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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91(고종 28), 평남 순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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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미상 |
국적 | 한국 |
요약 독립운동가.
일명 한경. 1910년 미국으로 건너가 안창호(安昌浩)·이승만(李承晩) 등과 대한인국민회를 조직하여 그 간부로서 미국정부에 한국의 사정과 일제의 침략상을 설명하는 등 미국 내에서의 한국 교포들의 지위확보에 노력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파리에서 만국평화회의가 열리자 대한인국민회 주도로 12월 재미한인전체대표회를 개최했는데, 이때 이승만·민찬호(閔瓚鎬)와 함께 만국평화회의 파견 대표로 선출되었다. 1919년 1월 이승만과 함께 워싱턴에 도착하여 여권 발급을 요청했으나 미국정부의 거부로 회의 참석이 좌절되었다.
1919년 2월 대한인국민회 임시총회에서 중앙총회 안에 임시위원회를 설치하여 독립운동 사무를 전담케 했는데, 이때 부위원장에 선출되어 이승만·민찬호 등과 함께 각국 대표들에게 한국에 대한 국제연맹의 위임통치를 요구하는 '위임통치청원서'를 제출했다. 4월에는 필라델피아 독립기념관에서 재미한인들과 함께 대한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미국인과의 공동협조로 한국독립원조회를 결성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9월 미국 상원에서 한국독립문제가 제안·토의되는 결실을 보았으며, 한국독립원조회와 교포들이 거출한 30만 달러를 대한민국임시정부로 보내기도 했다.
1921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 구미위원부 위원에 임명되었으며, 영문으로 〈한국사정〉을 발행하여 한국의 역사·지지(地誌) 등을 알리는 동시에 일제의 침략상을 지적했다. 1944년 10월에는 주미외무위원회 위원 겸 비서주임으로 임명되어 주로 대미외교를 전담했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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