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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

다른 표기 언어 朝鮮上古史

요약 한국근대역사학의 중요한 저작 중 하나. 1책 373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반제반봉건의 민족주의에 입각하여 전통적인 유교사학과 개화기사학, 일본황국사학의 한국사 왜곡을 시정하고 이들의 역사인식 및 역사연구방법을 극복하려 했다. 1931년 6월 10일부터 103회에 걸쳐 <조선일보> 학예란에 <조선사>의 일부분으로 연재되었고, 8.15해방 후 1948년 종로서원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총 12편으로 단군시대부터 7세기 백제의 멸망과 그 부흥운동까지 서술했다. 신채호의 한국고대사 연구는 1908년 대한매일신보사에 재직중 연재한 <독사신론>이 시초였다. 1910년대 후반 <조선상고문화사>를 저술한 후 1922년경까지 전체 한국사를 구상하면서 <조선사통론>, <인물고> 등을 집성했고, 이때 <조선상고사>의 본문이 완성되었다. 1924년 <조선상고사>의 <총론> 부분을 완성했다.

1책 373면. 반제(反帝)·반봉건(反封建)의 민족주의에 입각하여 전통적인 유교사학과 개화기사학·일본황국사학의 한국사 왜곡을 시정하고 이들의 역사인식·역사연구방법을 극복하려 한 한국근대역사학의 중요한 저작이다.

1931년 6월 10일부터 103회에 걸쳐 〈조선일보〉 학예란에 〈조선사〉의 일부분으로 연재되었고, 8·15해방 후 1948년 종로서원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총 12편으로 단군시대부터 7세기 백제의 멸망과 그 부흥운동까지 서술했다. 신채호의 한국고대사 연구는 하야시[林泰輔]의 〈조선사〉(1892)와 그 영향을 받은 한말 국사교과서들을 비판할 목적으로 1908년 대한매일신보사에 재직중 연재한 〈독사신론 讀史新論〉이 시초였다.

특히 여기서 한국고대사를 부여족의 역사로 보고 단군·부여·고구려의 정통 계승론을 제시했다. 이어 1910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고구려·발해의 여러 사적들을 답사하는 한편, 대종교의 윤세복(尹世復) 등을 만나 〈조선사〉를 집필하면서 한국고대사 인식을 심화시켰다. 그리하여 1910년대 후반에 저술한 〈조선상고문화사〉에서는 만주·한반도와 부여족의 식민지로서 중국의 일부까지 한국고대사 영역에 포함시켰다. 그후 1922년경까지 전체 한국사를 구상하면서 〈조선사통론〉·〈문화편〉·〈사상변천편〉·〈강역고〉·〈인물고〉 등을 집성했고, 이때 〈조선상고사〉의 본문이 완성되었다.

1924년에는 량치차오[梁啓超]의 〈중국역사연구법〉 등을 읽으면서 근대적 역사연구방법론을 심화시켰고, 〈전후삼한고 前後三韓考〉 등 〈조선사연구초〉의 수록 논문, 〈조선상고사〉의 〈총론〉 부분 등은 이때 완성되었다.

1928년 신채호는 베이징[北京]에서 체포되어 뤼순[旅順] 감옥에 수감되었지만 주요저작들은 1931년 〈조선일보〉를 통해 발표되었다. 〈총론〉에서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의 기록'이라는 역사이론과 사료의 선택·수집·비판의 선행을 강조하는 실증주의적 방법론을 언급했다.

그리고 종래 사학사의 평가에서 김부식(金富軾)의 〈삼국사기〉를 '춘추필법의 노예성에 근거한 사대주의'로 비판하고, 〈천부경〉·〈서곽잡록〉 등 상대적으로 비유교적인 사서를 민족주체적 사료로 중시했다(한국사학사). 또 실학자들의 역사인식을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한백겸(韓百謙)·안정복(安鼎福)의 연구방법론과 이종휘(李種徽)의 부여·고구려 중심의 한국사 인식을 그대로 수용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 인종23년(1145년) 김부식이 완성한 한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 대한민국의 보물 525호, 삼국사기의 일부

ⓒ Gomanari/wikipedia | Public Domain

제2~4편에서는 한국상고사를 신수두시대·3조선분립시대·열국쟁웅시대로 구분하고, 이를 부여와 삼한으로 이어지는 정통으로 보았다. 특히 단군신화의 비과학성을 지적하면서 조선족이 '아리라'를 중심으로 '불'을 개척하면서 형성된 공동체 신앙에서 제주로 종사하는 자를 단군으로 파악했다.

삼한도 전·후 삼한으로 나누고 한사군(漢四郡)은 실재하지 않았거나 랴오허[遼河] 지역에 존재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는 우리 역사영역이 한반도가 아닌 만주와 북중국 일대에 걸쳐 있었음을 강조한 것이다. 한편 부루(夫婁)를 단군의 손(孫)이자 부여왕으로 보아 정통성을 인정하고 '고구려­한무제(漢武帝)의 9년전쟁설'을 펴면서 고구려의 건국을 200년 이상 올려잡고 있다.

이어 제5~10편에서는 삼국의 성립과 대외항쟁기를 다루었는데, 고구려야말로 한민족을 외세로부터 보호하고 대외항쟁에서 승리를 거둔 이상국가이자 삼국 중의 정통으로 파악했다. 백제에 대해서도 근구수왕·동성왕 때 랴오시[遼西] 지역과 산둥[山東]의 전진(前秦)지역까지 공격·소유했다는 요서경략설(遼西經略說)을 주장하는 한편, 일본 역시 식민지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신라의 비중은 크게 두지 않고 단지 진흥왕대의 강성 원인을 화랑(花郞)의 존재에서 찾고 있다. 제11편에서는 신라가 당(唐)과 연합하여 백제·고구려를 멸망시킨 것은 '김유신(金庾信)의 음모'이며 고구려의 고토를 상실했다고 보아 신라정통론을 부정하고 삼국통일에 대해 극단적인 부정적 평가를 내리는 한편, 백제부흥운동의 경과를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이어 〈해동역사〉의 긍정적 평가를 통해 발해사를 한국사에 편입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지나친 민족주의적 관념의 투영, 언어학적 방법론 및 사료 신빙성의 문제점 등 일부 방법론상의 오류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과 국가의 독특한 기원과 변천과정을 체계적으로 서술했다. 특히 〈총론〉에서는 민족내부의 계급관계를 주목하고 변증법적 역사발전 단계설 등 근대적·사회과학적 역사연구 방법론을 제시했다.

이는 우리 역사학의 수준을 저항민족주의 단계에서 크게 제고시킨 작업으로 높게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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