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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트족과 게르만 프랑크족이 이 지역의 최초 거주인들로 알려져 있으며, 그뒤 이 지역은 카롤링거 제국과 동프랑크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중세까지 여러 개의 작은 지역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넓은 지역은 자르브뤼켄 시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1381~1793년에 자르브뤼켄은 나사우-자르브뤼켄 백작들의 통치를 받았다. 자르브뤼켄 주변지역은 비록 독일어를 사용하는 주민들이 살았으나, 베스트팔렌 조약(1648) 이후 150년간 프랑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1684년 레겐스부르크 휴전협정에 의해 프랑스의 한 주가 되었으나, 1697년 프랑스는 레이스웨이크 조약으로 인해 자얼루이 시를 제외한 모든 지역을 내주어야만 했다.
1792~1815년에 프랑스는 라인 강의 서안 전역과 함께 자를란트를 다시 점령했다. 1815년 나폴레옹의 최후 패배로 프랑스는 이곳의 대부분을 프로이센에게 양도해야 했고, 프로이센은 그 지역을 프로이센 라인 지방의 일부로 만들었다. 1871년 알자스로렌이 독일 제국에 합병되자 석탄과 로렌의 철광석 매장을 기반으로 하여 급속한 산업발달을 이루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탄광들은 프랑스에게 인도되었고, 자를란트는 15년간 국제연맹의 행정 관리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기한이 끝날 무렵 주민들에게 프랑스와 독일 양국 간에 자르의 소속을 선택하는 국민투표를 실시할 예정이었다. 1935년 1월 13일 실시된 실제 국민투표에서 자르 주민의 90% 이상이 자르가 독일에 반환되는 것을 찬성했고, 이같은 표결사항은 곧 합법적으로 실현되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 군대가 자르를 점령했고, 2년 후 초대 자르 주 의회는 프랑스와의 경제적인 통합 안에서 자르 주의 자치권을 요구하는 헌법을 채택했다. 그러나 1954년 독일의 새로운 번영이 대부분의 자를란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어 그해에 프랑스와 독일은 1명의 유럽인 행정장관의 관리하에 자를란트의 자치를 허용하는 법령에 동의했다. 그러나 새로운 법령은 투표를 통해 승인을 받아야만 했고, 1955년 10월 23일에 실시된 투표에서 자를란트 유권자 중 68%가 독일로부터 자를란트의 분리를 함축하는 그 법령을 거부했다. 결국 프랑스는 이 지역을 독일에 반환하는 것에 동의했고(1956), 1957년 1월 1일 자를란트는 독일연방공화국의 10번째 주로서 지금의 지위를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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