 많은 미개간지였으나, 일제강점기인 1920년에 도천면에서의 수리사업을 시작으로 낙동강 연변에 제방을 쌓고 저습지를 개간하면서 농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8·15해방 이후 1970년대 창녕지구농업종합개발사업을 통해 습지가 매립되고, 용수로 개설과 경지정리가 완료되면서 수리안전답이 되었다. 농산물은 쌀을 비롯한 식량작물이 생산되며, 남지읍 일대의 충적지에서는 특용작물과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소채류의 촉성재배가 활발하다. 촉성재배 기술은 1954년 김해에서 전파된 것으로 지금은 대단위 재배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촉성재배로 오이·고추 등이 재배되고, 인근 부산·대구 등 대도시로 출하되고 있다.
양파는 이 군의 대표적인 작물로 냉동시설을 이용하여 저장했다가 이듬해 봄에 출하한다. 또한 전국적으로 유명한 남지의 땅콩은 주로 하천부지의 사질토에서 집중 재배되고 있다. 낙동강과 저수지 등에서 내수면어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어선은 대부분 소형 동력선이다. 영산면에서는 잉어·뱀장어 등을 기르는 양식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군내 총 154개의 공장에 5,891명의 종업원이 종사하고 있다(2013). 이 지역의 전통공업으로 계성면·고암면에서 가마니 생산과 부곡면에서 요업이 활발했으나 현재는 생산되지 않는다. 1970년대에는 계성면에 제사공장이 있었으나, 양잠업이 사양화되면서 폐업되었다. 군내에 4개(하리·억만·넥센·대합) 일반산업단지, 3개(남지·대합·대지) 농공단지, 2개(서리·송진) 농공단지 등 총 9개 산업·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있다(2013).
상업은 상설시장 1개소와 창녕장(3·8일)·남지장(2·7일)·십이리장(2·7일)·이방장(4·9일)·영산장(5·10일) 등 5개의 정기시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수운과 육운 교통의 요충지에 있어 일제강점기에는 15개의 시장이 개설되기도 했으나, 교통체계의 변화에 따라 그 기능이 축소되었다.
구마고속도로가 군의 중앙부를 남북으로 지나고 있으며, 이와 나란히 대구-마산을 잇는 국도가 지난다. 그밖에 청도-의령, 밀양-합천을 잇는 국도가 나 있다. 면소재지를 연결하는 지방도도 대부분 포장되어 있어 지역 내의 교통도 편리하다. 낙동강에 연해 있어 과거에는 낙동강 하류인 낙동·구포 등지로부터 소금·목재·잡화 등이 운반·집하되는 등 수운이 활발했다.
현재 낙동강 양안은 구마고속도로의 창녕낙동강교·적포교·남강철교로 연결되어 있다. 그 가운데 창녕낙동강교는 너비 11.7m, 길이 680m의 다리로 한국에서 최초로 V자형 교각으로 건설되었으며, 교량의 지간은 65m로 1977년 준공 당시 콘크리트교로서는 국내 최대였다. 도로총길이 534.91㎞, 도로포장률 78%이다(2013).
유물·유적·관광
선사시대부터 인간이 거주했고, 고대 부족국가시대에는 비화가야(非火伽倻)가 있던 곳으로 이에 관련된 유물·유적이 많다. 삼국시대는 신라의 군사 요충지로 신라 유적이 많아 경상남도의 경주라고도 불리운다. 군내에는 세계문화유산, 국가지정문화재(국보 2, 보물 11, 사적 4, 천연기념물 1, 중요민속문화재 2, 중요무형문화재 2), 지방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23, 기념물 11, 민속문화재 1), 문화재자료 44점 등이 있다.
선사시대의 유적지로는 장마면 유리의 창녕지석묘(경상남도 기념물 제2호)가 있고, 그밖에 영산면 신제리와 부곡면 부곡리의 지석묘군이 있다. 창녕지석묘는 전형적인 남방식 지석묘로 원래 7기가 있었으나, 지금은 1기만 남아 있다. 가야시대의 고분으로는 창녕교동고분군(사적 제80호)·창녕송현동고분군(사적 제81호)·계성고분군(경상남도 기념물 제3호) 등이 있다. 교동고분은 장방형의 평면 횡혈식 석실구조이며, 여기에서 출토된 금관 및 부속금구(국보 제138호, 호암미술관)의 섬세하고 정교한 제작기술은 당시 가야문화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창녕 교동, 송현동 고분군은 2023년 9월 고령 지산동 고분군, 김해 대성동 고분군, 함안 말이산 고분군, 고성 송학동 고분군, 합천 옥전 고분군, 전북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 등재가 결정되었다.
화왕산에 축조된 화왕산성(사적 제64호)과 목마산성(사적 제65호) 등 군내에 산재한 7곳의 산성도 가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창녕읍 교상리에는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국보 제33호)가 있다. 본래 화왕산 기슭의 창녕읍 말흘리에 있던 것을 옮긴 것으로, 건립연대는 신라가 비화가야를 병합하고 이 지방을 순시한 해인 561년으로 추정되고 있어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비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비문의 기록은 당시의 촌락 지배체제와 통치조직, 우리나라의 농업발달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신라의 영향을 받아 불교문화재가 많다. 국보로 창녕술정리동3층석탑(국보 제34호)이 있고, 보물로는 창녕송현동석불좌상(보물 제75호)·관룡사약사전(보물 제146호)·관룡사대웅전(보물 제212호)·관룡사용선대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95호)·관룡사석조여래좌상(보물 제519호)·술정리서3층석탑(보물 제520호) 등이 있다. 그밖에 창녕석빙고(보물 제310호)·창녕탑금당치성문기비(昌寧塔金堂治成文記碑, 보물 제227호)가 있다.
군내의 관광권은 부곡온천을 중심으로 한 부곡온천권, 비화가야의 중심지를 포함하는 창녕읍권, 남산과 작약산을 중심으로 한 영산권으로 나누어진다. 부곡온천은 1973년 발견된 국내 최고의 유황온천수로 피부병·위장병·신경통·고혈압·부인병 등에 효험이 있다. 온천이 개발된 후 1977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많은 관광객이 찾아든다.
창녕읍권 관광지는 유물·유적을 중심으로 하는 관광지로 조성되고 있으며, 영산권은 남산공원이 1982년 호국공원으로 조성되면서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공원에는 임진왜란 호국충혼탑과 화왕산 승전도, 3·1운동기념비, 6·25영산지구전적비 등이 있다.
교육·문화·의료·복지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 창녕향교와 영산향교가 있었으며, 서원으로는 관산서원·물계서원·덕봉서원 등 17개 서원이 있었다. 근대적인 교육은 1905년 남창학교(지금의 창녕초등학교)가 개교하면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2018년 기준 유치원 21개소, 초등학교 17개소, 중학교 10개소, 고등학교 8개교가 있다.
문화시설로는 창녕문화원, 도립창녕군도서관·남지도서관·영산도서관 등 공공도서관 3개소, 무형문화재 전수회관, 군민회관·창녕유물전시관 등이 있다. 문화행사로는 매년 3·1절에 영산면에서 열리는 삼일민속문화제가 있어, 이 지방 고유의 민속놀이인 영산쇠머리대기와 영산줄다리기를 중심으로 향토민속 경연대회가 열린다.
영산쇠머리대기(중요무형문화재 제25호)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으나, 안동차전놀이와 비슷하여 직경 30cm 이상의 생소나무 20여 개로 목우를 2개 만들어 승부를 겨룬다. 영산줄다리기(중요무형문화재 제26호)는 미작농업지역에서 주로 행해지는 놀이형태로 암줄과 숫줄을 제작하여 승부를 겨루는 민속놀이이다.
무속으로는 문호장굿이 있다. 전설적 인물인 문호장을 위령하고 숭앙하는 영산지방 특유의 무속으로 많은 무당들이 모여 매년 음력 5월 1~6일에 걸쳐 하는 굿이다. 동제를 지내는 마을이 아직도 많으며 창녕읍 옥천리와 영산면 성내리에는 당집이 있다. 당집이 없는 마을의 경우 서낭나무와 서낭대(一竹)가 있다. 성산면 정녕리에서 매년 열리는 망향제는 청도로부터 이주한 김해김씨 삼현파 후손들이 매년 10월 태백산(합산)에 올라가 고향 청도를 향해 제향을 올리고, 소원성취를 기리는 이곳 특유의 민속행사이다.
설화로는 <문호장전설>·<창녕조씨 득성전설> 등이 있으며, 그밖에 많은 민요가 전래되고 있다. 불교 사찰로는 신라 583년(진평왕 5) 관룡사가 가장 먼저 세워졌으며, 천주교 교회는 1910년경에, 개신교 교회는 1914년에 처음 설립되었다. 특히 천도교는 3·1운동 이후 교세를 확장하여 다른 지역에 비해 교세가 비교적 강하다.
2017년 기준 의료기관으로는 의원 28개소, 특수병원 2개소, 요양병원 5개소, 치과병원 13개소, 한의원 15개소, 보건소 관련 의료기관 33개소가 있다. 사회복지시설로는 노인여가복지시설 403개소, 노인주거복지시설 2개소, 노인의료복지시설 7개소, 재가노인복지시설 9개소, 장애인복지생활시설 1개소, 어린이집 26개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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